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평화시위’는 정답이 아니다

민관공동위 평화시위 대책안은 한판 쑈

2005년 11월 여의도 농민 집회에서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진압 경찰 병력에게 죽임을 당한 직후에는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이에 당시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물은 정부는 그 책임을 거꾸로 민중들의 폭력 시위 탓으로 돌리며, ‘평화적 집회·시위’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각종 집회·시위대책을 마련하고 추진 중이다. 이른바 평화적인 집회·시위 문화가 확립되어야 이러한 불행한 일이 사라진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 공세는 민중들의 집회·시위가 격화되는 근본 원인을 숨기는 한편으로 집회·시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민중들의 저항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있음으로 그 문제점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는 최대한 보장한다?


정부와 경찰은 집회·시위가 격화될 때면 늘 엄중한 대응 방침을 발표하면서도 짐짓 평화적인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는 어떤 측면에선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와는 달리 반정부적인 모든 집회에 대해 금지와 탄압으로 일관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정부와 경찰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민중의 생존권이 국가 권력이나 자본의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만큼은 그 본질이 드러난다. 합법적인 집회 신고에 금지통고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1인 시위나 기자회견 같은 단순한 의견 표명조차도 경찰의 힘으로 해산시키는 등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경찰은 1인시위나 기자회견 같은 '폭력'과는 거리가 먼 행사조차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강제해산시키거나 참가자들을 연행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대책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해 12월 한미FTA 반대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연행당하고 있다. 사진 | 박김형준



대표적인 사례로 올해의 2차, 4차 한미FTA 협상에서 보인 경찰의 행태를 들 수 있다. 서울에서 진행된 2차 협상 당시, 경찰은 이에 반대하는 1인 시위와 기자회견조차 대규모 경찰 병력으로 강제 해산하고 참가자들을 연행하였다. 이에 대해 항의가 있자 경찰은 ‘협상장 주변은 특별 경비 구역’이라는 말 외엔 아무런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은 폭력시비 등과는 무관함을 고려해본다면, 경찰의 이러한 무리한 대응은 정치적인 반대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탄압 제주에서 열린 4차 협상에서 더욱 노골화되었다. 경찰은 제주에 약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경찰계엄 상황을 만들고, 한미FTA 저지 제주도민 운동본부가 신고한 집회들을 “집회개최 시 명백히 현행법을 위반해 공공질서에 위협을 가할 것이 우려”된다거나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모두 금지 통고하였다. 그러나 제주도민 운동본부는 지난해 5월 12일 1차 도민대회부터 3차 협상 기간인 9월 5일 열린 도민대회까지 수차례에 걸쳐 이미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를 진행했었기에 경찰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정부와 여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뭇매


그 외에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문제, 2005년의 쌀 협상 비준과 부산 APEC, 부안 핵폐기장 문제 등은 정부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으며 추진하기보다는 압도적인 공권력을 동원하여 사실상의 경찰계엄을 조성하며 반대 목소리를 억누른 사례들이다. 이는 정부 스스로도 이러한 정책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든 반민중적 정책임을 잘 알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찰력을 앞세워 보호받는 것은 정부 정책만은 아니다. 자본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에도 경찰 병력은 사용된다. 건설노동자들의 합법적인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하던 포스코는 지역 경찰과 유착하여 오히려 불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였다. 사태는 악화되어 건설노동자들이 포스코 건물을 점거하기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언론의 뭇매를 맞자 경찰은 또 다른 평화적인 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건설노동자 하중근 씨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정부와 경찰은 정당성이 결여된 사안일수록 더욱 강압적인 물리력을 사용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탄압해왔고, 이에 평화적으로 의사 표명할 기회를 박탈당한 민중들의 저항이 더욱 격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정부와 경찰은 이를 역이용하여 소모적인 폭력 시위 논란을 조장하여 정작 중요한 비판의 내용을 희석시키고, 반대자들에게는 ‘과격 폭력 집단’의 이미지를 덧씌워 살인적인 시위 진압의 명분으로 삼는 전략을 취해왔다.


민관공동위 대책안은 말짱 거짓말


지난해 초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위한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는 ‘평화적 집회·시위 대책안’을 마련했다. 그 대책안이라는 것은 집회·시위 통제 강화를 핵심전략으로 삼고 있다. 두 농민이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으로 사망한 뒤 비판 여론이 일자 민간위원들과 정부 장차관급 인사들로 민관공동위를 구성하여 대책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평화 시위’를 강조하는 민관공동위와 대책안의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정부의 기본 입장은 유혈 충돌의 책임을 정부의 반민중적 정책 강행과 경찰 폭력이 아니라 시위대의 폭력 탓으로 돌린다. 집회·시위가 국제인권조약과 헌법에 보장된 민주사회의 핵심적인 인권이라는 의미는 빛바래지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운다.


대책안에 포함된 30개 과제들은 실질적으로 집회·시위를 더욱 엄격하게 경찰의 통제 아래 두는 내용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실제 대책안을 기획하는 실무를 경찰이 맡고 있으며, 민관공동위는 사실상 이를 통과시키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런 대책안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1차 회의에서 공동위를 구성한 뒤 2차 회의에서 바로 32개 대책안이 나왔다.).


이 대책안에는 폭력·시위 전력이 있는 특정인이나 단체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집회 참가를 차단하고, 시위 현장에 소위 ‘위해 물건’의 반입을 금지시키며, 소음 규제와 경찰통제선, 채증과 처벌을 강화하고, 민사상 배상청구를 실시하는 등 집회·시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협약(MOU)이나 집회·시위 양해 각서 체결 등 노동, 사회단체들을 순치시키는 방안들도 포함되어 있다. 경찰 폭력을 제어하는 대책으로는 유일하게 진압 경찰에게 개인 식별표지를 부착하는 항목이 있었으나, 그나마도 전의경들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3차 회의에서 폐기되었다.


정책과 관련된 항목들로는 “정책 수립 시 의견 수렴 노력 및 정책 홍보 강화”, “관계부처의 시위현장담당관 지정 운영”, “공무원의 갈등 관리 교육 강화” 등이 있으나, 실효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민중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을 소외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인데, 이것은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 실무 공무원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책안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민관공동위의 해체와 대책안 반대의 입장을 즉각 표명했고, 아울러 개악된 집시법을 재개정하고 경찰 폭력에 대한 통제 방안을 강구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적대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기보다는 경찰을 앞세워 거꾸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 집회·시위가 과격해지거나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그 주최자나 가담자는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그렇지만 앞서의 예에서 보듯이 경찰의 불법 폭력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단만으로 집회·시위 자체를 아예 금지하고, 심지어는 통행을 제한하며, 불법적인 체포와 감금까지 일삼아도 규제나 처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현재 사회적 상황, 민중의 삶은 오히려 보다 많은 집회·시위의 자유의 보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자유롭게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는 관심도, 철학도 없는 상태에서 평화적인 집회·시위만을 을러댄다고 집회·시위가 결코 평화롭게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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