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생성과 소멸이 인권운동에 던지는 의미

주제별 네트워크 진단과 인권회의와의 관계 맺기

2002년 조치원 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1회 인권활동가대회’는 전국에서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들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는 의미 외에도 여러 가지 성과를 남겼다. 주제별 세션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인권교육네트워크’, ‘사회권 전략팀’ 등의 의제별 모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 ‘2회 인권활동가대회’에서 만들어진 ‘시설 비리를 치러가기 위한 준비 모임’이 이후 ‘사회복지시설생활인인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결성에 초석이 된 것을 고려하면 인권활동가 대회는 인권의제와 조직을 만드는 의미 있는 자리임이 분명하다. 의제별 모임의 산실, 인권활동가대회 역시 ‘인권활동가 준비모임’에서 한 해의 인권운동을 결산하고 돌아오는 해의 인권운동 과제 수립을 위해 대회를 준비한다.


인권운동은 연합체 형태의 다른 부문 운동과 달리 여러 가지 주제로 활동가들이 모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것이 모여서 큰 물줄기를 이루는 귀납적 모형이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의제별 인권운동 모임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 인권운동을 가늠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몇 년간 생성되고 소멸되었던, 또는 현재도 활동 중인 의제별 모임과 네트워크의 현황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인권운동에 던지는 의미를 살펴보자.


인권교육네트워크의 지속성과 한계


의제별 모임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현재까지도 튼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인권교육네트워크(http://hredunet.net)다. 인권교육네트워크는 현장에서 인권교육활동을 하는 교사와 활동가들이 단체와 개인으로 참여하는 구조이다. 2002년 ‘1회 인권활동가대회’ 만남 이후, 꾸준하게 교육 프로그램과 공식, 비공식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여하는 이들은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 내의 활동가외에도 인권교육교사모임, 앰네스티 한국지부, 일반교사, 청소년단체 실무자 등이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


꾸준한 사업이 인권교육네트워크를 지탱하는 힘이다. 동시에 내부적인 역량강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외부적인 요인이 인권교육네트워크를 지속시켜주기도 한다. 외부적인 요인이라 함은 국가인권위 등장과 청소년단체들의 인권프로젝트 사업으로 인한 인권교육의 폭발적 수요를 뜻한다. 인권교육네트워크는 인권의 진보적 가치를 잃지 않고 체제 내에 흡수되지 않는 인권교육 전문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한편 ‘경찰 인권침해 감시학교’ 등과 같이 인권운동 속에서의 인권교육을 기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권운동과 인권교육이 유기적으로 함께 한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인권운동과 연대를 위한 기획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인권교육네트워크의 전문적 역량과 조직적 성장은 2002년 이후 크게 진보하지 못하고 있다. 의제별 모임 중에서 가장 꾸준하다고 평가되는 인권교육네트워크의 현재가 그렇다면 다른 의제별 모임은 어떤 모습인가.


진행되지 않는 의제별 모임


인권교육네트워크와 함께 출발한 사회권 전략팀은 ‘인권운동에서 사회권운동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2002~2003년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반대 활동, 고대 시설관리노조 지지활동, 2004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등을 벌였다. 사회권 전략팀은 경찰폭력대응활동과 같은 자유권 영역에서 인권운동이 차지하는 영향력과 달리, 한국사회의 모든 운동이 ‘사회권’ 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재의 상황에서 ‘사회권’이란 이름으로 기획해야 할 인권운동의 영역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는 모임조차 진행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와 유사하게 2003년 이라크전쟁 발발을 계기로 구성된 평화권 모임은 이라크전쟁범죄 보고서 발간,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재판운동, 평택 평화캠프 기획, 평화권 세미나를 진행하며 평화적 생존권을 보편적 권리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적 활동을 기획했다. 하지만 이라크 반전활동이 여론의 물밑으로 잠식하고 지속적인 평화권 활동의 기획도 부재하자 모임자체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 인권운동진영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운동에서 평화권 모임은 평화적 생존권, 평화권에 관한 주도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사회권과 평화권이라는 의제를 통해 인권운동의 지평을 넓힌 두 모임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2005년 전용철, 홍덕표 농민사망사건 진상조사와 경찰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점거농성, 2006년 상반기 평택경찰폭력 진상조사 활동으로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가장 밀접하게 활동한 경찰폭력 대응팀 역시 현재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활발하게 일어났던 의제별 모임들이 현재 부진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인권운동 전체가 안고 있는 장기적 기획의 부재, 활동가 몇 명에게 집중되는 인적 한계, 재생산 구조 없는, 또는 대중없는 인권운동의 조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참세상


