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슬람 사회에서의 여성인권

파키스탄의 여성보호법

이번 설 연휴가 끝나고 뉴스를 보니 ‘명절 증후군’ 때문인지 이혼 신청 건수가 평소보다 3배나 많다고 한다. 아직도 가부장적인 우리 가족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바뀌었으면 어땠을까? 남성이 음식을 장만하고, 여성은 회사일로 바쁘다는 이유로 늦게 들어오고, 남성이 준비해 놓은 음식에 차례는 여성이 지내고…. 많은 가정에서 죽기 전까지 제사나 차례를 지내니 한번이라도 남여 역할 바꾸기를 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남성들이 여성들의 고충을 알게 될까, 혹은 실질적 남녀평등이 조금이라도 실천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며 나의 누님들도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이 가부장적인 교육은 한국사회의 문화이자 전통이란 이름으로 보존되어 왔고 그러므로 존중받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많이 옅어지고 깨어졌다고는 하나 역시 ‘이혼’이란 형태로 그 전통과의 부딪침은 계속되고 근래 더욱 증가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주소이다.
여기 한국과 문화와 전통이 많이 다른, 서양의 시각으로 보자면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최근 국가주도로 이러한 전통에 맞서 여성 인권을 보호하려는 시도가 있어 소개한다.



파키스탄에서의 여성, 그리고 여성인권


“Sindh 지방에 사는 한 17세의 소녀가 2006년 6월 6일 오후 3시 30분 경 종교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중 이 지방 수상 고문의 차로 납치되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두 명의 사내가 차에서 내려 화학약품이 적셔진 수건으로 자신의 입과 코를 막은 뒤 의식을 잃게 되었다. 깨어나 보니 여섯 명의 술에 취한 남성들과 알지 못하는 방에 있었으며 현장에 있던 모든 남성들이 이 소녀를 집단 강간하였다. 이 소녀는 당일 저녁 10시경에 풀려났으며, 집으로 돌아간 소녀는 이를 가족들에게 알렸고 아버지와 오빠는 바로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다. 그러나 용의자들이 정치인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하기를 거부하였다.
다음날 아침, 소녀와 그녀의 아버지는 경찰서에 다시 찾아가 경찰서장을 만났으며, 경찰서장은 고소장 접수까지는 동의하였으나, 정치인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단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조사만 수행하겠다고 하였다. 경찰서장은 다음날 의료검진을 받을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해 주겠다고 말한 뒤 다음날 다시 오라고 하였다.
다음날 다시 경찰서를 찾았을 때 경찰서장은 모든 용의자가 아닌 몇몇 용의자에 대해서만 고소장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하면 문서를 작성해 주겠다고 하였으며 만약 모든 용의자들에 대해 고소하겠다고 하면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언론과 인권단체에서 이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결국 고소장을 접수하였으나 사건과 관련된 일부는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다른 여성인권침해를 살펴보면 위 사건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파키스탄의 한 NGO(Lawyers on Human Rights)의 보고에 따르면, 2000년도부터 2006년까지 9,379명의 여성이 살해당했으며 이 중 117명은 강간 후 살해, 3,116명이 강간, 1,260명이 집단강간, 4,572건의 명예살인(Honour Killings) 그리고 1,503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2006년 한해만 해도 200건이 넘는 강간과 성폭력 사건들이 보고되고 있으나 정작 국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해자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다. ‘강간’이라는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사건들에서 가해자가 지역 유지들과 관련 있는 경우, 경찰은 방관자 혹은 가해자들의 적극적인 보호자로서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남자에게만 주어진 이혼결정권
후두드 법(Hudood Ordinance)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1979년에 제정된 후두드법 (Hudood Ordinance, 무슬림 샤리아법을 이행하기 위한 법으로 혼외 성관계, 음주, 절도 등을 포함한 몇 가지 범죄에 대하여 쿠란과 수나에 언급된 처벌을 시행하기 위해 제정된 법)과 남편에게만 이혼에 대한 결정권을 주는 전통문화가 병존하기 때문이다. 전통문화를 근간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강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으로 인해 오랜 동안 무수히 많은 여성 피해자들이 양산되었다.


