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언론의 궁색한 이데올로기 중계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미디어에 대한 충고

지난 11월 8일 전국빈민대회, 집회 이후 행진 도중에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요는 행진을 하던 시위대와 운전자의 실랑이가 있었고, 결국 운전자가 시위대를 향해 교통사고를 낸 것이다. 전국빈민대회가 있기 하루 전, 경찰청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대규모 도심집회를 ‘교통혼잡’이라는 이유로 불허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던 터라, ‘사고’는 ‘사건’이 되었고, 결국 집회에 대한 악의적 여론몰이가 노골화되었다.



지난 9월 17일 경찰청은 ‘집회시위 현장대응 강화지침’을 통해 △교통체증이 우려되는 도심 집회에 대해 적극 금지 통고 △기자회견, 문화제에 대해서도 불법집회로 판단될 시 현장검거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지난 10월 25일 민주당 이상열 의원 등 13인은 ‘집회 및 시위 시 신분확인이 어렵도록 위장하거나 신분확인을 방해하는 기물을 소지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일부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점입가경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로써 보호받아야 하는 집회의 자유가 교통정체와 등가되고 있는 판국이니 말이다. 여기에 집회를 참여하는 사람들의 차림새까지도 법률로 규정하겠다고 하니, 구시대적이다 못해 논의의 수준이 저열하기 짝이 없다.



이데올로기의 빈곤 : 색깔론 → 폭력론 → 교통정체


헌법 21조에는 “①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고 명확히 적혀 있다. 그러나 헌법에서 보호하고 있는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에 대해 국가권력은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감추지 못해왔다. 아스팔트에서 사계절 내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대중들과 소통하고 정부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자격도, 자신도 없는 국가권력은 오히려 이들을 때리고, 죽이고, 가두어 놓으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은 장단에 맞춰 추임새를 넣고 있다.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전형적인 수구보수매체를 비롯하여 <문화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 대다수의 일간지들은 그 동안 노동자, 학생을 비롯하여 사회적 약자인 농민.빈민.장애인 등 생존권을 외치는 이들에 대해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왔다. 전형적인 수법이다. 무시무시한 반공이데올로기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던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의혹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이승복 기념관’이라는 망령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여전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승복 사건을 ‘특종’으로 만들어냈던 매체는 다름 아닌 <조선일보>이었다. 정치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했던 언론의 과거사를 들춰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1년 365일’ 변함없는 수구보수매체의 ‘빨갱이’ 이데올로기가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가고, 빨갱이들은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믿는 택시 운전사 같은 시민들의 의식으로 전이된다는게 문제다.


실제 집회는 수구보수매체에 ‘빨갱이’를 실체화시키는 데 유용한 아이템이고, 그러하기에 현재까지도 ‘반미’와 함께 적절하게 사용되어 왔다. 또한 수구매체는 ‘빨갱이’와 ‘반미’ 그리고 ‘폭력’을 더하기 한 이데올로기를 집중적으로 생산해내며 집회에 참여한 많은 이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변질시켜왔다. 이와 같은 미디어의 이데올로기는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운동을 둘러싸고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장, 이곳은]‘미군기지 이전’ 평택 대추리…150가구 마을이 작은 전쟁터로(조선일보. 2006.03.11)
… 특히 작년 2월 문정현 신부 등 ‘반미’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범대위 세력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이 지역 문제의 성격은 ‘생존권 수호’에서 ‘미군기지반대’로 바뀌었다.
[사설]평택 ‘反美기지화’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문화일보. 2006.03.16)
서울 용산 미군기지 및 미 2사단 이전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일대가 ‘반미(反美) 전진기지’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 대추리의 ‘반미 기지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사설]평택 ‘反美’ 방관하는 경찰은 누구 눈치 보는가(조선일보. 2006.04.15)
미군기지 이전이 예정된 평택 대추리 일대 285만평 부지는 법적으론 국방부로 소유권 이전이 끝난 국유지다.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은 法법이 힘쓰는 나라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지금 일부 이전 반대 주민과 反美반미 단체들이 그 땅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언론은 집회의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억압은 물론, 기본적 권리를 탄압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집시법에 저항하는 행위에 대해서 소통과 토론의 여지를 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류 수구매체들의 회초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엉뚱한 방향으로 휘둘린다. 지난 해 여의도에서 무차별적인 공권력으로 운명을 달리한 전용철 농민, 올해 포항에서 최소한의 노동의 권리를 요구하던 하중근 열사의 존재는 우리사회 국가권력의 폭력성과 억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수구매체들은 ‘반미’ 세력과 ‘폭력’ 시위대를 방관하느냐며 공권력을 향해 따끔한 호통을 치고 있을 뿐이다.


[사설] 평택사태,법치 되찾는 계기돼야(국민일보. 2006.05.07)
… 시위대는 정부가 설치한 철조망을 훼손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무단침입하여 방호장비 없이 경비하던 장병 수십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공권력을 유린한 시위대의 불법 난동은 일벌백계로 철저히 응징해야 할 것이다.
[사설] 불법 폭력시위에 최루액 사용은 당연(국민일보 2006.08.22)
… 앞으로도 그래서는 안되겠다. 전의경 버스에 불을 지르거나 무자비하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자들을 향해 물대포나 쏘면서 대응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런 시위대라면 당장이라도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어 분사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현장 검거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진실에 대한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차치하더라도 수구 신문에서는 집회에 대한, 그 집회를 하는 주체에 대한 기계적 형평성도 균형성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러한 수구 신문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더라도 이는 언론인으로써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소양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구매체들은 보수우익단체의 집회는 절대 아니고 꼭 집어 ‘한미FTA 반대’,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노동권 쟁취’ 등 귀에 거슬리는 집회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경찰청의 발표와 함께 ‘교통 불편’으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反FTA… 反核… 反戰 시위대 天國이 된 일요일 서울 도심(헤럴드경제 2006.10.23)
반(反)FTA(한.미자유무역협정), 반미(反美).반전(反戰), 대북제재 반대 집회 등이 열린 22일 서울 도심은 시위대에 완전히 점령당했다. … 경찰은 도심 교통난을 불러올 것이 뻔한데도 3개 집회를 모두 허가했고 신고된 차로를 벗어나 거리행진을 하는데도 속수무책의 모습을 보여 시민들의 비난을 샀다.




