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국제인권] 죽음의 트라이앵글

필리핀 정부, 살인, 책임회피의 삼각관계

“사람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실종을 시키고, 자기들 마음대로 죽이더라. 조금 지나니 자기들이 저질렀던 일을 자기들이 조사하여 처벌한다고 각종 기구를 만들더라. 또 조금 지나더니 유가족들에게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준다며 그 일을 저질렀던 자신들에게 와서 보상금 신청하라고 하더라. 그것도 늦게 하면 보상금도 없다고 빨리 신청하라고 설쳐대더라. 이것이 내가 나서 자라고 떠나기 전 국가가 나에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 어느 망명자가 재판정에서 한 말 중





필리핀에서 좌익 혹은 좌파라는 말의 의미는 필리핀 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관계만큼이나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그 스펙트럼 내에서 다양한 그룹에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무장그룹은 ‘반란자’ 혹은 ‘게릴라’로, 비무장한 다양한 군중 조직은 ‘투사’로, 좌경향적인 정치 정당은 ‘진보주의자’,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다양한 좌경향적 부문(빈민자, 농민, 노동자 등)의 비정부단체는 ‘목적지향적 그룹’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뭉뚱그려 좌익, 혹은 좌파라 부른다. 이제 이러한 다양한 집단이 뒤섞여서 몇 십년간 무장투쟁과 반란, 그 가운데 인권침해가 수시로 벌어지는 필리핀의 복잡한 정세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필리핀 내 무력충돌의 역사적 배경


필리핀에서는 정부군과 마오이스트 세력 즉, 필리핀 공산당과의 무력충돌이 37년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1986년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전 대통령의 축출 이후 민주적인 정치개혁과 법적, 제도적인 인권개선, 정부의 평화를 위한 일련의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내전을 방불케 하는 교전상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충돌을 지속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은 광범위한 빈곤과 경제적 불균형, 사법행정의 취약성, 인권침해 및 불처벌을 포함하는 빈약한 정치력 때문이다.


이러한 필리핀의 정치적 조건과 대중적인 조직 지지 기반 아래서 필리핀 공산당은 지방의 게릴라부대로 필리핀 정부와의 무력투쟁을 전개했으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필리핀 정부군(Armed Forces of the Philippines-AFP)과 경찰(Philippine National Police-PNP)은 필리핀 전역에 걸친 반란진압 작전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충돌은 양쪽 모두에 심각한 인권침해를 가져왔다.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군대 내에서 민병대의 활동을 공식화하고 필리핀 공산당의 영향력 하에 있는 지역을 ‘점유하고 통합’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감시단’을 용인하는 등 반란진압 전략으로 ‘전면전’을 선택했다. 이로서 정기적인 정부군에 의한 소탕작전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략은 반란의 일반대중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더불어 정부는 공산주의자들이나 정부의 좌파야당에 대한 ‘적화하기(red-labelling)’의 일환으로 이들을 ‘반란자’로 낙인찍었고 이렇게 낙인찍힌 사람들은 비사법적인 처형, 실종, 자의적 구금 그리고 고문 등 심각한 인권탄압에 직면하게 되었다.


반면 필리핀 공산당은 지역봉기 뿐만 아니라 지방의 군인, 경찰 그리고 지역 관료들에 대한 암살까지 보다 더 강경한 방법을 채택하여 정부에 대응했다. 필리핀 공산당 내 무장 세력인 신인민군 또한 1980년대 후반, 정부에 협력하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정부에 ‘깊이 관여한 사람’으로 의심되면 가차 없이 납치, 약식처형, 고문 등을 저질렀다. 또한 ‘혁명세금’으로 정당화된 착취와 이에 대해 저항하는 시민들에 대한 탄압과 공격 또한 다반사였다.


이러한 가운데 1992년 새로 대통령에 취임한 피델 라모스(Fidel Ramos)는 국가 화합정책을 표명하였고 필리핀 공산당도 참여하고 있는 국가민주전선(National Democratic Front, NDF)이 이에 호응하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필리핀 공산당과 신인민군은 리더십의 분열을 보였고 무장활동 세력은 감소되어 그 세력이 현저히 약해졌다.


