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아시아의 친구들, 동네 친구들

<아시아의 친구들>

왜 이주민을 저급하고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아니, 여기엔 이주민이라는 말은 적절치 못하다. 유럽 및 북미권의 백인들에겐 ‘이주민’이라는 말은 쓰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은 동경의 대상이 아니던가. 유독 아시아권의 사람들을 ‘이주노동자’라고 통칭하며 멸시와 냉대의 눈길을 보낸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이주노동자와 지역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조금씩 고쳐나가는 친구들을 찾았다.

김지영 활동가(우측)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옆방에서는 한국어교실을 마친 결혼 이민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 강곤



개발의 그늘에서 만난 사람들


<아시아의 친구들>을 찾아 일산으로 가는 버스가 시원하게 뚫린 대로를 내달렸다. 잘 정리된 도로와 조경들. 소위 있다~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일산인데 웬 이주노동자단체지? 미디어의 노예로 살다보니 이런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1988년 말 부동산 가격폭등과 함께 서울의 인구 과밀에 대한 대안으로 ‘분당, 일산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되고, 95년을 전후하여 일산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만나는 일산은 그야말로 건설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일부분일 뿐이다. 일산역 철길을 따라 그 너머엔 ‘구 일산’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일산이 있다. 자유로에 면한 장항동 일대와 식사동, 풍동은 옛 일산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고 이런 지역을 따라 소규모 공단들도 여전하다. 이 공단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들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아시아의 친구들>이 일산에 둥지를 튼 까닭이다. 문을 연 2003년 우선 일산 지역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을 시작했다. 이듬해 법률상담과 의료상담을 시작, 현재는 사법연수원의 노동법학회 회원들을 비롯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그리고 지역의 병원들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활동은 신뢰에 기반한 일


문을 여는데 내부가 시끌벅적하다. 결혼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실이 막 끝나 뒷정리 중이라며 임영순 님이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한다. 한국어 교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지역의 결혼이민자들의 방문도 잦아졌다. 그래서 결혼이민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매주 월~금요일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한국어교실은 일요일에 진행한다. 일산지역이 꾸준히 개발되면서 공단들이 파주나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률이 많아졌다. 자연히 이주노동자들의 이동도 뒤따랐다. 일산 사무실에는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탈 거리에서 찾아오는 노동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있어 오던 차라 2004년 파주에도 사무실을 개소했다. 현재 일산사무소에는 김대권 사무국장, 임영순 님, 김지영 님이 그리고 파주사무소에는 정국희 님이 상근을 한다. 김대권 사무국장과 정국희 님이 이주노동자 관련 활동을, 임영순 님과 김지영 님이 한국어 교실과 평화방 운영을 책임진다. 물론 정국희 님은 파주사무실의 모든 활동을 총괄한다. 한국어교실은 두 사무소 모두에서의 핵심 사업으로 선생님들은 모두 지역민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다. 매월 한차례 자원봉사자 오리엔테이션이 있는데 무엇보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활동을 강조한다. “한국어를 잘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잖아요. 때문에 자원봉사자들도 책임감과 지속성을 갖고 임해주길 바래요.” 파주 사무소를 담당하고 있는 정국희 님의 당부다. 자원봉사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활동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로 묶인 관계니 더욱 책임감이 필요하고 일의 특성상 6개월 정도의 지속성은 요구하게 된다. 활동에 대한 책임감은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와 <아시아의 친구들>에도 긍정적인 에너지원이다.



