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단체탐방] 성소수자 인권의 날개를 엮는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무지개 깃발

한 기자가 물었다. “우리나라에도 동성애자가 있나요?” 1995년 탑골공원에서의 행사 중에서였다. 무슨 행사였는지는 가물가물해도 기자의 질문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뭐라 답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것을.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인색하다 못해 존재를 부정하는 폭력을 일삼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이 가시화되고 담론을 형성했다지만 10년 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받고 부정 당한다.



‘연대, 개별영역을 꿰뚫는 보편적 인권운동


동성애를 질병이나 왜곡된 성 문화쯤으로 치부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들만의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나마 의사소통의 통로가 되어준 것이 하이텔, 천리안 같은 PC통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PC통신은 그간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풀어놓을 수 있는 해방구였다. 통신 동호회에서부터 차츰 ‘친구사이’, ‘끼리끼리’ 같은 오프라인 모임이 95년을 전후하여 생겨났다. 우리사회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공간인 대학가를 중심으로 성소수자 담론도 형성됐다. 97년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전신인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이 무지개 깃발을 올렸다.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깨고 동성애자 해방을 이루자! 목표는 분명했다. 그러한 사회변혁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운동의 대중은 누구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들이 이어졌다. 동성애자 차별을 넘어 더 많은 사회문제, 사회운동의 주체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각 개별영역의 운동을 꿰뚫는 보편적 인권 의제이므로. 발족이후 활동은 여러 집회와 농성장 등을 찾아 연대와 지지를 표하는 것이 대부분. 물론 그 안에서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운동진영에 성소수자 문제를 조금씩 제기해 왔다.


‘“선생님! 저 동성애자인 것 같아요!”


그러던 2003년,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었던 육우당이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녹차, 파운데이션, 술, 담배, 묵주 그리고 수면제를 친구 삼았던 육우당(六友堂).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이렇게 불린다. 그의 죽음은 동성애자들을 끊임없이 죽음의 문턱으로 내모는 이 사회에 동성애자 문제를 이슈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사후 청소년 성적소수자 문제가 인권운동진영에서도 화두가 되었다. 동성애자 차별과 억압 반대가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본격적인 활동 기치로 등장하게 된 것도 이때다. 그리고 2005년 성소수자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2005 프로젝트-성소수자 상담센터, 예비교사와 함께하는 동성애인권교육, HIV/AIDS 인권모임 나누리+와 함께 한 감염인 인권증진 활동’을 시작한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무수한 억압과 차별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가족이나 선생님 등 친밀한 사람이라고 고민 보따리를 풀어놓기에 사회는 그다지 성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성소수자 상담센터는 절실했다. 운영에 대한 지원(그래봤자 우편물발송비를 깎아주는 정도였지만)을 염두에 두고 비영리단체 등록을 추진했다. 등록요건으로 회원 150인 이상, 회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가 요구되었다. 신분노출을 꺼리는 성소수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일일이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유인즉 ‘동성애 단체가 등록된 전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처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등록은 했는데 지금은 상담인력이 없어 고전 중이다. 그럼에도 올해는 상담의 구체적인 상을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청소년 상담을 특화한 것이다. 교대, 사범대생을 대상으로 편견을 없애고 청소년들의 상담 요청 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동성애 워크숍 <선생님! 저 동성애자인 것 같아요!>를 시작했다. 예비 교사들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상담 기술, 그리고 인권감수성을 높여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질 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에이즈, 바로 알자!


2006년은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에 있어 의미 있는 한 해다. 에이즈 감염인, 의료인, 인권활동가들이 함께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구성, 대대적인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에이즈는 ‘성’과 관련된 질병이라는 사회적 낙인, 동성애자들이 퍼뜨린다는 기이한 정보(?). 게다가 에이즈는 질병의 문제를 넘어 빈곤과 계층의 문제가 되고 있다. 제약회사들이 최대이윤을 위해 치료제의 높은 가격을 고수하고,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카피약 제조를 금하고 있어 많은 에이즈 환자들에게 약은 그림의 떡이다. 감염인과 환자들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빈곤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사회의 편견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차별과 억압은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싸우는 것, 이것은 곧 인권의 문제고 우리 자신의 문제다. 동성애자인권연대가 HIV/ADIS 감염인 인권증진에 관심을 가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지난 19일 ‘에이즈 25년, 동성애자 한국사회 에이즈인권정책을 말하다’라는 토론회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펼쳐 온 에이즈운동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예방의 대상에서 예방의 주체로 논의의 패러다임을 전화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즉 감염인 인권을 향상하기 위한 활동이 진정한 에이즈 예방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공동행동은 11월27일~12월 1일을 로 정하고 서울 일대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 예정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도 거리 캠페인, 게릴라 콘서트 등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12월 1일, 대한에이즈예방협회와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에이즈감염인 인권향상 및 편견과 차별해소’ 행사장을 찾아 진정한 에이즈 예방과 감염인 인권향상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줄(?) 참이다.


