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허물어지지 않은 불관용과 차별의 장벽

최근의 국가보안법 적용 흐름

요사이 UCC(손수제작물, user created contents)가 여기저기서 유행이다. 자신만의 창의적인 생각들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알릴 수 있는 이 인터넷 영상물 제작은 새로운 소통가능성과 창의성에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열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을 떠올리면 바로 그 창의성으로 인해 UCC를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UCC가 허용하는 주제의 다양성과 자유로운 표현방식이 자칫 낯설고 기이함을 불러일으킬 경우, 이는 우리 사회의 불관용의 벽, 색깔논쟁에 부딪혀 여지없이 국가보안법의 이적성 시빗거리로 전락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신 트렌드에 대한 이 어이없는 걱정은 국가보안법이 행위가 아닌 인간의 내심을 추정해서 처벌한다는 독소조항에 이르러서는 현실적인 우려로 연결된다.



줄어든 구속자, 그러나 색깔론은 끊이지 않아


최근의 국가보안법 구속사례들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1) 또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싸움, 한미FTA 반대운동 등의 이슈 대응으로 인해 국회에 상정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에 시민사회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구속자가 줄어들었다는 현상도 크게 작용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2006년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흐름을 짚어보면 구속 사례를 벗어나 내내 국가보안법을 겨냥한 이적성 논란, 색깔논쟁이 끊이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강정구 교수의 인터넷 칼럼 기고문과 연구논문 내용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불구속 재판이 진행되는 가운데 행정자치부는 전국공무원노조가 발표한 을지훈련 폐지촉구 성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는가 하면 경찰은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 교재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연례적인 노동계 남북교류 행사에 참가하려던 민주노총 관계자의 방북이 느닷없이 불허되기도 했다. 먼저 조중동 언론에서 일부 단체 활동이나 집회 내용을 문제시하고 지면에 보도하면 우익단체들과 한나라당이 경찰, 검찰을 압박하고 수사를 촉구하는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우익단체들이 앞장서서 법원 앞 시위 등 대규모 집회 등을 궐기하고 다시 조중동이 여론몰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단죄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는 국가보안법이 독자적인 순환구조와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사회에 뿌리 깊은 이데올로기적 이분법 구도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6년 8월 일부 언론이 공무원노조의 을지훈련에 대한 성명서에 문제를 제기하자 행정자치부는 검찰에 공무원노조의 수사를 의뢰했고 현재 공무원노조 노조원 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2006년 주요 구속사례


지난 2006년 주요 구속사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총련 불탈퇴 한총련 대의원들은 구속자 수가 큰 폭으로 줄었으나 꾸준히 수배, 구속되어 국가보안법 적용기관의 주요 대상자가 되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총 10명의 한총련 대의원들이 체포되어 5명이 구속기소 되었다. 구속된 이들은 한총련 독자적인 활동보다는 한미FTA 반대시위 등 다른 사회적 이슈에 참가한 뒤 집시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으나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집시법보다 형량이 높은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현황은 최근 몇 년 동안 구속된 한총련 대의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국가보안법 적용기관들의 실적 올리기 대상으로 악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회합통신 등 간첩혐의 사건 국가보안법 상의 국가기밀, 간첩, 찬양고무 등의 법 조문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개념들임에도 과거 사건의 판례가 현실을 규율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간첩혐의 사건의 경우에 적용되는 국가기밀 등에 대해 현실적인 판례변경을 이끌어 국민의 알권리를 확장하고 시대적 흐름에 맞는 판단을 이끌어야 할 필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일심회- 국정원은 10월 24일 장민호 씨를 비롯한 5명을 국가보안법 상 간첩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들이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민주노동당 등을 포함한 시민사회 활동 등을 수집 보고해 왔다는 간첩혐의를 적용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체포 당시부터 여론에 ‘386 간첩단 사건 적발’ 등의 선정적인 제목으로 기사화되었고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라고 발언함으로써 이러한 언론보도를 부추기기도 했다. 또 언론에서 피의자들의 직장, 가족관계를 무분별하게 기사화하는 바람에 심각한 수준의 사생활침해가 저질러지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은 형법상의 ‘피의사실 사전공표 금지행위’에 해당하는 위법행위임에도 피의자들이 기소되기도 전에 여론에 의해 ‘간첩’으로 단죄하는, 우리 사회의 국가보안법 관련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의 행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강순정 씨- 경찰청 홍제동 대공분실은 11월 28일 재야통일 원로인 강순정 씨를 간첩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강순정 씨가 캐나다 범민련 강병연 씨의 지령을 받고 국내 시민사회 주요 이슈와 활동내용을 수집 탐지 보고해왔으며 북한 관련 비디오테이프 등을 전달받았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고령의 재야원로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전화 통화하고 비디오테이프 등을 주고받은 행위가 과연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만큼 위험성을 가진다고는 볼 수 없다.


