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만 있고 절박함은 없다
하기야 교과서에 나오는 위대한 데모들은 ‘운동’과 ‘혁명’, ‘항쟁’이란 이름으로 박제된 채 역사의 한 사건으로서만 가르쳐질 뿐 동시대에 데모는 언제나 불순한 사회 불만세력의 소동이나 사회혼란의 주범쯤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탓하기에 앞서 데모하는 이들 열의 아홉도 요즘 데모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어깨에 잔뜩 힘은 들어갔지만 정작 힘을 써야할 곳에서는 무력하고 심지어 재미까지 없는 일종의 버티기 인내력 시험장 같다는 것이다.
특히 커다란 정치적 이슈를 내건 대규모 집회일수록 절박함을 찾기 힘들다. 2005년 아펙 반대투쟁 당시 한 장면이다. 행사 당일 아펙 행사장인 부산 벡스코로 가는 길목의 강 건너편 다리 위에는 수천 명의 경찰들이 열을 짓고 있었고 그 앞에는 엄청나게 큰 컨테이너 박스가 2층으로 입구 양쪽을 막고 있었다. 시위대는 어느 순간 어른 주먹 굵기 만한 밧줄을 컨테이너에 묶었고 열심히 잡아 당겼다.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각각 컨테이너를 끌어내리자 행사 진행자는 “아펙 반대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다”면서 집회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편에서는 경찰의 진압에 의해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애초부터 행사장으로 가 민중들 삶을 파탄 내는 아펙 정상들의 회의를 파탄내자 목적은 없었거나 구호 속에서만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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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잃어버린 집회시위
데모가 엄청나게 위험하던 시절에는 데모를 하는 것만으로도 찐한 감동 그 자체였다. 당시 데모는 정부의 비민주성, 폭력성을 폭로하는 투쟁의 현장이자 단 몇 십 분만이라도 공권력에 맞서 해방구를 경험하게 하는 짜릿한 교육 현장이었으며 결코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 드라마와 공연, 참가자들 모두가 만들어가는, 대안문화가 상연되는 공연장으로서 문화적 충격을 체험하는 공간이었다.
물론 지금도 절박한 이들, 최소한의 시민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데모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또한 모두들 감동하고 그래서 급속도로 벤치마킹되어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촛불집회, 삼보일배 등의 형식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점거와 농성, 단식과 삭발 등 거의 모든 형태의 데모는 철저히 배제되고 부정되었던 이들의 분노와 열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은 벤치마킹 되었지만 그 절박함에서 비롯된 창조적이고 치열한 정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무대가 커진 만큼 사회자와 참가자의 거리는 멀어졌으며 깃발은 많아졌을지언정 서로를 확인하기는 어려워졌다. 집회장 밖으로의 향한 목소리는 커졌고 더 세련된 유인물들이 더 많이 거리에 뿌려지지만 그에 대한 최소한의 호응도 기대하기 어렵다. 더구나 누구도 이 데모가 어떻게 준비되었는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지만, 오늘도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다들 짐작하고 있었기에 소통은 시위대와 대중들 사이뿐만 아니라 시위대들 사이에서도 멈춘 채 일방통행만이 존재할 뿐이다.
실종된 민주주의를 찾아야
데모는 데먼스트레이션(시위행동)의 준말 그 어원은 데모크라시, 즉 민주주의란 말에서부터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데모는 민주주의, 민주사회와 각별한 관계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말 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언론과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정부 때문에 사람들은 데모에 대해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데모를 열심히 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조차 민주주의나 데모에 대해서는 별 깊은 고민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이 블랙코미디의 출발점이다.
집회에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고 구분도 안 되는 각계 대표들의 대회사, 투쟁사, 연대사가 꽉꽉 메워진다. 여전히 마이크에서는 “노동자 농민 형제 여러분”을 외쳐대는 통에 참석한 여성들을 졸지에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린다(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약한 편견을 담은 발언들이 문제된 적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때를 가리지 않는 ‘동지 여러분’이라는 호칭은 구경하는 시민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데모가 역시 ‘그들만의 리그’임을 확인시켜준다. 전세 버스 몇 대 분량의 머리수를 채울 것인지가 사전 모의되는 통에 작은 조직들, 개인 참여자들은 큰 조직들의 깃발에 가려진 대회장에서 갈 곳을 잃는다.
이제라도 예전에도 데모를 싫어했고 앞으로도 싫어할 이들이 말하는 성숙한 시위문화와는 무관하게 데모를 재구성해야 한다. 데모가 데모답지 못한 까닭은 폭력과 불법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과 관행 때문이고 타협이 아닌 창조성, 절실함과 진정성,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담긴 상상력으로 채우라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서울대책위가 지난해 상반기 100여 일 동안 매일 저녁 광화문 동아일보 앞에서 진행한 촛불집회의 경우, 그 새털 같은 날 수의 위력만큼이나 다양한 시도가 있었고 그것은 일종의 파장을 일구어냈다. 홍대클럽의 인디밴드를 불러 연대 메시지를 이끌어 냈고, 데모 전문 사회자들의 어투를 쓰지 않는 다소 생경한(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듣기 편한) 말투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사회를 보기도 했다. 날이 너무 서서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는 구호를 피한 여러 가지 구호 중 ‘평화를 택하라’는 구호가 평택과 평화를 함께 상징하게 만들었다. 조용한 공명은 평범한 회사원과 단체들의 자원 활동가들이 대추리 마을에 내려가서 지킴이가 되도록, 보통사람들이 평택 문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울림이 되었다.
내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겠다는 진정성은 늘 집행되는 데모의 관행을 깨는 새로운 상상력을 만들 수 있다. 특이한 이벤트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절실한 호소로 되새겨지는 것이다. 2005년 12월, 130명의 한국 농민들이 홍콩 바다에 뛰어들어 WTO반대를 외칠 때, 삼보일배로 홍콩 거리를 가로지를 때, 홍콩 시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부서지는 대추 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해 건물 2층의 창틀을 부여잡고 외치는 어느 여학생의 모습을 상영한 거리에서의 선전전은 보는 이들에게 대추리 폭력사태의 본질을 간명하게 알렸다.
비폭력 저항운동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데모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 여럿이 동의(affinity) 그룹을 구성하고 의사소통을 통해 자기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지도부의 일방적인 지침의 한계를 극복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소규모 그룹들이 창조적이고 민주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한다. 한편으로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저항의 방법을 계속적으로 훈련할 필요성이 있다. 어떤 구호를 개발할 것인가, 어떤 형태로 저항해야 그 목적을 이룰 것인가, 끊임없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규모에 맞는 적절한 기획이 필요하다. 데모하는 인원은 서너 명인데 필요이상의 앰프 볼륨을 올리고 ‘동지 여러분, 신자유주의 원흉 미제국주의를 타도합시다!’는 구호를 외칠 때는 낯이 뜨겁다. 참석에만 의의를 둔다고, 데모 나오면서 자기 목소리 담은 피켓 하나 들지 않고 거리로 나서는 것처럼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하지 않는 것도 고쳐야 할 대목이다. 해야 하는 데 하지 않는 것들을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데모도 즐거워진다. 즐거운 데모는 보는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데모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과 소수자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한 감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집회장의 앞줄에 대표자들을 줄줄이 앉히고 빠짐없이 마이크 잡을 기회를 주는 관행부터 버리자. 그리고 데모는 즐겁게 하되, 싸워야 할 때는 주저함 없이 완강하게 싸우자. 본래의 데모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에 배인 관성부터 깨자.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