‘동성애 인권침해의 종합선물세트, 군대


여기 또 가르침이 필요한 곳이 있다. 군대! 2006년 상반기는 군대와의 투쟁이었다. 2월 8일 한 통의 상담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인즉, 동성애자임이 밝혀진 후 의무대로 옮겨졌으나 피해자에게 필요한 어떠한 치료도 없었다. 단지 동의 없는 에이즈 검사와 동성애자임을 입증하라는 강요와 함께 입증자료로 성관계 사진 제출을 요구 받았다고 했다.


상담 후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조치를 취하고 여성, 인권단체들에게 상담사례를 알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 사건을 ‘동성 간 성폭력 사건’으로 규정했고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를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 성소수자 차별의 성역, 군대와 맞선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단체연석회의, 성공회대인권평화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피해자의 조속한 전역조치 및 피해보상, 군형법 및 군인사법 상의 동성애 차별조항 삭제, 가해병사 및 간부 등에 대한 처벌 및 대안마련을 요구했다. 언론에 사건이 공개되자 군도 면피용 제스처를 취했다. 밀고 당기기를 여러 차례. 그는 전역조치 되었지만 심각한 우울장애로 고통 받고 있다.


4월 1일 국방부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동성애자 병영 내 유입, 확산 차단대책 미비”, “병역기피 수단으로서의 악용 우려”, “이성애자로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한다.”라는 등의 문구에서 보여지듯 보호는 고사하고 조악한 동성애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군제도 내에서 인권감수성과 지식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 것인가. 관리지침의 폐기와 군 인권교육 제도화 등은 지금부터 풀어가야 할 숙제다.


이번 사건의 성과는 성폭력상담소나 인권단체들과의 유기적인 연대였다. 또한 군의 폭력성을 알려내는 계기이면서 군대 내 가해자처럼 인식되었던 동성애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식하고 실제로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많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지 알려낼 수 있었다. 한편 사후적으로 대처하는 현재의 운동방식에 대한 고민을 남겼다. 이슈를 생산하고 만들어내야 하나?


‘열악한 환경에 길을 만들다


이슈를 만들어 도전하기엔 여건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권 사무국장, 인권교육국 담당 욜, 공동행동에 결합하고 있는 정숙. 이들 중 상근활동가는 없다. 낮에는 생계유지, 저녁엔 인권활동. 이런 유형이 활동가들의 생활패턴으로 정형화되는 느낌이다. 직업을 가지다보니 동성애자인권연대의 활동은 저녁이나 주말에 배치된다. 일반회원들의 참여에는 좋지만 타 단체들과 일정을 맞추기는 어렵다. 주말까지 속속 일정이 있다 보니 직장과 활동의 병행으로 인한 피로감도 상당하다. 상근자가 없으니 회원과의 의사소통의 문제도 있고 상담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일의 진행에도 속도가 붙지 않는 것 같다. 인권단체연석회의로부터 운영진 참여요청을 받은 권 국장은 ‘인권회의 내에서 어떻게 소수자 문제를 부각시킬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으로 참여했으나 결합은 어려운 형편이다. 첩첩산중 일세 싶은데 권 국장은 다른 면을 본다.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영역,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성소수자에 관련한 인권문제가 발생하면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거든요.” 권 국장은 동성애자들이 개인의 관심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무국을 대폭 축소했다고 말한다. 열악한 환경에 길을 만들어 긍정적으로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런 상황이니 단체재정이야 말해 무엇하랴. 지난 해 한 회원의 도움으로 CMS를 이용하면서 겨우 사무실 임대유지가 가능해졌다.


10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이건만… 이것이 한국사회에서의 동성애자들의 위치리라.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날실과 씨실을 엮고 있다. 이 사회 모든 성소수자들의 등에 달아줄 인권의 날개를 짜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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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아.. 더럽고 찝찝하다 그만좀들 하시지?
    당신들 부모가 호모고 게이고 레즈비언이라면? 자기 맘대로 살면서 자기들 좋은대로 애들 입양해살고... 그 입양된 애가 동생이나 형, 누나라면? 아니면 당신이라면? 이런걸 미화시켜?
    이런건 사회를 파괴하는 사회악이야!

  • 지나가다 님

    밑에 님 발언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 미화시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회가 그걸 계속 조장하기때문에, 그렇게 배워왔기때문에 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호모포비아가 아니기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