이적표현물 사건


전교조 통일위원회 교사 구속 전교조 부산지부 통일학교 교재 이적성 시비는 경찰의 과도한 압수수색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경찰 수사 단계에서 종료되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장안동 분실은 2007년 1월 15일 전교조 서울지부 통일위원회 소속 교사 2명을 구속했다. 경찰은 이들 교사가 전교조 홈페이지 통일위원회 까페에 “북한 주장 글을 인용하거나, 취지를 같이하는 문건을 게재”했다고 하여 이적표현물 조항을 적용했다. 그러나 두 교사들은 통일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북한 현실을 이해하고 통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자료들을 게재했다고 주장했으나 구속되었다.


그 외 이적표현물 사례들 서울경찰청 옥인동 대공분실은 2006년 8월 18일 민권연구소 연구원 최희정 씨를 전격 구속했다. 최씨는 7월 23일 경부터 자진출두 해 인터넷 사이트에 북한 관련 글을 올린 사실들에 대해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유재덕 씨는 국정원 광주지부 수사관들에 의해 자택에서 체포되었고 압수수색 결과 북한 책자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 소지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영장이 기각되었다. 군복무 중이던 부진환 씨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에 연행되어 한양대 재학 당시 한총련 활동과 각종 집회시위에 참가한 사실들을 조사받은 뒤 불구속 기소되었다.


연구행위에 대한 마구잡이 이적표현물 수사 서울경찰청 장안동분실은 1월 27일 ‘비무장지대(DMZ) 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사진작가 겸 인터넷 전문기자 이시우 씨의 자택과 작업실을 압수수색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우 씨는 민통선 사진 활동 및 유엔사 이전 관련한 활동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전개해 왔다. 그러나 압수수색 이후 경찰 수사 진행여부는 연구자의 의지를 심각하게 위축시켜 정상적인 연구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편 법원은 고령의 강순정 씨와 전교조 교사들이 형사소송법 상 ‘주거가 일정하며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음’에도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국가보안법 관련해서는 형사소송법마저 예외적으로 적용한다는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 해 비판을 자초했다.



불관용과 맹목적 차별이 국가보안법으로 합리화


최근의 국가보안법 적용사례들을 살펴보면 국가보안법의 마구잡이 적용 경향은 바로잡히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내부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어서 매우 우려스럽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특정 표현양식에 대한 맹목적인 반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에 대해 위협행동 등 ‘자신과 다른 주장’에 대한 불관용이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뉴스들2)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사표현이 관용되고 배려되어야 함에도 기존의 인식과 다른 주장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경우 주장의 진위여부를 떠나 표현 행위 자체를 위험시하고 집단적인 여론몰이를 통해 형사처벌을 강제하는 꼴이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이 특정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일반으로 보편화되는 양상이어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3)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치뤄진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 이러한 불관용과 위협행동들은 사회적 불안과 극단적인 대립을 초래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내심을 처벌하는 전근대적이고 반인권적인 법률이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사표현 행위나 소수 의견에 대해 차별하고 위험시하고 있음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며 이를 새로운 국가보안법 폐지 언어로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국가보안법의 독자적인 순환구조와 영역이 허물어지고 뿌리 깊은 이분법 구도에 가로막혔던 국가보안법 폐지가 현실화되기를 고대한다.

덧붙이는 말

1.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의식과 인권의식 성장에 따른 국가보안법 적용이 갖는 부담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곧 국가보안법이 현행법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구속자가 줄어들었다는 표면적인 현상으로서 국가보안법의 폐지 근거인 인권침해 논란이나 법 규정으로서 명확성 결여 등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한 폐단은 더 광범위하고 직접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의 행동양식으로 내면화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2.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백색테러, 이재정 통일부 장관에 대한 국가보안법 처벌 규탄집회 등 3. 종교사회내에서도 주류적 인식과 다른 주장을 할 경우 '빨갱이 목사, 좌경 의식화 목사' 등으로 단죄하는 현실은 매우 위험한 수준의 이데올로기 강박증으로 인한 집단적 광기표출로 해석될 수 있다. <한겨레21>, 641호 "주여, 제가 빨갱이 목사입니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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