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분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의 아버님과는 20년 가까이 인연을 맺으며 이래저래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요. 그 아버님은 자식의 주검을 화장하고 임진강 어딘가에 재를 뿌리고 돌아서면서 “이 애비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왜 할 말이 없었겠습니까? 서울로 유학 보낸 막내아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에 숨이 끊겼는데,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대충 넘기려 했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해서 왜 할 말이 없었겠어요. 자식을 앞세우고, 자식을 가슴에 묻고 돌아서던 그, 말단 공무원 33년 인생을 고스란히 국가에 바쳤는데, 그 국가는 막내를 죽이고도 온갖 압력을 가해서 말 한 마디 못하게 해 놓았던 그 시절을 아버님은 외로웠다고 회상하십니다. 아버님이 보기에 잔챙이만 처벌하고, 정말 책임져야 할 관계기관대책회의 고위 관료들은 다 빠져 버렸고, 아직도 사건의 전말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이번 호 표지에 아버님 사진을 실었습니다. 아마도 남영동 대공분실 그 시커먼 벽에 내걸린 아들의 초상화를 응시하고 있을 이 아버님의 눈은 무엇을 말할까요?
세상은 변해서 막내가 죽어간 고문실인 509호에는 365일 그의 영정이 있고, 향로가 놓여 있고, 촛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그 옆에는 그가 물고문을 당했던 욕조가 그대로 비치되어 있습니다. 1976년 대공분실이 생긴 이래 고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고, 감옥으로 끌려갔을까요? 그런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제를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격세지감입니다. 인권경찰을 표방하는 그들, 그렇지만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인권을 억압하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보니 박종철을, 그리고 6월 민주항쟁을 입신양명에 이용한 이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목숨 걸고 지킨 선배는 “시장경제와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박종철의 정신을 계승하는 거라는 망언을 쉽게도 내뱉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변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성찰을 내내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특집으로 사회권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사회권의 여러 권리 항목들에 대해서 권리 담론으로 얘기되어야 할 것들이 ‘값’으로 매겨지는 상황들에 대해 인권적 메스를 들이대려고 하는데, 첫 번부터 영 신통치 않네요. 그만큼 우리조차도 사회권에 대한 관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러면 그런 대로 우리의 논의들을 이곳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달리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호에는 대추리 지킴이 마리아 씨를 만났습니다. 대추리 주민들이 정부와 협상에 나서고, 주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외부인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있는 이때 그는 여름에 수확할 마늘을 심었다고 합니다. 그가 전하는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죠. 그가 말하는 희망을 함께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