특히 이 법이 가진 문제점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자면 (1)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본인이 강간당했다고 입증하지 못했을 때는 간통을 했다고 자백한 것으로 간주되어 처벌받는다. (2)법정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법정에서 본인이 강간당했다고 증명해 줄 4명의 무슬림 남성 증인을 세워야 하며 그렇지 못할 시, 오히려 여성은 간통죄로 기소된다. (3)이슬람 사회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딸락(Talaq: ‘이혼’을 의미)을 세 번 외치면 이혼이 인정되어 아내는 아내의 집으로 보내진다. 법적으로 이혼은 이혼증명서를 필요로 하지만 이 법적 절차를 아는 이는 거의 없으며, 만약 이혼한 여성이 재혼을 하고 전 남편이 자신과의 이혼을 부정하면 그는 전 아내뿐만 아니라 전 아내와 재혼한 남성에 대해서도 간통죄로 고소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이 법의 피해자는 항상 여성일 수밖에 없다. 강간사건과 관련해서 파키스탄의 국내법 체계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해자는 자유로워지는 반면 그 피해자는 법에 의해 마치 범죄자로 취급되어 처벌을 받는다. 후두드 법은 형법체계를 이슬람법에 일치하기 하기 위해 만든 율법이다.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후두드 법은 지나 범죄(Zina crimes, 간통과 강간을 포함한 불법적인 성관계)와 까즈프(Qazf, 지나 범죄에 대한 부당한 고소)가 포함된 범죄들을 포괄한다. 후두드 법은 간통과 강간을 구별하지 않는다. 지나 범죄에 대한 최대 형량은 많은 이들이 알고있듯이 투석하여 죽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지나 범죄로 유죄를 받았고 지금도 판결을 기다리며 수년 동안 구속되어 있다.



불가능한 입증책임과 위태로운 목숨


또한 이 법은 강간을 당한 여성과 소녀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입증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후두드 법 아래에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이 이를 증명하려면 범죄현장에 있었던 4명의 남성 무슬림의 증언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4명의 남성들은 전과가 없어야 하며 그리고 그들의 증언이 받아들여질 만큼 오점이 없는 명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피해자는 간통죄의 혐의를 받을 수 있으며 구속되거나 혹은 투석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강간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증명이 어렵기 때문에 도리어 사실상 혼외 성관계를 인정한 것이 되고 종종 지나 범죄혐의를 받게 되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형법에서 강간과 관련된 몇몇 조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들은 실제 적용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단히 많은 후두드 사건들이 수년간 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파키스탄의 ‘법과 정의 위원회’는 법원에서 3개월 안에 지나 범죄 조항으로 제기된 사건들을 해결하라고 명령하기도 하였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후두드 사건은 약 200,000건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방 샤리아 법원에 따르면 펀자브(Punjab)지방 등기소만 하더라도 1,400건이 현재 계류 중에 있다. 그 결과 피의자들(대부분이 여성)이 재판을 기다리면서 부당하게 구금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전통과 이에 근간한 법은 사회적 약자 층에 속하는 여성을 더욱 억압하여 왔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시력에 장애가 있는 여성들에게는 더 치명적인 억압으로 작용해 왔다. 강간을 당한 여성들은 가해자를 식별하여 용의자를 지목하여야 하나 시력에 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 용의자를 식별할 수 없는 약점이 있어 시력에 장애가 있는 여성이 주요 피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4명의 ‘남성’ 증인을 세워야 하는 이유로 인하여, 만약 가해자가 지역유지나 고위 정치인 혹은 자산가일 경우 혹은 그들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경우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서 4명의 증인을 확보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성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딛고 용기를 내어 용의자들을 고소하려고 하더라도 법을 이용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사건들은 일반 법정이 아닌 Sharia 법정(이슬람 법정, 종교법정)에서 다루어져 왔기 때문인 점도 크다.



여성인권의 전진
여성보호법(Women’s Protection Bill)



이러한 차별적인 문화와 법제도에 대한 국내외 많은 인권단체들의 노력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더해져 지난 2006년 11월 15일 파키스탄 의회에서는 ‘여성보호법(Women’s Protection Bill)’이 통과되었다.


