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회진보에 기여하는 의제에 선택과 집중을

인권운동 길찿기 7 | 총체적인 인식과 실천을 위한 긴장이 필요

앞선 글들에서도 거듭 지적하였지만 한국의 인권운동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복잡할 정도로 너무나 많다. 그만큼 인권운동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면적인 총공세는 인권의 기초들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거기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겪는 정치지형의 복합성이 더해진다.


이렇게 어지럽기만 한 인권의 지형 속에서 인권운동은 어떤 의제를 붙잡고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호에서는 한국의 인권운동이 중심의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해 보자. 물론 여기에는 사회진보의 큰 흐름 속에서 인권운동이 기여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이 연재의 밑그림이 그대로 적용된다. 즉 진보적 인권운동을 지향한다고 할 때 지금 여기 발 딛고 있는 인권운동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과제와 요구 나열로 그친 인권주간


인권단체연석회의(이하 인권회의)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11일까지를 제2회 인권주간으로 설정하였다. 2003년 하반기부터 세계인권선언일을 전후하여 인권단체들이 공동행동이란 이름으로 집중 활동을 벌였는데 2005년에 처음으로 집중 활동 기간을 인권주간으로 설정하였고 지난 해 다시 한 번 인권주간을 설정한 것이다. 이 인권주간을 기획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인권주간 동안 매일매일 주제를 정해서 집중하는 방안, 농성을 하면서 몇 가지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안, 각 단체들이 갖고 있는 것을 그대로 모아서 제기하는 방안 등이었다. 보다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하다가 결국 비상회의까지 소집하여 내린 결론은 인권단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투쟁 사안들을 전부 모아서 3대 과제와 20대 요구안으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집중적인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낙착을 보았다. 공통의 실천행동은 논의할 당시 12월 6일 3차 민중총궐기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그곳에 인권회의의 깃발을 들고 집중한다는 정도였고, 그 외의 다른 방안은 찾지를 못했다.


이에 따라 ①한반도 평화와 민중생존권 위협하는 노무현 정권 퇴진 ②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가로막는 반민주악법 개폐 ③모든 소수자에 대한 차별 철폐를 3대 과제로 정리하였다.


①번 과제는 민중운동진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과제였고, 민중운동진영의 투쟁에 연대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에 해당하는 요구는 △민중생존권 파괴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중단하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중단하고, 김지태 이장을 석방하라! △노사관계로드맵 야합안·비정규노동법개악안 폐기하라!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주거·의료·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라! 등이었다.


②번 과제에 해당하는 요구로는 △하중근 열사 폭력살인 진상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경찰은 생존권적 저항에 대한 폭력대응을 중단하라! △개악집시법을 악용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탄압 중단하라! △반인권·반민주악법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국회는 민주적 사법개혁안을 연내 처리하라! △반민주악법과 인권탄압으로 구속된 양심수를 석방하라! △반인권 국가범죄에 대한 시효배제 법안을 제정하라! △억울한 죽음을 근절하기 위해 검시관법 제정하라! △사형제도 폐지하라! 등이 제시되었다.


③번 과제에는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이익집단 편입을 철회하라!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사회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사회복지시설의 공공성과 민주적 운영을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하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하라!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을 확산하는 에이즈예방법 전면 개정하라! △학생인권법 제정하라!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을 제정하라! 등이 들어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갖는 규정성


여기에서 보듯이 인권단체들의 요구안은 인권단체들이 투쟁하고 있는 사안들이 나열식으로 정리되어 있고 거의 대부분이 법과 제도의 개선에 관한 문제들이다. 인권단체들은 정치권의 급격한 정계 개편과 대선국면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국회가 입법 활동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 아래 올해 정기국회에서 필사적으로 이들 인권입법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단체들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병역법 개정과 같은 과제는 제외되었지만, 그것이 비상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은 것일 뿐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이처럼 산적한 인권입법과제들을 나열하는 식의 요구안은 사회에서도 무시되었지만, 인권운동진영 내에서도 크게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단은 각각의 단체들이 자신들의 사안에서 한눈을 팔 수 없는 다급한 처지임을 고려하더라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인권운동이 급격히 파편화되며, 그로부터 백가쟁명 식의 인권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이다. 가령 인권입법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각의 인권입법과제들을 나열하여 요구하기보다는 국회 자체를 압박하여 국회가 정상적인 입법 활동을 하도록 하는데 힘을 모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결국 인권주간마저도 힘을 집중하지 못한 채 분산되고 각개 약진하는 방식으로의 운동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진행된 한미FTA 5차 협상을 거치면서 미국은 거의 자국 내 법률을 손대지 않는 반면 한국은 최소 100개 정도의 법률에 손을 대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되고 있다. 투자자의 국가 제소권 문제도 등장하고 있다. 이제 한미FTA 협상이 이대로 가면 미국을 기준으로, 미국식 자본주의 방식대로 법과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다. 유엔의 국제인권조약 기준은 가볍게 무시하는 한국정부지만 미국과의 협정이 체결된다면 이를 반드시 이행에 옮기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입법 활동이 미미한 가운데서도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의장 직권상정으로 통과시킨 것이나 노사관계로드맵 법안들을 환노위에서 통과시킨 것은 이와 같이 미국식으로 변화되는 환경에 노동시장을 적응시키기 위함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한미FTA로 구체화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족쇄 풀린 국제자본주의에 대한 숭배이고, 재화와 서비스의 민영화에 대한 숭배이며, “기업의 세계지배이자 전적으로 모든 것의 상품화”란 규정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조효제 교수는 미셸린 이샤이가 지은 『세계인권사상사』를 번역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서 인권의 구조적 역학을 이전의 시기와 비교해 제시한 바 있다(아래 표 참조).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시장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고, 시장이 강화되면서 공적 영역은 분절화 되며, 사적 영역에서 국가와 시장의 공세(차별의 심화)는 강화된다. 인권운동이 그토록 통제하려 했던 국가는 한편으로는 약화되면서 시장의 이해를 관철하는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집행위원회”의 역할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는데, 이는 다른 의미에서는 국가의 억압적 성격이 강화된다는 말도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가 공적 영역, 사적 영역을 가리지 않고 강화될 때 이에 맞서는 인권운동은 국가에 대한 통제의 강화, 공공영역에 대한 옹호, 사적 영역에 대한 방어의 의무를 진다. 개인의 정보마저 상품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특성(그래서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고 하지 않는가!)인데 과거의 네이스(NEIS) 추진이라든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전자주민증, 건강정보 데이터베이스 추진 등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사적 영역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으면 다른 영역에서 아무리 ‘진보적’이라도 결국 인권의 반대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상품화와 정보화가 일치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신자유주의 아래서는 피할 수 없는 경향성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인권운동만이 아니라 모든 진보운동이 공통적으로 맞닥뜨리는 공룡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평화의 문제


