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는 운동의 미래다 연대의 위기가 종종 말해진다. 인권운동은 지금껏 연대를 위한 노력들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민중진영과 연대, 시민사회와 연대, 인권단체 간의 연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해왔다. 인권운동은 실상 연대운동이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왜 이런 말이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가.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다. 인권운동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연대를 추구한다. 인권을 무시하는 지배질서는 참혹한 인권유린을 낳고는 했다. 거대한 지배구조가 억누르는 숱한 인권침해에 효율적으로 대결하기 위해서도 인권운동의 연대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 인권운동을 책임지는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은 얼마나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는가? 왜 연대보다는 지구화 시대의 시민사회가 분절화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권운동은 선택과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개별 사안이나 활동에 집중되고 있는가? 다소 생뚱맞은 주제지만 이를 통해 우리 사회 인권운동의 현실을 되짚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대는 인권운동의 미래다 생성과 소멸이 인권운동에 던지는 의미 비탈에 선 인권단체연석회의 자신을 돌아보고 관성과 싸워라 서늘한 곳에서 유통되는 마지막 운동 전환기의 국제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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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인권운동에 요청되는 일들은 너무도 많다. 청산되지 않는 과거의 문제가 미래의 인권사회마저 어둡게 하고 있고, 여전히 국가의 폭력이 자유권을 침해하며,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사회권은 형해화 된다. 그리고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한 각종 차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인권운동이 나설 것을 요구받는다.
이런저런 인권운동진영 내의 일들을 풀기 위해서도 인권단체들은 사안별 연대, 중장기적인 의제별 연대, 상시적인 연대활동들을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이나 시민운동과 함께 연대를 해야 할 때도 많다. 민중운동이나 시민운동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는 대부분 사회구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인권의 문제들일 것이다. 특히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이런 운동진영 간의 연대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인권운동이 이런저런 결의 연대운동을 잘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인권운동진영 내의 상설적인 연대체는 인권단체연석회의다. 2004년 결성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정부나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그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치적 위상은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연대성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많이도 등장했던 의제별 네트워크도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인권운동진영 내의 연대가 약화되면 다른 운동진영과의 연대도 잘 되지 않고, 인권운동은 종종 그와 같은 연대의 요청을 외면하게 된다.
연대하지 않으면…
인권운동에서 연대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미 인권이 지향하는 가치가 자유, 평등, 연대라고 하는 것에서 연대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권만이 아니라 사회권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연대는 필수다. 우리 사회의 인권침해는 대체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배세력들이 자행하는 인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론을 동원하여 정치권과 사법부를 압박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개인에 맡기거나 한 단체에 맡겨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제3세대 인권은 아예 연대권(또는 집단권, 단결권)으로 불린다. 민족의 자결권이나 평화, 환경의 문제는 사회의 모든 힘을 집중할 때만이 풀릴 가능성을 보게 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므로 이에 맞서서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연대운동은 더욱 절실하게 요청된다. 지배세력은 전통적으로 피지배세력들의 단결을 가장 두려워하고, 그러므로 서로 반목하게 하고, 분열하게 한다. 지구화 시대의 분절화 현상은 이와 같은 지배세력의 통치정책이 반영된 것으로 때로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그러다가 안 되면 국가의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인권을 수호하려는 대항세력들을 억압하게 된다.
그렇지만 연대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먼저 연대에 나서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물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단체별로 소수의 활동가만이 활동하는 구조에서는 연대는 꿈속의 그림일 뿐이다. 연대활동에 나서야 하는 활동가들이 단체 운영에 급급한 상황은 연대의 위기를 불러온다.
그렇지만 이런 단체들의 상황만이 연대운동의 발목을 잡는 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연대를 통해서 힘을 얻기보다는 연대를 통해서 일만 늘어난다는 인식과 같이 연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함께 활동하는 단체 간에, 또 활동가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연대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 여기서 소외되는 이들이 발생하고, 오히려 연대활동을 하지 않을 때보다도 이런저런 불신관계가 생기기도 한다.
공동의 목표에 대한 확인부터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하면, 인권운동이 추구하는 변화에 대한 인식과 전망에 대한 공유가 낮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구체적인 사안을 갖고 활동하는 단체나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총체적 인식, 즉 인권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지배질서와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공동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확인과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못한 까닭이지 않을까. 사안에 매몰된 인식, 단체의 활동에 매몰된 인식으로는 인권침해를 낳는 지배질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권운동진영 내에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단체 간의 대화와 소통이 긴요하다.
가령 진보적 인권운동에 대해 동의하는 인권단체들이 많은데 이를 본격적으로 확인하고 논의한 적은 없다. 또 자유권조약이나 사회권조약에서 말하는 인권항목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된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다양한 소수자들의 영역,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인권운동 영역들의 문제의식을 인권운동 전체가 공유하지 못한다. 인권운동진영 내의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인권운동은 그 차이를 인식하고 감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그들 운동들이 지향하는 가치나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인권운동에 도입하여 인권개념마저 진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없지 않은가. 결국 차이를 인정하기만 했지 그 차이들을 관통하는 인권개념의 재구성에 대해서는 소홀하였다. 그러므로 상황이 총체적인 대응을 요구할 때 인권운동은 여전히 자신들의 영역 안에서 머물게 되거나 연대활동을 전개하다가도 슬그머니 발을 빼게 된다.
연대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잘못된 연대운동의 관행도 문제다. 연대사업이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중심으로 기획된다든지, 중요단체나 활동가의 주도성에 의해서 좌우된다든지, 연대운동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된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되면 될수록 연대운동을 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 그러므로 서로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운동의 성과가 고루 돌아가게 하면서, 총체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한 총체적인 대응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이런 활동들을 기초로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의 연대로, 좁은 범위에서 더 넓은 범위로,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연대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지금은 인권운동이 벌여온 연대운동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면서 연대운동의 전망을 고민해야 할 때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