무력충돌의 규모와 그 세가 감소하면서 인권침해의 수 또한 감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군사지역’에서 종종 일어나는 ‘실종’, 고문과 비사법적인 처형은 꾸준히 일어났고, 인권침해의 가해자에 대해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불처벌의 관행이 만연하여 실질적인 인권의 보호를 불가능하게 했다. 이에 더하여, 필리핀 공산당과 신인민군의 ‘혁명세금’ 요구와 ‘혁명의 정당성’을 가장한 시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살인 등의 인권탄압 또한 여전히 보고되고 있다.


평화 진행: 인권보호 합의와 감시 기구


1990년대 필리핀 정부와 국가민주전선 간에 이루어진 일련의 공식 및 비공식 협상은 평화를 진척시키기 위한 원칙과 구성에 대한 양측의 합의가 나오면서 마무리 된다. 1998년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4단계 아젠다의 첫 번째로 양측은 인권과 국제인도법 존중에 대한 포괄협정(Comprehensive Agreement on Respect for Human Rights and Internatiional humanitarian Law-CARHRIHL, 아래 포괄협정)에 서명을 하게 된다. 이 협정으로 양측은 생명권, 적법절차에 대한 권리, 사상과 정치적 신념의 자유 등 국제인권법과 충돌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시민과 전투원 보호, 인도적 대우 및 아동병 사용 금지 등 국제인도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 원칙과 기준을 존중하고 적용할 것을 서로 확인하였다.


정전협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와 같은 포괄협정은 양측의 계속된 충돌 가운데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줄이고, 신뢰와 확신을 구축하며,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처럼 보였다. 또한 양측의 이러한 합의를 보장하고 협정 위반 여부에 대해 감시할 공동감시위원회(Joint Monitoring Committee)가 설립되기도 했다. 이 위원회에서는 실태조사와 함께 적절한 구제조치에 대한 원칙을 서로가 합의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러나 필리핀 내에서 인권침해를 줄이고 평화체제 이행을 돕기 위한 포괄협정은 곧 비현실적인 시도로 판명되었다. 2002년 미국, 유럽과 다른 동맹국이 신인민군과 같은 공산주의 반군을 ‘테러집단’으로 등록함으로서 중대한 걸림돌이 생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인 2001년 신인민군에 의해 많은 지역선거 후보자들이 암살되고, 또 한 편에서는 무장한 정체불명의 사람들에 의해 좌파정당 구성원이 살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이미 포괄협정은 매우 약화되어 있었다. 결국 공식 대화는 중단되었고 포괄협정의 공동감시위원회의 공식 업무 개시도 2004년까지 연기되었다.


이 기간에 벌어진 정치적 살인은 선거제도의 진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1년 ‘투쟁적인’ 좌파의 광범위한 스펙트럼 속에 있는 여러 그룹들은 정당명부제도하에서 ‘진보’정당으로 의회선거에 진출함으로서 헌법적 민주 과정으로의 공식 참여를 이제 막 시작했다. 이 선거에서 좌파정당인 Bayan Muna(People First)는 개별 정당명부 그룹으로 허용된 최소 3석을 확보하였고 2004년 선거에서 ‘진보’세력은 Anakpawis(Toiling Masses)와 Gabriela(여성당) 대표의 선출로 그 두 배수인 6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좌파의 약진에 필리핀 정부와 군부가 위협감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좌파의 민주적 정치참여가 2004년 공동감시위원회 개시와 1995년 안전통행협정(안전과 면제보장에 대한 공동협정)의 재확인으로 조성된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기대와 달리 오히려 현실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정부 측과 국가민주전선의 관계도 악화되고 만다. 공동감시위원회가 인권침해사건을 접수하고 이에 대한 검토를 지속함에도 불구하고 공동감시위원회 내부 구성원들은 함께 만나지 조차 않았으며, 어느 쪽에서도 실효적 구제조치의 적절한 진행을 증진시키고 촉진시키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신인민군이 행한 시민에 대한 빈번한 살인과 반대편에서 필리핀 군대와 연계된 무장요원이 행한 좌파 활동가의 정치적 살인의 증가는 결국 평화체제 이행을 어렵게 하고 파국을 맞게 만들었다.


