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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속출했던 군 인권 관련 사건들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있었던 굵직한 군대 인권 사건만 하더라도 열손가락으로도 다 못 센다.
2005년에는 이른바 ‘인분사건’으로 불리는 논산훈련소 사건(1월)에 이어 김동민 일병의 총기난사사건(6월)이 일어났다. 2005년 11월 이후에는 노충국, 김웅민 병장 등 전역 직후 암으로 사망하는 병사들이 속출하면서 병사들의 건강권이 중요한 인권 문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국적법이 개정되면서 이른바 돈 있고 권세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집단적으로 국적포기신청을 했다. 그런가하면 2005년 말에는 불교(조계종)와 천주교, 개신교에게만 군종장교파견 자격을 부여하는 국방부의 지침에 대한 소수종단의 문제제기도 있었다.
자기자식도 군에 가서 맞아 고막이 터졌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니던 윤광웅 국방장관 휘하의 국방부는 그래서였을까, 그래도 다른 장관들 때보다는 군인 인권 문제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국방부는 장병기본권법과 군인복무기본법을 제정하겠다느니, 장병기본권 상담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느니, 인권상담관제도 도입을 연구해보겠다느니, 고충 상담센터와 복무부적응 병사 진료센터를 설치한다느니 하면서 ‘나름대로’ 바빴다. 병영문화개선위원회도 설치했고(2005년 7월), 그 위원회에서의 논의를 정리하여 대통령에게 보고도 했다(2005년 10월 말). 그 보고서의 제목은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였다. 그리고 2005년 11월. 국방부는 병영문화개선 후속 대책의 일환으로 독일이 운영하는 ‘군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연구해보겠다고 발표하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국방부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2005년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이후 갑자기 프랑스식 국방개혁이 얘기되더니-그러나 이는 실상 말이 프랑스식이지 미국의 군사변화 전력에 부응하는 한국군의 재편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국방개혁 2020’과 그것을 법적으로 담보하는 ‘국방개혁기본법안’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이제는 독일식 군 옴부즈맨인가 싶겠다. 사실, 필자는 프랑스의 국방개혁이야 당시에 금시초문이었지만 독일의 군 옴부즈맨이야 익히 알고 있었고 또한 여러 자리에서 도입 필요성도 강조하던 터라 그 소식을 듣자 내심 반갑기는 했다.
그러나 이내 국방부가 무엇이 답답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의회 소속의 독립된 기구인 군 옴부즈맨 같은 제도를 도입하겠는가,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는지 한번 지켜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들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국방부 차관보가 독일을 방문해서 군 옴부즈맨을 만나고 독일 병영의 실태를 조사하니 어쩌니 했는데, 결론이 내려지는 것을 보면 역시나 참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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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이든 조직이든 무언가 말을 내뱉으면 그 말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그 진정성을 담보할 실천이 따라야 한다. 국방부가 군인 인권과 관련하여 내뱉는 말이나 하는 일에는 늘 그 진정성이 2%, 아니 그 이상이 부족했다. 여기서 긴 얘기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렇게 호기 있게 독일식 군 옴부즈맨 제도 도입을 연구하겠다고 발표했던 사람들이 며칠도 안 되어 군 옴부즈맨을 국방부 내에 만들지 혹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내에 특별기구로 설치할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군 옴부즈맨을 둘 지는 논의해봐야 안다고 하더니만, “군 장병들의 민원 사항을 처리할 군 옴부즈맨 전담 창구를 국민고충처리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설치하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협의”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도 묵살하고 군 옴부즈맨은 장병을 대상으로 활동하게 되는 만큼 업무의 연계성 등을 고려, 국방부 내에 설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재빠르게 상황정리를 해버렸다. 그러다가 그래도 대통령의 체면은 세워주어야 한다고 생각들을 했는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군 옴부즈맨을 두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국방부의 양보라기보다는 국방부가 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을 것이다. 국방부 내에 군 옴부즈맨을 둔다고 일단 주장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양보하는 척하면서 ‘고충위’에 ‘무늬만 군 옴부즈맨’인 기구를 둔다면 자기들로서도 큰 불만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불만이 많다!).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2006년 11월 1일부로 ‘고충위’ 내부에 위원 3명과 2개 조사팀(18명)으로 구성된 군사소위원회가 설치되기에 이르렀다.
고충위 소속 옴부즈맨, 독일식과 무슨 관련이나 있나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폄하할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 위원회가 어떤 권한을 갖고, 무엇을 하는 기구인가 하는 정도는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위원회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대통령 소속 하에 설치되어 있는 기구이다-2005년에 이 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 국무총리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고충이란 행정에 대한 불평, 불만, 의문, 의견, 희망사항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고 고충처리위원회란 그런 고충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히 설치된 기관을 말한다.
고충처리제도가 장점이 있고, 국민의 요망에 부응하는 간편한 제도라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제도는 권리구제 면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고충처리는 알선과 권고에 의해 관계 행정기관의 자주적인 선처를 촉진하는 데 그친다. 관계 행정기관은 권고 등에 반드시 대처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 즉, “권고 또는 의견을 받은 관계 행정기관 등의 장은 이를 존중”(법 제39조 1항)하기만 하면 된다. 권한의 측면에서도, 신고를 받은 고충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사권한이 고충처리기관에 부여되어 있지 않다. 공정성.중립성의 보장 면에서 보더라도, 고충처리기관은 신고인과 관계행정기관 사이에서 해결을 도모하지만, 고충처리가 어디까지나 행정 내부적인 통제인 이상 국민으로서는 이 기관이 공평한 제3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1)
반면 원래 옴부즈맨은 직권에 의한 전문적 의견 표명권, 강력한 조사권한, 제3자적 지위에 의한 직무독립성 등을 갖추어 고충처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도입되는 제도이다. 국방부가 독일식 군 옴부즈맨을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이런 것을 제대로 알고 얘기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적어도 독일의 군 옴부즈맨(Wehrbeauftragter; Defense Commissioner)이 단순한 고충처리기관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군 옴부즈맨은 군에 대한 의회의 통제와 군인의 기본권 보호를 목적으로 설치된, 연방의회의 보좌기관이다(독일 기본법 제45b조). 한창 냉전이 진행 중이던 1955년 이후 독일의 재무장이 성사되자, 독일 국민이 가지는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군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확보하기 위하여 1959년 도입된 헌법상의 기관이 군 옴부즈맨이다.