인권, 국경에 걸려 넘어지다


설을 일주일 앞두고 여수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2월 12일 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로 9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18명이 다친 것이다. 출입국관리소의 ‘인간사냥식’ 단속추방으로 인한 사고는 2003년 고용허가제 이후 해마다 되풀이됐다. 시민사회인권단체들의 단속 추방 중단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장기구금과 폭언, 폭행 등의 가혹행위가 빈번하다. 그리고 결국 이런 대형 참사를 불렀다. 그러나 법무부와 경찰은 고인이 된 이주노동자가 낸 방화로 몰아가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설령 방화라 할지라도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은 점, 스프링쿨러도 긴급사태에 대비한 대피시설도 갖추지 않아 이런 참사를 빚은 것이 어떻게 가려질수 있을까. 게다가 사건현장은 유가족들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폐쇄하고 있으며, 여수지역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대책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진상조사단을 꾸리자는 제안도 거절한 상태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화재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노동자들을 치료조치 없이 청주보호소에 다시 감금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대권 사무국장은 계속 여수에서 고군분투할 밖에. 그런데 사고의 피해자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여수 보호소 화재사건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외국인 이주동자에 대한 시선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라고 봐요.” 정국희 님은 피해자들이 한국 사람들이었다면 지금처럼 여론이 잠잠하지는 않지 않았겠냐고 한다. 인권경찰이니 인권국가니 미사여구로만 쓰여 온 ‘인권’, 결국은 국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평화방, 나눔꽃


구호가 아닌 감수성과 실천이 중요하다. 만나서 부딪히고 알아가고 그럼으로써 진정으로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아시아의 친구들>은 이주민과 지역민이 만나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주노동자들의 문화를 배우고 지역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평화방’이 2003년 문을 연 것이다. 평화방은 지역 속의 평화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평화박물관 제1호이다. 이주민들을 통해 혹은 활동가들이 수집한 아시아 각국의 그림, 사진,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지역민들이 기증한 다양한 도서로 작은 박물관을 꾸몄다. 누구나 와서 관람할 수 있고 책은 책장에 걸린 목록에 본인이 기입하고 자유롭게 대출.반납한다. 1층에 위치한데다 ‘평화방’의 한 벽면이 투명한 샤시로 된 탓인지 정말이지 지나다 불쑥 들러 봐도 좋을 장소처럼 보인다. <아시아의 친구들>은 평화방의 전시품을 활용해 어린이들과 ‘다문화이해교육’을 한다. 각국의 공예품, 생활용품을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어린이들은 ‘이런 것도 있구나!’, ‘이건 우리나라랑 비슷하네.’하며 편견 없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다. “진행은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분들이 직접 하세요. 아이들도 자주 접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도 줄고, 이주민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는 거 같아요.” 평화방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김지영 님의 말처럼 다문화이해교육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아이들도 스스럼없이 이주민을 대하고, 이주민들도 한결 표정이 밝아진 거 같다고 한다. 지난해 탄현의 현산초등학교에서는 ‘놀토’수업을 이용하여 다문화이해교육을 진행했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선생님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늘어나는 이주민 2세들이 내 주변의 현실이 되면서 학교 선생님들도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참여하고자 한다. 그래서 올해는 이 선생님들과 함께 일산지역의 더 많은 초등학교에서의 다문화이해교육 진행을 준비 중이다.


일산사무소에 평화방이 있다면 파주엔 ‘나눔꽃’이 주민들과 이주노동자들의 가교가 되고 있다. 나눔꽃은 한국의 소비문화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재활용품 가게이다. 이주노동자와 지역민이 서로 물품을 공유하고, 운영도 이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소비문화가 문제가 많잖아요. 그 지역민의 책임이라고 봐요.” 정국희 님은 소비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우리의 생활환경을 꼬집었다. 개인이 기반한 각자의 지역에서 조금씩 소비행태를 바꿔가야 한다고 생각해 ‘나눔꽃’을 시작했다. 이주민들 역시 우리 사회의, 우리 지역의 구성원이며,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해가야 할 주체로 받아들여야 할 때다. 그리고 나아가 이주민들이 돌아갔을 때 혹은 다른 장소로 다시 이주했을 때, 이곳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보고 성찰하기를 바라는 바람도 있다.



<아시아의 친구들>은 서로 만나고 교감하는 공간이다. 지역민들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처음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에 가졌던 시혜적이고 동정적이던 생각들을 차츰 버리게 된다고 한다. 이민자들도 많은 억압적 환경을 털어버리고 한 사람으로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만남’은 오해나 편견을 불식시키는 좋은 처방제다. 만남을 통한 진정한 소통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싹트고 그 안에서 인권감수성이 자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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