2004년 6월 아로요 대통령의 승리에 대한 합법성 논란으로 더욱 악화된 필리핀 내부의 정치적 상황은 이러한 가운데 격렬한 정치적 대립을 유발시켰다. 8월 아로요 행정부의 정당성과 신뢰의 상실을 주장하며 필리핀 공산당이 공식협상을 당분간 철회할 것임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정부는 평화협상이 수행되지 않는 한 공동감시위원회를 운용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동시에 포괄협정 이행을 실효적으로 감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결국 정부는 안전과 면제보장에 관한 공동협약의 효력을 중단했고 포괄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증가하는 살인 및 실종 그리고 인권침해


2006년 2월 아로요 대통령은 주요 야당의 구성원과 우익, 공산주의 반역자, 진보적인 좌파 그룹과 전 현직 군 인사들이 ‘전략적 연합’으로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국가비상사태로 인해 권력을 거머쥔 대통령은 군대에 ‘모든 불법 폭력의 형태를 막고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경찰은 대중 집회를 금지하였고 신문사를 급습하였으며 언론매체들을 향해 ‘책임’ 보도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폐쇄할 것이라는 위협을 가했다.


당국은 보고된 쿠데타 음모에 연루됐거나 ‘폭동’ 혐의가 있으면 정치적 입장이나 성향과는 무관하게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로요 대통령 퇴진운동에 참여한 당원들, 좌파 성향을 가진 많은 인사들이 반역자로 체포되거나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와 더불어 살인, 납치 후 실종 등 갖가지 인권탄압과 침해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서 UN, 국제인권단체, 지역인권단체들이 필리핀 정부에 살인 및 실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갖가지 캠페인(사실조사단 파견, 공개서한, 엽서보내기, 각국 대사관 앞에서의 집회 및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11월 14일에 사실조사를 실시한 한 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로요 정부가 집권한 이래로 현재까지 783명이 살해당했으며,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도 3명의 활동가들이 추가적으로 살해당했고, 4명이 실종 되었다. 필리핀에서의 폭압적 인권탄압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일이며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살인 및 실종 책임자는 누구?


대부분의 살인 혹은 실종 사례를 연구해 보면, 국가 혹은 관련기관들이 주도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지만 일정부분 개입되었다는 의혹이나 책임 방기로 인해 이러한 살인 및 실종사건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수많은 증언자들에 의하면, 범인들은 번호식별이 불가한 오토바이를 타고 마스크를 쓴 채 총기를 휴대하고 다니며 살인을 저지르고 있고 그 대상은 일반인이 아닌 노동활동가, 농민들, 이들과 함께 활동하는 종교인들, 인권활동가들, 교수들, 학생들이다. 이들이 표적이 되고 있음을 비추어 보아 필리핀 군대가 이러한 일을 저지른다고 볼 수 있으며 적어도 필리핀 정부가 방조, 방관한다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정부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아로요 대통령은 향후 2년 이내 공산주의를 궤멸하기 위한 국방 예산의 추가 편성을 선언하고, 공공연히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혹은 좌파주의자로 몰아간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정부가 살인이나 실종을 통해 사회적 공포를 퍼뜨리고 있으며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도 정부가 이를 멈추기 위한 노력을 결코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를 국민과 정부비판 세력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UN 및 국제인권단체들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지난 9월에 이러한 살인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소위’ 독립적인 위원회인 멜로 위원회가 설립되었지만, 이는 단순히 외부에 보이기 위한 정치적인 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위원회 또한 공공연히 이를 조사할 권한이 없음을 밝히고 있으며 예산편성에 있어서도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구성 또한 친정부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위원회 설립이후에도 살인 및 실종에 대한 수는 중단되지 않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가 보이는 이러한 태도의 목적은 분명한 듯하다. 이렇게 공포에 의한 정치를 지속해 나감으로서 좌파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에 대한 반대 여론을 불러 일으키는 동시에 정부의 조치들에 대한 비판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인권을 침해당하고 탄압받으며 가장 큰 희생을 당하는 것은 필리핀 국민들이다. 같은 의미에서 ‘혁명의 대가’라는 명목으로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범죄를 자행하는 세력도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어찌되었든 수많은 국제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러한 사건을 중단하려는 조금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 필리핀 정부를 보며 국민들이 가지는 암묵적인 공감대는 머리글에 있는 한 망명자의 증언이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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