군 옴부즈맨은 의회의 위임을 받아 군에 대한 외부적 통제를 행한다. 군 옴부즈맨의 임기는 5년이며, 연방의회의 다수결에 의하여 선출되고, 독일 연방의회에 소속되며 연방의회에 대하여 보고의무를 진다. 군 옴부즈맨은 궁극적으로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군대를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이며, 군을 사회에 통합시키는 기능을 하게 된다.
군 옴부즈맨은 아무 때나 사전 예고 없이 부대를 방문하여 직접 모든 계급의 군인들과 면담하고 수집된 자료를 종합하여 군의 내부문제에 대한 가장 실효성 있는 분석과 평가를 할 수 있다. 군 옴부즈맨의 업무는 수 십 명의 전문 인력들이 보좌한다. 군 옴부즈맨은 군인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특별한 청원기관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이 청원의 범위나 대상, 기간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 기능을 실효성 있게 하는 것은 군부대에 대한 방문 및 조사활동이다.
부대방문권을 통하여 군 옴부즈맨은 군의 내부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축적한다. 이를 종합하고 분석하여 의회에 보고하고 국방부장관 등에게 통보함으로써 장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에 대한 경고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내지 규정제정을 권고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하여 실질적으로 보다 합리적인 지휘권 실현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군 옴부즈맨은 그 존재 자체로 이미 군 지휘관, 상급자들의 지휘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그가 1년에 한 번씩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보고하는 연례보고서와 개별사안에 따른 특별보고서는 군의 변화에 기여한다. 이 보고서들은 언론의 지속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독일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두고 군 옴부즈맨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군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식의 반발도 존재하나, 독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보고서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이다.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자고 군과 관련된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군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투명한 해결을 위해서, 군을 사회와 분리된 성역으로 인식하는 군 내부의 인식을 지양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복 입은 시민’인 군인에게도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군 내부에서도 관철하기 위해서 독일 사람들은 현재와 같은 군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생각해냈고, 또한 이를 관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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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옴부즈맨은 군인인권의 호민관이어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인권은 세상에 없다. 그것이 천부인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인권은 항상 쟁취하여야 한다.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다. 독일 사람들이 군 옴부즈맨이라는 제도를 자기네 나라에서 ‘쟁취’할 수 있었던 것도 냉전시기 독일의 재무장에 대해 극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다. 독일 식 국방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이 논의될 수 있었던 것도 군에서 인권을 침해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장병들과 군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끈질기게 항의하고 싸워왔던 (유)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군인인권은 이만큼이라도 진보해왔다.
그런데 거의 언제나 그렇듯이 투쟁의 과실은 엉뚱한 자들이 차지한다. 인권시민단체들이 국방관료 혹은 그 언저리에 맴도는 소위 ‘국방전문가들’에게 자리하나 보전해주자고 군 옴부즈맨 도입을 얘기했던 것이 아니다. 대만의 ‘군인인권촉진회’의 ‘황마마’ 어머니처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군인인권의 침해(가능)현장이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인권상황을 들여다보고, 항의하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을 ‘국가기관’의 지위와 권한을 갖는 군인인권호민관으로 세우자고 군 옴부즈맨이라는 군인인권보호의 방패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진행된 것만 놓고 보면 군 옴부즈맨 도입 논의에서 우리 시민인권운동진영은 완패했다. (국방)관료들은 처음부터 자기들의 결론을 갖고 있었고-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군사.경찰 옴부즈맨의 제도화 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 날은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난 뒤인 2006년 11월 14일이었다―인권운동진영은 이 문제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권운동은 오늘 우리가 비록 ‘패배’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종결되고 마는 싸움이 아니다. 군인 인권을 위해서 본격적인 싸움을 지금부터라도 해나가면 된다. 저들이 국방 전문가라면 우리들 시민들은 인권전문가들이다. 법조문, 법제도가 어찌되어 있건 우리들 시민들은 인권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먼저 느끼는 인권 전문가들이다. 그래서 군인 인권의 문제는 나의 문제이자, 내 이웃의 문제고 내 자식의 문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돈 없고 ‘빽’ 없어서 하나뿐인 외동아들을 군에 보내야 하는 힘없고 가난한 우리 어머니들만큼 이 문제를 잘 알 자가 누구겠는가. 그러면, 자 이제 우리들 인권 전문가들의 힘찬 목소리로 한번 외쳐보자. 우리는 진실로 제대로 권한과 독립성을 확보한 군인 인권 호민관을 원한다고, 그것도 아주 간절히.
사진출처 | 천주교인권위원회 홈페이지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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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2005년에 ‘고충처리위원회법’을 ‘민원사무처리법’에서 분리하여 별도로 제정하면서 “권고를 받은 관계 행정기관 등의 장이 그 권고내용을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고충처리위원회에 문서로 통보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한 점이나, 실지조사권을 강화한 점은 고충처리제도의 한계를 부분적으로 보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