인권운동이 개별 단체들의 과제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분산성을 극복하지 못할 때 가령 민중들의 생존권적 저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국가폭력 문제에 대한 기동적인 대응은 어려워진다. 인권운동이 어느 진보운동진영보다 먼저 나서서 이를 사회 의제화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이끌어내야 함에도 하중근 열사 투쟁에서 인권운동은 뒷전에 머물러 있었고, 최근의 민중총궐기에 대한 검경의 탄압에도 효과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또 한미FTA 협상 저지 투쟁에서도 일부 단체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할 빈곤의 심화를 의제로 활동하고 있고, 노동권을 향해 집중되는 자본과 권력의 공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여전히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결국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투쟁영역에서 자신의 분야와 관련된 입법 활동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개별 법률들이 발 딛고 있는 민주주의 구조는 이미 허물어지고, 그에 따라 개별 성과들도 결국 형해화 되어버리는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될 위험성이 짙다. 그 때문에 각각의 운동단체들은 자신들의 투쟁과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을 항상 연계하여 사고하고, 활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에이즈 감염인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한미FTA와 에이즈 문제를 연결하여 민중총궐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하나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평소에는 자신의 사안들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다가도 한미FTA와 같은 총체적인 투쟁이 요구되는 때에는 여기에 모든 역량을 일시적이라도 집중하는 방안, 나아가 지속적인 연대의 방안이 구체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전략의 변경과 깊은 연관을 갖고 진행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저지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9.11 테러 이후 세계 곳곳에서 가상의 적에 대한 선제공격과 신속한 공격을 통해 위협을 제거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은 북한을 정밀타격하고,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주일미군-주한미군의 재배치,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의 역할 변경을 꾀한다. 그러므로 한반도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라 전쟁기지로 변모하는 것이고, 그 핵심에 평택미군기지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남단은 미국의 군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 전쟁터로 변하게 되며, 미국의 세계를 향한 전쟁기지로 쓰임이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미간의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전략적 유연성의 폐기 등으로 평화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운동이 요구된다. 지난 해 평택 문제에 대해 인권운동은 ‘평화적 생존권’을 중심 의제로 제기하여 결합한 것은 주민의 생존권 차원을 넘어 이 운동을 보편화하는 게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집중하지 못함으로서 평택 문제는 보편성을 획득하지는 못하고 있다. 인권의 관점에서 평화권의 문제를 정리하고, 평화권의 관점에서 평화운동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면서 평화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는 것은 인권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총체적인 저항이 요구될 때


한반도 남단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실현되는 과정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몰락(열린우리당의 자중지란)과 미국에 의한 종속성의 심화 및 보수화로 나타난다. 그럼으로 인권개혁입법과제들을 추진하기 위한 제도권 내 동력은 이미 실종되었고, 다시금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인권운동은 미국과 노무현 정권, 보수 세력들의 신자유주의 연합 헤게모니(물론 미국이 주도하는)를 어떻게 깰 것인가, 이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하는 민중 생존권의 박탈(빈곤의 심화)과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는 이 공통의 ‘적’에 대한 효과적인 투쟁전선을 창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인권회의가 2회 인권주간에 제시하였던 3대 과제 영역은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요구가 나열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인권운동진영이 이 시기에 합의할 수 있는 요구들을 과제의 성격에 맞춰서 집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활동가들의 정세와 투쟁 과제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과 공유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권운동만이 아니라 다른 진보운동들이 가진 고민과 그들의 동향에 늘 관심을 갖고 그들과 운동으로서 연대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처럼 인권운동의 의제는 종합적이다. 인권의 의제를 각자 운동영역 안에 한계 지우고 전체적인 흐름, 전체적인 의제를 놓칠 때 운동은 계속 내부로 침잠하면서 대중적인 영향력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의제를 선점하여 갈 가능성이 높은 앞으로의 상황에서 인권운동은 늘 부분에 집중하면서도 전체를 놓치지 않는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인권 감수성으로 무장된(?) 인권활동가의 눈으로 이런 의제들을 종합해내고, 분석해내고 제기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만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이 인권운동이 현재 맞고 있는 운명인 것이니 어쩌겠는가.


다음 호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해 국가기관들의 인권활동에 대해 점검하고, 이에 대한 인권운동의 전략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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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길헌

    내용을 입력하세요신촌 연대앞에서 상암동 까지오는 버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