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요란한 간첩단 사건, 아님 말구?!

일심회 사건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

김은주 씨는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 최기영 씨의 부인이며 1993년 프락치의 양심선언으로 안기부 조작사건임이 드러난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피해자이다. (편집자 주)


아침에 일어나 어린이집에 보낼 혁준이 가방을 챙기고 나도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아침준비는 못하고 몸만 씻고 출근준비를 해야 했다. 남편을 깨우자 신문부터 찾았다. 남편은 국정원 앞에서 집회를 마치고 늦은 저녁과 반주를 하고 왔다고 했다. 이정훈 선배가 국정원에 연행되어 당에서 항의집회를 했다고 했다, 매일 아침 8시에 회의가 있어 출근준비를 서두르는 남편이 이날은 신문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연행된 사람들을 접견하고 나온 변호사로부터 자기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하고 뛰기 시작했다.


긴 하루


혁준이를 안고 남편이 집을 나섰다. 나는 혁준이가 아침을 못 먹었으므로, 어린이집에 들르면 선생님께 아침을 챙겨 달라고 부탁하라며 남편을 따라 현관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집 앞에 낯선 차가 있었다. 차안에는 사람들 모습도 보였다. 이른 아침에 출근은 안하고 왜 차안에 있을까 생각하며 대문을 나가는 순간, 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양쪽 골목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우리를 향해 일순간에 달려들었다. 20여 명이 포위하듯이 둘러싸고는 국정원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혁준이를 안고 있는 남편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수갑까지 채우려고 하였다. 남편은 강하게 저항하며 체포이유를 물었지만 수사관들은 A4용지에 적혀 있는 몇 줄을 읽더니 순식간에 남편을 차에 떠밀었다. 차에 타는 순간 수갑을 채우고는 그 자리를 떠났고, 놀란 혁준이는 멍하니 수사관들을 바라보고 나를 향해 “엄마, 엄마” 울부짖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넋 놓고 서 있는데 10여 명의 수사관들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압수수색을 한다며 집안을 구석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이불속이며 속옷이 들어있는 서랍이며,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뒤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방 벽지까지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2시간 동안 집안을 폐허로 만들고는 사라졌다.


아빠를 그리워하며


혁준이가 가끔 “아빠는?” 하고 묻는다. 외할머니가 “돈 벌러 멀리 갔어.”라고 답하면 혁준이는 “아저씨하고 있어.”라고 다시 대꾸한다. 27개월 된 아들이 국정원 면회 가서 아빠가 아저씨들하고 이동하는 모습을 몇 번 보고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속이 상하고 아팠다. 가끔은 아빠가 보고 싶은 모양인데 날씨가 추우니 감기 걸린 혁준이를 데리고 면회를 다니기도 쉽지가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 얼굴을 낯설어 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다.


며칠이 지나서 우리 세 식구가 국정원 면회실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수사관 아저씨가 졸고 앉아 있으니 아들이 코에다 손을 대고는 코코 쉬쉬한다. 아저씨가 자고 있으니 우리보고 조용히 하란다. 어느 날 뉴스를 보던 혁준이가 “아빠!”하고 소리쳤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가 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혁준이를 쳐다보았다. 마냥 신난 혁준이는 텔레비전 앞을 못 떠나고 안아보고 만져보며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나는 혁준이를 안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앞으로는 남편과 혁준이가 있는 곳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와 혁준이 옆에 누워 새큰새큰 혁준이의 숨소리를 들으면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오늘로 단식 19일째이다. 포동포동하던 배와 볼에 살은 어디로 갔는지 없다. 살은 빠지고 뿔테안경을 쓰고 있는 남편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보였다. 단식을 하고 있으니 건강도 걱정이고 움푹 파인 볼 살을 보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국정원에 들어와 일체의 조사에도 응하지 않고 묵비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면서 “혁명부부로 살기위해서 간첩출신인 아내와 결혼했느냐?”며 어처구니없는 말로 간첩임을 가정하고 질문을 한다고 한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문제까지 국정원에서는 수사의 대상인가 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


93년도, 남산 안기부 지하실로 끌려갔다. 요즘은 친절하게(?) 어디라고 밝히지만 그때는 가족들조차 어디로 끌려갔는지 며칠 동안은 알 수도 없었다. 군복을 입고 17일 간을 갇혀 있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안기부에서 만든 함정조사와 조작사건으로 결론 내려진 사건이었다. 안기부 프락치를 이용한 더럽고 치사하기 그지없는 공안사건-잠 안 재우기, 때리기, 협박과 회유 등의 고문으로 진술을 유도하고 짜 맞추기 방식으로 무리하게 사건을 만들었다.


어릴 적 구멍가게에서 눈깔사탕 하나 훔쳐서 맞은 뒤 태어나서 그렇게 맞아 본 적은 처음일 것이다. 갇힌 공간에서 여러 명의 수사관들에 둘러싸여 공포와 겁에 질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며칠이 지났는지, 몇 시간을 잤는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진술을 강요당했다. 뺨과 온몸을 구타당하고 풋샵과 기합, 성적모욕감까지 당하면서 나는 비굴하고 비참해져만 갔다. 지금 이라면(?) 그때보다 좀 더 대담하게 대응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우리 사건의 초점은 안기부 프락치였던 백흥룡이 열쇠를 쥐고 있었다. 안기부의 과장으로부터 사건 관련해서 논의하고 지시를 받고 있는 장면들이 생생하게 녹화되어 있었다. 사건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으로 된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안기부 수사관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몰래 카메라를 들고 찍은 것이었다. 백흥룡이 베를린으로 나가서 양심선언을 하고 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안기부 수사관들이 사건을 조작하고 프락치를 이용하여 이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나는 오랫동안 사건 후유증으로 고생을 했다. 주위의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혼자서 길거리를 다니는 것도 무서워하고, 복잡한 거리에서 사람들에 부딪히면 혼자서 깜짝깜짝 놀라고 한두 달은 밤마다 무서운 꿈도 많이 꾸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14년이 지난 지금 남편까지 ‘간첩단’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우리의 곁을 떠났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분단된 상황에서 우리 주위에서 늘상 있어 왔던 일이었다. 양심과 사상을 구속하는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또 나와 같은 피해자들은 있을 것이다. 처음의 요란스러운 간첩단 운운한 것은 어디로 갔는지, 사건 발표도 하지 못하고 소위 ‘일심회’에 의한 북한공작원 회합사건으로 100만 장에 달하는 증거물(?)과 함께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확대, 포장되었던 것들이 결국에는 ‘아니면 말구’겠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피해자는 간첩으로, 빨갱이로 단죄 당한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현실에 이제야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다. 언제쯤 우리의 곁에 돌아올지 모를 아빠를 찾는 혁준이를 보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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