집회를 둘러싼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는 ‘색깔론’, ‘폭력론’을 넘어 ‘교통정체’로, 때로는 뒤섞여 조악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지난 11월 7일 경찰청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를 ‘교통 혼잡’을 이유로 불허하자 빈곤한 이데올로기를 ‘교통정체’로 갈증을 해소하는 듯 보였다.


‘도로 점거’ 이젠 그만(문화일보. 2006.11.7)
시민 발목잡는 ‘그들만의 집회’ 안된다(동아일보. 2006.11.7)
[사설]경찰이 오죽하면 노동단체 도심시위 불허할까(동아일보. 2006.11.7)
[사설]도심 대규모 집회.시위 불허 당연(국민일보. 2006.11.7)
도심집회, 금지한다는데…한, 일단 2건은 불허…계속 지켜질까 ; 미, 집회구역 벗어나면 즉시 ‘곤봉세례’(조선일보. 2006.11.8)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상호보완적이다


수구매체들은 사회가 가진 중요한 가치이며 동시에 권리인 집회의 자유, 그리고 집회를 통해 표현되는 절박한 사회적 메시지를 평가절하 해왔다. 집회 참가자들은 ‘빨갱이’이며 전의경을 때려잡는 ‘폭도’로 매도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발목을 잡는 ‘공공의 적’이라 칭하기도 한다. 집회에서 뿌려지는 유인물 하나 제대로 읽지 않고, 왜 2006년 11월 이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 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은 없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는지, 혹시 전의경 부상자는 없는지 카메라 렌즈가 전경과 시위대가 마주하고 있는 그 공간과 시간에만 향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는 신문이 혹은 기자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집회 자리에 나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부안에서, 평택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여의도에서 만난 노동자들과 제주에서 만난 농민들은, 그리고 광화문에서 만난 사회적 약자들은 하나같이 기자들을 믿지 않는다.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이들의 반응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기자들에 대한 그리고 매체에 대한 불신이 깊이 남아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그 동안 신문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 요구하는 사회 소수자의 목소리와 민중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여왔다. 그들의 관심은 집회 현장 분위기이고, 그 현장에서 표적을 찾는다.




신문에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고 하중근 열사의 죽음을 비롯한 노동현안의 문제, 한미 FTA 협상 반대, 빈민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문제 등과 관련한 현안에는 ‘왜’가 빠져 있었고,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층적 논의도 없다. 기자들은 그저 집회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관전하고, 이후 매체를 통해 집회를 평가한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왜 기본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 질문은 던지지 못한다. 지난 해 12월, 홍콩 WTO 투쟁 당시 등장한 전경버스 바리케이드, 컨테이너 벽은 홍콩 경찰이 한국에서 배워간 것이다. 우리의 집회에서는 매우 익숙한 것이다. 집회의 자유는 공간과 시간으로 규제하거나 억압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와대 앞에서,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몰 후 집회를 하는 것 역시 법으로 규제를 받는다. 최근에 등장한 집시법 개정안으로 본다면 모자를 쓰거나 마스크를 하고 집회에 참가할 시 불법 행위자가 된다. 그러나 기자들은 혹은 언론은 이런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집시법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만큼 성숙하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들고 보는 신문의 현실이다.


그러나 집회는 민중들의 의사표현 방식이자 언론 행위이다. 언론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더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집회를 한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커녕 기득권과 주류 질서를 옹호하고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언론이 작동할 때, 그리고 국가권력에 반대하고 국가의 살인적 정책에 의해 평화적.기본적 권리와 삶이 위협받는 그 자체를 언론이 외면할 때, 집회는 언론의 기능을 대체하고 보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별개의 권리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에서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수구매체를 비롯한 매체는 오히려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갈을 채우려는 국가권력에 동참하고자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집회는, 그리고 집회를 통해 이야기되는 것들은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그리고 민중들의 현실이고 요구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노골화, 사회 공공성의 파괴, 평화와 인권 가치의 하락 등. 그러나 수구매체들은 집회를 혹은 집회 참가자들을 궁색하기 짝이 없는 이데올로기로 색깔 칠하면서 폭도로 몰아가고, 이제는 시민들을 향해 교통체증까지 유발시키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테두리를 쳐 가둬두려 한다.


집회는 스포츠가 아니다. 기자들의 관전평의 대상이 아니며 집회에서 일어나는 공권력과의 마찰은 중계의 대상이 절대 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사회를 향해, 혹은 권력과 정권을 향해 소리치는 요구에 대해서 철저히 무관심하면서, 이들이 거리에 서 있는 행위를 저열한 이데올로기로 계속적으로 억압한다면, 너무나 빤하게 거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언론의 기능이, 그리고 그 진실이 권력과 함께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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