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다시금 국가보안법과 맞서싸워야 함을 깨달으며

올곧은 교사의 길을 가는 최형*에게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설을 지냅니다. 차가운 구치소 바닥에 앉아 세상을 탄식하며 역사의 명운을 저울질할 형을 생각하니, 가족과 함께 차례다 성묘다 하는 일상 속에 묻혀 있는 삶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2월 13일 면회에서 둘째 딸 연수의 졸업식을 챙겨줄 것을 당부하는 형과의 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여아에게 어떤 위로와 선물보다도 아버지의 귀환이 더 절실하게 필요하리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둔 밤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사실보다 더 따뜻한 위로는 없습니다. 이것은 밤하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어둔 밤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수에게 줄 졸업 선물로 고른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라는 책 안에 있는 이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다시 어두워만 가는 차디찬 역사의 밤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오늘 다시 우리 사회에 밀려온, 특히 전교조를 향해 독기 품은 칼날을 휘두르는 공안당국과 수구 세력의 비열함에 대해, 아니 그 냉정함과 치열함에 대해 더 깊이 숙고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2007년 우리 민족의 운명을 가를 대선을 앞두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 까닭입니다. 그 최전선에 전교조가 서 있습니다.


작년 7월 교육위원 선거를 앞두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부산지부의 통일학교 운영에 대한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그것이 전교조에 대한 조직적 음해의 첫 신호탄임을 우리는 깨달았지요. 그리고 그 무렵 <조선일보>는 서울지부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문제 삼아 마치 전교조가 무슨 용공조직이라도 되는 양 친북적 이미지를 덧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공격목표가 단지 교육위원 선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응은 너무 미약했었지요.


전교조의 현주소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합니다. 안팎의 공격과 내부 갈등 속에서 험난한 길을 헤쳐가는 전교조의 현주소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누군가의 표현처럼 수염을 뽑아도 으르렁대며 달려들 힘이 없는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라는 말에는 일부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 땅의 친미예속 세력들이 노리는 지점이 바로 거기지요. 한때 참교육의 깃발 아래 민족, 민주, 인간화의 기둥이 되었던 전교조가 이제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지금이 전교조를 칠 절호의 기회다. 무기는 전과 다름없는 색깔론. 용공과 친북보다 참교육을 더 강력하게 몰아붙일 무기는 없다. 공안당국과 친미언론, 한나라당의 전방위적 공격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마녀사냥의 사냥감이 된 전교조와 학생들


부산지부의 통일학교 사건은 대한민국의 수사관행이 안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문제의 교재는 이미 국내에서 출판되어 국내 학술논문에도 빈번히 인용되는 북한의 역사 교과서를 통일교육에 관심 있는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위원회 소속 교사들이 자료집으로 제작하여 읽고 토론한 것’입니다. 해당 교사들은 물론 동료교사들을 소환하고, 가르치는 학생들을 협박·회유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공안사건으로 엮어 넣으려는 경찰들이 보여주는 구시대의 관행은 지금 우리나라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지 의심케 합니다. 그 과정에서 숱한 고초와 상처를 받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지요? 특별한 혐의를 잡을 수 없자 시간을 벌면서 정치적인 때를 기다리는 저들의 저의가 참으로 끔찍하고 두렵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부산지부 통일위 선생님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북지부의 김형근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실천한 통일교육 사례를 마치 학생들을 빨갱이 교양교육에 의도적으로 참여시킨 양 매도하며 제2의 마녀사냥을 강행하는 일도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조선일보>는 전북 임실의 관촌중학생들과 교사들이 지난 2005년 5월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 전야 문화제’에 참석한 것을 1년도 더 지난 2006년 12월, “빨치산 추모제에 전교조 교사가 인솔했다”며 교사와 학생들을 ‘빨치산 숭배자’라고 왜곡 보도했지요. 부당한 침략 전쟁에 반대하여 평화를 일깨우고 실천하는 학생들 덕분에 교육청이 통일교육 시범학교로 지정한 게 엊그제 일인데,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 하여 통일에 대한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을 거대언론사인 <조선일보>가 나서서 마치 탐욕스러운 사냥감 다루듯 마녀재판을 하는 것이 이 땅의 미래인 어린 학생들에게 얼마나 깊은 불신과 상처가 되는지 저들은 알고 있는 걸까요? <조선일보>의 부당한 왜곡을 규탄하는 개인, 가족, 교회, 동창회 등의 목소리를 모아 300건에 이르는 ‘작은 성명서’ 운동을 일궈내어 진실을 깨우쳐 나가고 끝까지 꿋꿋하게 정의를 지키려는 전교조 전북지부와 통일위 선생님들, 그리고 관촌 주민들의 하나 된 마음을 그 어떤 권력이나 이데올로기 공세로도 결코 꺾을 수 없으리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평화를 가르치는 것이 교사가 할 일


