월간 사람

비본질적 요소가 본질을 압도한다

인권운동 길찾기 5 | 인권운동을 제약하는 요인들

얼마 전 만난 한 대학교수는 예전에 활동하던 활동가들의 근황을 물어왔다. 어떻게 그는 오래 전에 운동을 떠난 활동가들만을 거론하는지 대답을 해주기도 괴로웠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활동가들이 많이 떠났네. 운동이 지속되려면 활동가들이 있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이 말 한 마디는 충격이었다. 왜 인권운동을 열심히 하던 활동가들이 갑자기 운동을 중지하고 떠나는가? 이런 의문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곧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의지만 갖고 되는 일은 없다.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물적 토대의 중요성을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온 것의 결과는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려는 활동가들이 인권운동을 떠나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로부터 운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대안들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호에서는 인권운동진영에서는 종종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고는 하는 문제들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의 재정 문제, 과학적 운동을 위한 자료의 축적 문제, 활동가들 사이의 위계가 낳는 문제 등에 대해 고민해 보도록 하자.


‘구멍가게’ 수준을 못 벗어나는 인권단체들


인권운동단체들에는 활동가들이 무척이나 적다. 한 단체의 평균 활동가 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제대로 된 조사도 진행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단체에 평균 3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단체 중에 가장 많은 활동가를 둔 곳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와 같은 장애인단체들이다. 아마 그 다음이 인권운동사랑방으로 상임활동가가 10명이다. 겨우 한 명의 활동가로 단체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38개 인권단체 중에 3분의 1에 해당하는 단체가 한 명의 상임활동가를 두고 있고, 두세 명이 보통이고, 많아야 대여섯 명 정도다. 어떤 경우는 아예 상근하는 활동가 한 명을 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각자 돈벌이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매주 정기회의를 통해 사업을 점검하고는 흩어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인권단체를 상근하는 활동가들의 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상근하는 활동가 한 명 없이도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들에게는 그만큼 후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상임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있을 때 그 단체의 활동도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인권단체들은 활동가의 수만으로 평가했을 때는 구멍가게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럼 왜 인권단체에는 인권활동가들이 적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제약 요소는 재정이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되지 못하므로 단체에서는 활동가들을 충분히 두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사람>에서 활동가들이 받는 활동비 수준을 점검한 적이 있지만, 한 달 5~60만 원 수준, 아니면 그보다도 못한 수준의 활동비를 받으면서, 또는 활동비를 받기는커녕 단체 운영비를 조달하면서 단체를 유지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시민단체들이나 노조 활동가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활동비는 활동가들을 학원으로 또는 다른 알바로 내몬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철이 가까워오면 인권활동가들과 회의 한 번 제대로 하기도 힘든 경우조차 생긴다. 활동가들은 활동과 소득을 위한 경제생활의 이중고에 시달리면서 정체성의 분열과 심리적 위축 상황을 맞는다. 이러다가 운동의 고단함에 지친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자책하거나 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활동을 접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권단체들은 열악한 재정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고 있을까? 우선은 재정적인 고려 때문에 활동비를 지급해야 하는 활동가들을 충분히 둘 수 없다. 활동에 비해서 적은 수의 활동가들을 두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단체 운영비는 상당수 줄일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활동가가 주는 만큼 그 단체의 활동도 위축되게 되는 것은 거의 필연이다. 한 단체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인권운동을 대표하던 지위에서 현재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로 전락했는데,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활동가들의 수를 대폭 줄인 것도 큰 원인이다.


다음으로 고민되는 열악한 재정의 타개책은 프로젝트를 열심히 쫓는 경우다. 인권 관련 프로젝트는 시민단체들이 확보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비해서 너무도 적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는 용역사업 정도가 인권단체들이 접근할 수 있는 프로젝트일 것이다. 그렇지만 적은 활동가가 단체의 기본사업들을 하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는 너무도 벅차다. 그러다 보면 단체의 고유사업은 제쳐두고, 프로젝트 수행기관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는데, 프로젝트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면 그 다음에도 그 수준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제는 원치 않는 프로젝트에도 손을 대게 된다. 결국 프로젝트가 주가 되는 단체 활동이라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활동가들이 기본적으로 재충전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안은 사업을 통해 대중을 적극적으로 조직해내는 것이다. 회원들의 회비와 광범위한 후원 층의 조직은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매년 후원주점을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조직운동의 기본 사항이다. 활동을 적극 홍보해내고, 이에 대한 지지자들을 모아내서 회원으로 만들고, 그들이 조직의 재정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운동 주변에 얼마나 많은 자원들이 있을 것인데 이를 다양한 층위로 조직해내지 못하면서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려 하는 것인가?


거기에 국가인권위원회의 프로젝트에만 목매달지 않도록 실제로 인권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인권재단의 육성이 필요하다. 이 인권재단은 개별 단체들이 맡기 어려운 부분, 비어 있는 부분을 감당하면서(월간 <사람>의 발간처럼) 활동가의 재생산과 재충전을 위한 지원, 단체들의 재정구조를 혁신하기 위한 지원(사업 프로젝트가 아닌), 인권운동진영이 필요로 하는 전체 사안에 대한 지원(인권활동가들의 벌금을 대납하기 위한 지원, 시민불복종운동에는 반드시 재정위원회가 선차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상기하자.) 등을 담당한다. 이렇게 개별 단체 차원이 아니라 운동 전체 차원에서 재단이 고민되고 그 재단이 가령 인권회의의 재정위원회와 같은 일을 한다면(그래서 실제 인권회의 소속 활동가들이 재단의 이사를 맡고), 단체들은 재정적인 압박을 덜 받지 않을까. 사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인권재단 사람은 출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운동진영 내에 만연한 재정 문제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재정구조를 독립한다는 것은 우리 운동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것이 활동가들에게 사회권적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신념에도 반하는 생계활동에 지치게 만드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재정의 조직, 재정의 안정화가 운동의 대중화이며, 운동의 발전이라는 적극적인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료는 어디 가서 찾나?


