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국가보안법의 시대착오적인 부활

우익언론-정치단체-공안기관에서 확대재생산 되는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이 돌아왔다. 58년 전 생긴 이래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 없었으니 돌아왔다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몇 해 전 온 나라를 들었다 놨던 해방 이후 최대 간첩(그러나 2심에서 주요혐의가 다 무죄로 밝혀져 석방된) 송두율 교수 사건이나 불구속 수사방침이 무슨 제2의 6.25 남침이라도 되는 양 일부에서 호들갑을 떨었던 강정구 교수 사건만큼 요란하게 등장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사태는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마치 작정을 한 듯 어퍼컷에 앞서 잽을 날리는 형국이다. 잽이지만 그 충격은 만만치 않다. 이제는 지긋지긋하고 식상한 주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의 ‘2007년 왜 다시 국가보안법인가!’란 토론회에서 다시 돌아온 국가보안법과 마주했다.



시대착오적인 토론회?


토론회가 열렸던 지난 2월 9일은 32년 전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재심 결과 사법부가 무죄를 선고한 지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국가보안법과 함께 살아가려면 역사와 상식의 시계바늘이 30년 세월을 오락가락 하는데 따른 울렁증마저도 감수해야 한다.


토론회장은 관련 당사자들만으로도 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악용실태로 선정(?)된 사건들 외에도, 통일운동단체인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강순정 고문이 국가기밀 누설로 구속된 사건, 민권연구소 최희정 연구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건, 사진작가인 이시우 기자가 취재하여 인터넷 언론에 공개한 사진을 문제시 하여 압수수색을 벌인 사건,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의원들과 의장 후보인 유승희 학생에 대한 소환 조사를 벌인 사건, 열사묘역을 빌미삼아 민족민주열사추모단체연대회의를 우익단체가 ‘찬양고무죄’로 고발한 사건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은 여전히 일상과 함께 하며 주위에 차고 넘치는 탓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박석운 집행위원장은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노무현 정권과 보수 세력이 한 마음이 되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노림수이자 “대선 국면을 맞아 공안기관의 자기보존 차원에서 기획 된 것”이라며 “공안기관의 고용안정투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는 우스개로 토론회를 시작했다.


토론회 1부 ‘최근 국가보안법 악용실태보고’의 첫 보고자로 나선 공무원노조(전국공무원노조) 천정아 통일위원장은 “2004년 11월 공무원노조 총파업 시기에 공안당국이 <조선일보>의 ‘전공노 조합원 교육에 주체사상 포함’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나가자 조사에 착수했으나 무혐의 처리 한 바가 있다.”라며 그 후 “2006년 8월 을지훈련에 대한 공무원노조의 성명서를 발표하자 <조선>, <중앙>, <동아> 등이 ‘전공노는 아예 북한을 대변하는가’라는 등의 사설을 내보냈고 곧 행자부의 고발에 의해 노조원 5명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을지훈련은 정부에서 하는 몇 차례의 대규모 훈련 중 공무원이 직접 참가하는 ‘을지포커스렌즈연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공무원의 일상적 업무에 지장을 가져온다고 수차례 지적받아 온 훈련이다. 문제는 검찰의 조사가 을지훈련에 대한 성명서 내용을 넘어서 정부의 눈에 가시가 된 공무원노조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순서로 보고된 ‘일심회’ 사건에서도 수사의 초점이 이른바 386 정치인과 민주노동당에 맞춰졌으며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일위원회 소속 교사의 구속 사건에서도 이를 그간 우익언론이 선동해오던 ‘전교조 죽이기’를 확산시키는데 십분 활용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드러난다.



우익 언론과 정치권, 검찰의 역할분담


사건들의 진행과정에서 보다 확실한 역할분담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른 바 국가정보원을 통해 6.15 공동선언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 일찌감치 이름 붙여졌던 ‘일심회’ 사건에 대해 가족대책위에서 나온 문치웅 씨는 “언론이 기소도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피의자의 권리도 무시한 채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이를 정치권이 나서 여론재판을 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자 가장 큰 문제”였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전교조 통일위원회 사건에서도 “<조선일보>가 먼저 왜곡, 과장보도를 하면 정치권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검찰의 압수수색과 조사, 구속 등이 뒤따랐다”는 점에서 앞선 두 사건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되었다고 전교조 박미자 통일위원장은 주장한다.


또한 “민권연구소 최희정 씨의 경우에도 이미 한 달 전부터 성실하게 보안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음에도 조중동의 언론 보도가 나가고 한나라당 대변인실에서 검경을 질타하는 기자회견을 가지자마자 구속이 되었다”고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박성희 간사는 덧붙였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우익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검찰의 역할분담은 과거에도 있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빈도가 늘고 긴밀함이 더해져, 더욱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사건을 ‘발굴’하고 그것을 왜곡, 과장하여 ‘생산’해낸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지혜 기획부장은 “색깔공세가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특정 세력을 공격하는 데 유용하다는 증거”라고 진단하며 “그 효과가 예전에 비해 크지 않다고 해도 당사자들에게나 여론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밝혔다. 또한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외부의 색깔론이 내부의 건전한 민주적 토론을 봉쇄하고 차단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올 뿐만 아니라 사회의 민주적 역량 자체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과 그 폐해에 대해 지적했다. 민가협의 박성희 간사도 “국가보안법을 끊임없이 유지시키고 있는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일심회 사건과 강순정 씨 사건 등에서는 국가기밀의 범위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결국 법원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확대하고 국가보안법의 적용범위를 축소시키는 판례 변경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 무엇을 할 것인가’란 2부 토론에서 발제를 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박래군 정책기획팀장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과거 공안사건에 대한 진실이 규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재의 국정원, 경찰청 보안수사대, 검찰 공안부가 과거의 국가보안법 조작사건에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고, 공안기관의 축소와 재편, 해체”와 함께 “언론의 책임을 분명히 묻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박 팀장의 주장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마지막 토론자였던 다함께 조승희 활동가의 지적대로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국가 탄압에 반대하는 행동이 시급”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연대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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