이 새로운 법에 따라 강간죄는 샤리아(이슬람 법)가 아닌 형법으로 다루어 질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제 판사는 이슬람법이 아닌 형법으로 강간사건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4명의 증인의 필요하다는 부분도 없어졌고 법의학과 정황증거를 기초로 결정된 판단을 허용한다는 것도 중요한 진전이다. 그리고 고소인의 입장에서도 이슬람 법정이 아닌 민간법정에서 강간사건을 다룰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자못 의의가 크다 하겠다.


이번에 제정된 여성보호법에 따르면, 간통이나 합의에 의한 혼외 성관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에 대한 처벌은 5년의 징역과 10,000루피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그리고 강간 범죄자에 대하여 후두드 법은 죽을 때까지 투석을 했던 반면, 여성보호법에서는 10년에서 25년의 징역형을 받으며 만약 2명이나 그 이상이 함께 강간을 했을 때는 사형이나 종신형을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 법에서는 사춘기 전의 여성과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는 반면 여성보호법은 16세 미만의 여성과의 성관계는 강간죄로 불법화 하고 있다.


후두드 법 하에서 이혼을 한 여성들은 부족한 증거로 인하여 종종 전 남편이 이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간통죄로 수감되어 왔다. 실질적으로 유죄라는 입증도 없이 수 천 명이 구속당해 온 것이다. 이러한 구속의 위험으로 많은 여성들은 이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뿐더러, 강간 사건의 경우에도 가해자들을 고소하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오히려 전통과 법이 부추기는 ‘침묵’의 길을 택해 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관습적으로 행하여지는 일종의 종교적 풍습인 명예살인(Honour Killings)이 특히 여성에게는 또 다른 탄압의 기제로 작용되어 왔다. 명예살인은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자녀들에게, 혹은 배교한 자녀들에게 행하여지는 관습으로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부모가 스스로 혹은 지르가(Jirga, 파슈토어로 남성들이 중심이 된 족장회의 혹은 원로 남성들의 의사결정회의)의 결정으로 살인이 허가되는 것을 말한다.


명예살인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순결이나 정조를 잃어버렸다거나, 혹은 배교를 했다는 것만이 살인의 정당성(?)으로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친척집에 놀러갔다는 이유로, 결혼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말을 했다는 이유로도 명예살인을 당하는 여성들도 있기 때문이다.



거센 종교적 저항에 맞닥뜨리다


파키스탄의 여성 인권침해는 종교적 관습과 전통, 법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매우 종합적인 산물이며 또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어서 그 해결이나 개선이 쉽지 않다. 한국에서도 호주제 폐지 결정이 있기 전에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파키스탄에서도 여성보호법이 통과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뜨거운 감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법률에 대하여 자유주의 정치인들과 여성인권활동가들은 여성인권의 일보 전진이자 개혁이라고 평가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편 종교적인 정치가나 정당은 이 법률을 이슬람교적이지 않다며 반대하였다. 구체적으로 반대자들은 이 법이 파키스탄 헌법의 제2조 a “이슬람교가 국교이다”와 제227조 “쿠란과 수나(이슬람교의 전통율법. 마호메트의 언행에 관한 기록에 바탕을 둔 것)에 모순되는 어떠한 법도 통과되지 않는다”는 조항에 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자들 중에서 특히 6개 연합 야당의 대표는 “이 법률이 파키스탄을 성 자유지역으로 몰고간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비난이 비난으로 그치지 않고 여성보호법이 통과된 후 여성에 대한 또 다른 침해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며칠 전인 2월 20일, 파키스탄의 펀자브 주(Punjab)의 질레 후마 우스칸 사회복지장관이 히잡(머리와 귀를 가리는 스카프)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현장에서 잡힌 이슬람 광신도는 “알라는 여자가 통치자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으며 잘못된 길을 가는 모든 여자들을 처단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의 인권위원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인권 개선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히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여성보호법이 통과되자 여성인권 보호를 위한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다고 자찬하는 파키스탄 정부와 이에 대한 비난을 아끼지 않는 이슬람 정당, 그 속에서 파키스탄 사회가 전통과 법,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워갈 것인지 다음 행보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여성인권 문제를 후진적이란 말로 단정하기도, 이슬람 정당의 주장에 동의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받고, 여성인권이 후퇴되는 일은 파키스탄에서도,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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