최 형과 김 선생님, 두 분 서울지부 전 통일위원장들 집에 거짓말을 하면서 들이닥쳐 압수 수색하고 불과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소환과 구속 절차를 밟아나가는 걸 보면서 부산과 전북 통일위원회 활동에서 혐의점을 찾지 못한 저들이 이번에는 아예 각본을 짜서 한 편의 용공드라마를 만들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최 형과 김 선생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많은 자료와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면서 토론을 통한 참여형 수업 방식으로 미국과 북한을 바로알기 위한 평화교육을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친북과 반미 인사로 둔갑하여 저들의 올가미에 묶이다니 이는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자주성과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6·15공동선언의 취지에 맞는 통일 교육을 한 게 죄라면, 이 땅의 아이들에게 평화를 사랑하고 갈라져 살아온 민족과 화해하라고 가르친 게 죄라면 저와 동료들 모두가 같은 십자가를 져야 마땅합니다.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활용할 통일교육 교재는 참으로 많습니다. 2000년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겨레의 통일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하는 남북 정상의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서울시교육청은 전국 어느 시도보다 통일교육을 권장해 왔습니다. 두 선생님은 열정적인 통일교육의 결과로 수상도 하고 언론의 주목도 받았습니다. 두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통일교육을 시행한 2000년대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사망 사건이 있었고,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여 평화에 대한 열망이 높아가면서 미국의 범죄와 오만이 전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통일교육의 목표와 방향이 자주와 평화에 있다면 응당 거기에 상응하는 자료를 찾아 읽고 판단하는 게 교사의 사명이며,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는 것 또한 올곧은 교사가 걸어갈 길입니다.


남북화해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의 실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 교육부나 <조선일보> 등에도 올라와 있는 자료를 연구하고, 평화 교육을 위해 미군이 저지른 야만적 범죄를 비판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게 어찌 반미이고 친북이 된단 말인가요?


전교조 게시판에 올라온 선군정치 사진 한 장을 문제 삼아 <조선일보>가 발표하고 검찰이 수사한 뒤 법원이 뒤를 봐주는 구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난 거지요. 그들이 문제 삼는 선군정치 사진은 교육부 평화학교나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NK조선일보 사이트에 몇 백 배나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선군정치를 찬양.고무한 것도 아니고, 교육부나 <조선일보>에 이미 공유되고 있는 사진인데도, 그걸 핑계 삼아 서울지부 통일위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까페에 불법 잠입, 감시, 도시하고 그 안에 올라온 글들 가운데 몇 개를 가지고 짜맞추기 식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이 읽은 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글이라면 당연히 필자들부터 불러다가 조사해서 그 이적성 여부를 따져야 할 텐데, 우습게도 필자들은 가만 두고 그걸 내부 게시판에 올린 사람들만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소지, 유포 및 고무·찬양 죄를 지었다니 정말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입니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의 실체를 감추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려고 약자들의 머릿속을 바늘로 찔러대는 세력들처럼 교육부나 <조선일보>에 널리 퍼져있는, 따라서 존재하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는 ‘선군정치’를 핑계삼아 선생님들의 머릿속과 가슴 속까지 난도질하려는 저들의 행태는 끔찍함을 넘어 징그럽기까지 합니다.



이제 어둠을 물리치고 아침을 맞아야


다시, ‘밤이 깊을수록 별이 빛난다’는 신영복 선생님 말씀을 상기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한 마디가 도화선이 되어 타올랐던 2004년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소리 없이 삭으라든 지금,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내지르는 먹먹한 어둠 속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통일조국과 민주주의의 미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이 아닙니다. 지금은 별이 빛나기 위한 어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다 같이 어둠을 물리쳐야 하는 때입니다. 일제가 독립군을 잡아가두던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하의 반공법과 이종교배를 거쳐 기형으로 성장하여 이제 다시 광기를 부리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이 땅의 평화와 인권은 설 곳이 없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세상에 참교육은 없으며 전교조가 내세우는 민족과 민주와 인간화는 실상 반쪽의 민족이고, 기형적인 민주주의며 인간화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전교조가 참교육을 이루기 위해 국가보안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과 그 명운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입니다.


2002년, 형의 강연을 듣고 처음으로 민족과 분단의 구체적인 현실에 눈을 떴습니다. 비록 늦깎이지만 민족단합과 평화통일의 기운을 담아 다시 한 번 국가보안법과 맞서고자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평화와 민주의 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오래 전이지만, 온몸으로 국가보안법과 맞서 싸워야 함을 지금처럼 절실하게 깨달은 적은 없습니다. 아직 따뜻한 봄소식 전해드리지 못하여 송구스럽습니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살아 숨 쉬는 어느 공간에서나 ‘국가보안법을 없애자’고 외치며 살겠습니다. 거스를 수 없이 다가오는 봄기운과 함께 진실과 정의의 승리를 믿습니다. 안에서 웃음과 용기를 잃지 마시고 더 굳고 단단한 모습으로 어둠에 빠진 이 세상의 작은 별빛이 되어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정해년 첫날 유동걸이 드립니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있는 전교조 전 통일위원장 최화섭 선생님께 유동걸 선생님이 드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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