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번 호에서는 인권운동의 대중화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털어 놓아야 할 차례다. 인권운동이 대중운동일 수 있을까? 인권운동의 대중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왜 인권운동은 집회를 조직할 수 없나
인권활동가들만이 하는 캠페인이나 집회를 벗어나 대중 집회에 참가해 보면 인권운동단체들은 왜소하게 느껴진다. 인권단체들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은 기껏해야 수십 명을 넘지 못한다. 상임활동가, 자원활동가들을 모두 불러 모은 수가 그 정도이다.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집회에도 나오지 못하는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때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인권활동가대회 때다. 이래저래 이 대회를 다녀가는 수는 1백 명은 족히 넘기 때문이다. 수적인 열세는 종종 인권운동을 전문가적인 운동으로 인식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집회에서 역할도 대중들을 얼마나 동원하느냐에 있기 보다는 ‘인권’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대중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정도로 인식되게 하고, 이런 상황들이 지속되다 보니 인권활동가들조차도 인권운동은 으레 대중없이 활동가들이 하는 운동으로 인식하게 된다. 대중집회를 조직할 수 없는 인권운동은 대중없이도 할 수 있는 운동방식인 기자회견이나 토론회와 같은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틀에서 벗어나 대중투쟁을 적극 조직하기 위해 애써본 적인 없다.
그렇지만 국제앰네스티는 세계 1백만 명을 거느린 거대한 운동을 펼치는 단체다. 앰네스티가 집중 캠페인을 벌이면 세계의 앰네스티 회원들이 동시에 세계에서 캠페인에 나선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한 국가나 유엔과 같은 거대한 국제기구들을 움직인다. 앰네스티 조직에는 다양한 대중들이 참가하여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그룹별로 구성되는 회원조직은 각국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항의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그룹별로 조직되어 있는 회원들은 그 그룹에서 펼치는 각국의 양심수 석방을 위한 편지 쓰기부터 시작한다. 그 회원들은 주부, 회사원 등 매우 다채로운 직업군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앰네스티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규모는 작더라도 인권단체들에는 회원들이 회비를 내고, 그들이 낮은 수준의 활동에서부터 전문적인 활동까지를 해내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대중적인 인권단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피해자 인권단체들은 수적인 규모는 적어도 대중단체라고 할 수 있다. 민가협은 지금에서는 많이 성격이 변화했지만 구속자 부모들로 구성된 대중단체로 출발했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오월광장어머니회가 실종자 가족들로 구성된 단체로 출발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나 성소수자 단체들, 이주노동자 단체들 중 일부는 분명히 대중단체를 지향하고 활동한다. 그리고 앰네스티 한국지부에는 수천 명의 회원들이 그룹별로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활동가들만의 조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인권단체들이라고 하는 곳들은 분명히 대중단체가 아니라는데 있다. 규모와는 상관없이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단체를 구성하고 활동가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집행하는 단체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위원회’라고 하는 명칭을 가진 단체들의 경우는 위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위원들은 활동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대부분의 활동은 간사로 불리는 인권활동가들이 도맡는다. 이들 단체에서는 자원활동가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중단체의 성격을 갖지는 않는다. 수십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움직이는 인권운동사랑방과 같은 조직도 대중단체라고 할 수 없다. 이 단체에서 자원활동가들은 상임활동가들과 함께 사업팀을 구성하고, 함께 기획하고, 실천하고, 평가도 하기는 하지만, 이 단체의 의사결정구조에서는 배제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자원활동가들의 역할을 높인다고 해도 상임활동가가 주도하는 구조 안에 자원활동가들이 배치되는 선에서 그친다.
그렇다면 왜 인권운동의 대중화가 필요한가? 앞선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운동은 대중을 의식화하고, 조직화하여 대중으로 하여금 운동의 주체로 서도록 만드는 것이고, 그들에 의해서 민주주의적 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활동가란 말도 사실 앞에 ‘대중’이란 말이 생략된 채 쓰이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활동가가 일상적으로 대중과 호흡하고, 그들을 운동에 끌어들이고, 그들을 의식화하여 운동에 동참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은 기본이다. 그런 운동을 노동자나 농민과 같은 민중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운동의 대중화란 뜻은 크게는 두 개의 차원을 갖는다. 먼저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들이 많아서 활동가만이 아니라 그 대중들이 참여한 속에서 실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인권운동이 직접 의식화하고 조직한 대중들과 함께 캠페인이나 집회를 할 수 있는 것이 불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인권운동의 대중적인 지반이 확보하면 할수록 인권운동은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된 대중들 속에서 인권운동을 전담하는 활동가가 배출되고, 그에 따라 인적구조가 탄탄해지면서 지금과 같이 소수 활동가들이 체력과 열정을 소진당하면서 떨어져 나가야 하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납부하는 회비에 의해서 훨씬 더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도 구축할 수 있다. 인권단체들의 가장 좋은 재정확보방안은 이렇게 회원대중들을 조직하고, 그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단체도 운영하고 활동가의 활동비도 지급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중을 조직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인권운동의 대중화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단체 회원을 조직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대중의 관점에서 사업을 기획하여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할 수 있다. 인권의제를 설정하여 대중적인 관심을 높이는 것, 비록 온라인 상에서라지만 인권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항의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와 같이 무차별 대중들을 상대로 한 활동은 이미 대부분의 인권단체들이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활동은 이미 조직된 다른 대중조직들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으로도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런 대중활동은 직접적으로 대중들을 조직했을 때 생기는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시민운동이 시민 없는 시민운동, 시민을 대리하는 운동을 해온 끝에 전문적인 정책집단으로 굳어지면서 운동적 역동성을 상실해 갔듯이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인권운동의 미래도 장담하기는 어렵다. 끊임없이 대중들로부터 운동적 에너지를 흡인하고, 대중들로부터 검증을 받는 인권운동이 진정 건강한 운동이 될 것이다.
