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는 허가, 뒤에서는 불법?
집회시위과정에서 ‘불법’논란이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자체가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집회·시위의 ‘허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헌법 제21조제2항). 이에 따라 집시법 역시 집회를 신고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지 허가사항으로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현행 집시법은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것도 질서유지의 책임을 이유로 시위대와 가장 정면에서 맞붙어야만 하는 경찰에게 자의적 집회금지 권한을 광범위하게 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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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집시법 제8조는 다양한 경우를 들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이 규정에 따르면 집시법 제5조제1항제2호에 정한 “집단적인 폭행·협박·손괴·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서는 집회와 시위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 그런데 집회·시위로 인한 결과의 예상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의 허가 금지의 정신을 정면에서 위배한다. 게다가 같은 법 제11조에 따르면 정부주요기관, 청사 또는 저택 등에서는 100m 안에서 집회시위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청해야할 대상으로부터 뚝 떨어진 곳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라고 하는 이 규정은 난센스일 뿐이다. 더 웃기는 것은 제12조의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령에 따라 주요도로 상의 집회는 교통소통을 이유로 금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관련 대통령령을 살펴보면,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전 시내 어느 도로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 집시법의 규정이 이렇다보니 경찰의 입장에서는 금지라는 형식을 빌려 집회와 시위의 개최를 실질적으로 불허할 수 있는 것이고, 경찰의 판단에 따라 금지된 집회는 집회의 개최 자체가 불법행위로 전락한다. 이에 불복하고 집회·시위를 개최하면 집회·시위 참가자는 범법자가 되어버리고, 건수를 찾은 언론은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이들을 처벌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인권위는 국가중재위원회인가
그런데 지난해 12월 6일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문은 도저히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것이라고 보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주문을 통해 해당 집회에 대해 “금지통고철회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정인과 피진정인이 평화적 집회 개최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거나 또는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동 집회의 평화적 개최 진행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라는 희한한 권고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현행 집시법은 헌법의 선언조차 무시한 채 사실상의 ‘허가’를 통해 집회와 시위를 규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야 할 책임은 이러한 기본권 침해를 해소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연히 현행 집시법의 문제를 거론하는 동시에 문제가 있는 집시법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부당한 것임을 천명했어야 한다. 게다가 여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하는 “양해각서 체결 또는 공동기자회견”과 같은 “조건”이 붙을 이유가 없다. 집시법 상 요구하고 있는 서면 신고서의 제출(법 제6조)과 신고사항 중 보완조치(법 제7조)까지 하게 되면 집회시위의 신고에 관한 요식행위는 모두 끝난 것이다.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양해각서나 공동기자회견이 왜 필요한가? 더불어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권고가 “받아들여진다면” 인권지킴이 활동을 통해 집회의 평화적 개최 여부를 모니터링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조사를 할 의무가 있고(법 제19조제2호), 인권침해의 개연성이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할 때는 직권으로 조사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한미FTA 저지를 위한 집회·시위 과정에서 인권침해 등의 우려가 심각할 수준이라고 판단된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얼마든지 이에 대한 모니터링과 인권침해상황의 파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경찰청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집회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가 심각하게 우려된다고 할지라도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하루빨리 자기정체성을 되찾길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권고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결과적으로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겠다”는 의지의 반영에 불과하다. 즉,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는 인권침해가 명백한 사안에 대해서 침묵을 하자니 집회·시위 주최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것이고, 명확하게 법률의 하자와 경찰청의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비판하자니 ‘폭도’들을 옹호한다는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어정쩡한 자세로 양측의 비난을 피하려다보니 이러한 권고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똑같은 이유로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자초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러한 눈치 보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증폭시킨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에 대해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공권력과 언론의 눈치를 볼 정도로 약해져버린다면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자기 정체성을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을 지키라고 만든 것이지 공권력의 대변인이 되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