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두 개의 봄바람

두터운 외투 한번 꺼내 입어 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입춘에 우수까지 지났습니다. 그러는 중에 한반도에 오랜 겨울을 깨우는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북경의 2.13 합의는 전쟁과 냉전의 대결로 점철되었던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질서를 세우는 바람인 것 같습니다. 그 합의가 제대로 이행이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종전선언에 이어서 평화체제 선언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2007년 올해는 한반도 역사가 새로 써질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다른 2.13 합의가 있었습니다. 평택에서 정부와 팽성읍 대추리 주민대책위원회 간에는 3월 말까지 주민들이 이주한다는 협상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4년 동안, 그리고 주민들이 정부의 미군전쟁기지 정책에 반대하는 촛불을 든 지 9백일이 넘었는데, 결국 평화세력의 힘이 모자라서 억지협상에 의해 정든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북한 정권과는 외교관계를 트고, 핵 폐기를 전제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한 미국의 전쟁기지, 미국의 신속기동군의 발진기지 역할을 할 평택 미군기지에 생명과 평화의 땅을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업의 마스터플랜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2008년이라는 시한을 훌쩍 넘어서 2013년에도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이 종료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막무가내로 주민들을 쫓아내겠다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면서 주한미군재배치계획은 수정하지 않고, 평화를 위협하는 침략전쟁기지를 만든다는 모순된 정책방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그렇게 된다면 평화체제는 아주 기만적인 형태로 한반도에 고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폭력의 구조가 해체된 상태를 말합니다. 벌써부터 북한의 핵무기는 폐기한다고 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은 더욱 확고하게 보장받겠다는 국방부 고위관료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만의 평화체제가 아니라 핵우산도 미군기지도 없는 상태라야 진정한 평화체제가 구축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모두 이주한다고 해도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계속 반대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호 주거권을 다룬데 이어서 교육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시기적으로 교육권에 대한 문제가 부각되어서가 아니라 사회권에 대해 차근차근 접근해 보자는 기획 의도가 반영된 것이죠. 교육의 공공성이 이런저런 이유로 해체되고 있고 한미FTA가 체결되면 교육도 시장에 완전히 개방되는 현실을 미리 걱정해보기도 하고, 조기영어교육의 문제점이나 국가주의적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비판해 보고자 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건강권에 대해서 다뤄볼 계획입니다. 미디어세탁소에서는 9명이나 불타 죽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얄팍한 태도를 주소재로 다루었고, 이슈에서는 다시금 살아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조명해보고자 했습니다.


현실은 자꾸 봄이 아니라고 일깨워 줍니다. 봄을 만들기 위해 얼음장 밑에서도 봄을 꿈꾸는 생명들이 있듯이 ‘인권의 봄’을 만들기 위한 운동의 기획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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