운동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의 확보는 기본이다. 이전에는 자료를 버리는 운동을 해왔다고 한 선배는 지적했고, 그런 단점을 만회하기 위해 한 단체는 정보자료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인권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분야별로 분류하고, 축적하다가 온라인에서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물론 본문 내용을 모두 텍스트로 화하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채 변화된 환경에서 더 이상 정보자료실의 운영을 포기하게 된다.


인권운동의 소중한 성과가 자료로 축적되고, 이 자료를 손쉽게 찾아서 이후 운동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운동의 과학화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자료라는 것이 쌓아만 놓는다고 자료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권운동에서 요청되는 자료는 단지 학술적인 내용의 전문적 자료만은 아니다. 그간 인권운동의 과정에서 생산된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하고, 그것은 인터넷을 통해 검색되고,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료를 찾으려면 사업을 담당했던 활동가(그 활동가 중에는 이미 활동을 정리한 사람도 있다.)나 관련 단체들을 일일이 수소문하여 찾아내는 수공업적인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개별 단체들이 자료들을 축적,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곳은 매우 드물다. 또 단체 간의 자료의 공유 시스템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의 활동은 심지어는 인권단체연석회의처럼 연대활동의 성과조차도 개별 활동가들이 갖고 있는 경우조차 생기게 된다. 제대로 축적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단체 활동들을 정리하는 자료집으로라도 묶고, 이를 단체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라도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실만 가보더라도 그 단체의 활동성과가 자료로 축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다음에 예를 들어 인권회의 내에 자료를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인권회의가 운영구조의 취약함으로 인해서 인권회의 활동조차도 홈페이지에 올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자료들을 일단 모두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홈페이지에서 인권운동의 상황을 한 눈에 꿸 수 있고, 그 문제의식과 고민이 집적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료의 수집과 가공에는 먼저 지금까지 활동의 기초자료들을 모두 수집하여 검색 가능하도록 하는 것, 운동의 경험들을 매뉴얼 화하는 것, 운동을 기획하는 과정과 진행과정, 그 성과까지 이론의 심화를 위한 고민과 토론들로 축적하는 것 등이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자료들의 가공은 누구든 쉽게 활용 가능하도록 전자 파일 화하고(서류가 아닌), 시각화하는 것 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배는 후배를, 후배는 선배를


운동에서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혈관이 막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나 심근경색과 같은 치명적인 상황을 낳고 그에 따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은 굳이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선 단체 내에 소통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단체 내에서는 조직구조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의, 간담, 상담 등의 소통구조는 대부분 갖고 있다. 공식적인 소통구조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비공식적인 소통(술자리 등)으로 해소한다. 그렇지만 비공식적인 소통구조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상적인 소통구조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 안에서 권위주의, 가부장적 질서가 부정되어야 하며, 단체 성원간의 민주적 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활동가끼리의 소통, 선배와 후배 사이의 소통, 활동가와 회원 또는 자원 활동가의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통의 책임은 대체로 선배나 활동가에게로 돌아간다. 권위의식에 사로잡힌 선배는 후배의 말을 진정으로 들으려 하지 않게 되며, 활동가들도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야 할 점은 왜 인권운동진영에는 경력이 많은 활동가가 적은가 하는 점이다. 활동가들이 대부분 연령층으로는 30대 이하, 경력으로는 5년 미만이라는 점은 인권운동의 활동가 층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권운동 내에서는 선후배간의 위계, 직책에 따른 위계는 어느 운동보다 많이 해소되어 있다. 그렇지만 풍부한 경험을 축적한 경력 있는 활동가가 없다는 것은 재정 문제 외에도 그들이 있을 자리와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인권운동 활동가들의 조로(早老) 현상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인권운동의 특수한 문제로 경력 있는 활동가들의 재교육과 재충전, 그들의 역할의 변화를 통해서 운동의 지속성이 담보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인권운동은 다양한 층위의 활동가 인력 풀이 형성될 것이고, 그만큼 활동은 풍부해진다. 젊음의 패기와 경력 있는 활동가들의 구력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그런 관계가 위계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존중의 관계로 이루어져야하지 않겠는가.


다음에 고려할 것은 단체와 단체 간의 소통구조이다. 단체와 단체 사이에도 선, 후배 활동가 사이에서처럼 벽이 존재하고,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각 단체들은 사업 영역의 근접성과 활동가들의 친소관계에 따라 소통하는 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1년에 1회 열리는 인권활동가대회가 있지만, 1회적인 얼굴 보기로 활동가들의 고민이 소통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우선 온라인상의 소통구조를 연대체 안에서 구성할 수 있다면, 단체 간의 벽은 많이 허물어질 것이다. 특히 활동가가 적은 단체의 활동가는 자신의 고민을 풀 데가 없으므로 이런 연대체 내에 구축된 소통공간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풀어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단체 간의 소통에도 존중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활동가 간에, 단체들 간에 민주적인 소통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번 호에서는 조금은 운동의 주변적인 요소처럼 여겨지는 몇 가지를 짚어보았다. 사실 이런 문제들을 작게만 볼 수 없다. 그래서 비본질이 본질을 압도하는 상황을 역전시키지 않으면 운동은 더욱 힘들게 될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인권운동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다. (계속)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박래군 | 편집인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