장기적 전망을 위한 의제별 인권운동


의제별 인권운동이 인권사안들을 주도하고 인권운동을 살찌우기 위해서는 의제에 대한 전문성과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안별로 닥치는 과제를 받아 안고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장점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현재는 사안별 연대나 의제별 모임이 병렬적으로 펼쳐져 의제별 모임은 또 하나의 사업으로서 활동가들의 피로를 누적시키는 꼴이 되고 있다. 인권운동이 안고 있는 인적 인프라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활동가 1인이 의제별 모임 2개 이상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한편으로 활동가 한 사람의 역량에 과도하게 기대는 경우, 주도적인 활동가가 빠지면 모임 자체가 와해되어버리는 허약한 구조도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인권운동이 실천 속에서 대중을 만나고 대중 속에서 새로운 인력이 양산되는 상호관계를 맺지 못하는 한, 인권의제별 모임 또는 인권운동의 질곡은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성명서 쓰는 인권운동에서 벗어나야


전자주민증 반대활동, 주민등록제도 개혁 촉구활동, 목적별신분등록제활동, CCTV관련 활동 등을 진행했던 정보인권활동가 모임의 경우 주로 사안이 터지면 ‘기자회견’을 하고 해당기관에 항의하고 인권위에 ‘진정’하는 방식의 시스템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면서 모임 자체를 해소하고 각 사안 연대체에 더욱 적극적으로 결합하기로 결정했다. 인권운동이 기자회견 방식을 넘어서는, 현장과 결합하는 운동이 아니라면 매 사안에 성명서 쓰느라 활동가들의 열정은 모두 소모되어 버리고 만다.


이와 다른 사례로 사회보호법 폐지 공대위의 경우 인권활동가들과 변호사, 학자 등이 함께 피보호감호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사회보호법 폐지와 청송보호감호소의 폐쇄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당시 운동의 연장선에서 행형네트워크가 구성, 구금시설 인권옹호를 위한 장기적인 정책연구와 진정사건에 대한 공동대응을 모색했으나 국가인권위 설립 이후 보다 효과적인 접근이 가능해진 인권위로 인해 연대활동이 위축되고 현재는 활동을 멈춘 상태다. 하지만 보호감호제도의 완전 폐지와 법 폐지에 따른 치료감호법의 제정 과정에 적극 참여한 행형네트워크의 성과는 장애인 단체들과 의료계의 호응을 얻은 성공한 연대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의제별 인권모임과 인권회의 관계 맺기


의제별 모임은 인권단체연석회의에 소속되지 않는 단체와 개인들과 함께 모임으로서 활동가들이 담보하지 못하는 전문적 역량을 포함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전문적 역량과 활동가들의 현장실천적인 활동경험이 만나서 상승작용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인권교육네트워크나 행형네트워크가 이러한 사례다. 하지만 인권위 설립이후, 대규모의 재정과 인적자원이 지원되는 국가기구에 맞서 인권운동진영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행형네트워크와 같이 활동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인권의제별 모임이 보다 전문적이고 현장실천적인 활동을 펼치지 못할 경우, 인권위에 포섭되거나 의제의 주도권을 인권위에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 극복을 위해서 의제별 인권모임은 결국 인권단체연석회와 함께 연대운동의 지속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인권운동의 전략과 전망에 대한 배치와 제기되는 인권사안에 대한 전문역량, 활동가 재생산, 현장실천력을 높여야 한다. 인권단체연석회의와 인권의제 모임들이 횡렬과 종렬의 촘촘한 그물망을 짜지 못한다면 인권운동은 뛰어난 개인 활동가들의 의지와 열정에 기대다가 소멸하는 비운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고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되고 누군가 갇힐 때 인권운동을 필요로 했던 우리사회는 지금, 인권운동에게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다. 민중의 평화적 생존권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위협받는 공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인권의 이름으로 답할 것과 동시에 여전히 긴급한 구조를 요청한다. 이러한 절박함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인권활동가들의 발걸음은 분주하다.


인권의제 모임들이 초기에 가졌던 ‘각 권리의 인권운동 의제화와 대중화’를 위한 약속을 잊지 않아야 한다. 만들기도 쉽고 없어지기도 쉬운 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 혹시 대중과 현장이 없기 때문에 쉽게 소멸하는 것이라면 인권운동과 손잡기를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주목하자. 대중과 함께 호흡할 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긴 생명력은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양보할 수 없는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이제 인권운동도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대중과 만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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