대중조직으로의 전화
따라서 여기서 인권운동의 대중화는 직접적으로 대중들을 회원으로 포괄하고 그들의 활동을 보장하는 그런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 실천 프로그램이 참여하는 대중들의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회원들이 할 수 있는 일과 낮 시간을 이용해서 활동할 수 있는 회원들이 다른데 일률적인 활동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들 회원들은 총회와 같은 의사결정구조에도 분명히 주체로서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인권운동이 대중운동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가져서 그렇지 인권운동도 충분히 대중운동으로 전화할 수 있다. 인권단체들에 몰렸던 인권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있을 곳이 되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단체를 떠나거나 후원비나 내는 후원회원으로 물러난다. 인권단체들을 드나들었던 많은 피해자들을 우리는 조직하지 않은 채 방치해 버렸다.
그럼 이들 피해자들 외에는 인권운동이 조직할 수 있는 대중은 없는가? 아니다. 대중들의 인권의식이 날로 높아가는 때에 인권이란 주제를 갖고 대중들을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많아진다. 그러므로 다양한 내용과 방식으로 대중들을 향해 가고자 하는 노력만 경주된다면 얼마든지 인권단체도 대중들을 확보할 수 있다. 어느 단체의 경우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주부, 직장인만이 아니라 사회복지사들로 이루어지는 회원 모임들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처지에서 인권을 사고하고, 인권운동을 고민한다. 노숙인들을 조직하여 그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도록 지원하는 단체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빈곤의 해소를 주장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교육하고, 조직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면 빈곤운동을 하는 단체나 활동가들과 만나서 인권의 내용으로 권리의식을 갖도록 연대하지도 않았다. 즉 인권운동이 대중들과는 동떨어져서 활동가들만의 운동에 너무도 깊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대중을 만나는 길을 차단해 왔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활동가들의 의식 속에 대중운동에 대한 일정한 오해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중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회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럴 때는 인권운동의 진보적 지향을 눈치 안 보고 추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에 맞는 운동을 하는 것과 대중추수주의는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가로막는 인식이 어느 정도 인권활동가들에게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인권운동은 포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조직을 운영하는 데서 대중들에 휘둘릴 것을 생각하거나 대중조직이 갖는 특성상 의사결정구조가 복잡할 것을 걱정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존재는 그만큼 민주주의적 훈련이 덜 되어 있다거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은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인권활동가는 대중들이 인권운동에 나서도록 길을 안내하는 것이지 인권운동의 모든 영역을 도맡아서 해내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만약 위와 같은 가정이 인정된다면 활동가들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어쩌면 지금까지 인권운동이 스스로를 더 낮추어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인권운동이 인권친화적인 소수의 활동가들의 친목단체가 아니기 위해서도, 인권운동의 수공업적 단계를 극복하고 보다 넓고 깊은 사회적 파장을 그려내기 위해서도 인권운동의 대중화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다.
대중에게 인권운동의 길을 안내할 의무
대중은 역동적인 존재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수동적인 지위에서 정치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지만은 않은 존재가 대중이다. 대중은 정치권력의 억압에 의해서 의식 수준이 낮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의식이 트이면 폭발적인 힘으로 권력을 변화시킨다. 종종 목도하는 대중들의 투쟁력은 사실은 국가권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힘이다. 인권운동이 인권을 무기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대중운동으로 전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대중을 인권운동에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인권운동가로의 길을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할 책무가 인권활동가들에게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인권운동의 대중화가 지체되면 될수록 인권운동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권운동의 대중화는 뒤로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지금 현실에서 인권운동의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급하게 서둘러야 하는 인권운동의 과제인 것이다. 인권운동의 대중화에 대한 활동가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다음 호에서는 인권운동의 의제에 대해서 고민해 보기로 하자. 인권운동이 잡아야 할 의제는 무엇이며, 그 의제를 어떻게 사회에서 이슈로 제기할 것인가? 등이 우리가 다음 호에서 같이 논의해야 하는 주제다. (계속)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