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교육계의 아이히만, 서울 OO교육청을 고발한다

승진만을 꿈꾸며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교육관료들

지난 1월 25일과 29일 서울 OO교육청에서는 2006년 11월 22일에 있었던 교원평가.연금법 개악 저지, 한미FTA 반대를 위한 전국 교사결의대회에 연가를 내고 참여한 교사 43명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그런데 징계위원회가 적법한 절차를 무시한 채 파행적으로 진행되었으며 교사들의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당하였다.



그들의 어처구니없는 징계 행태


교육공무원 징계령 9조에는 징계대상자의 ‘충분한 진술권’을 보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OO교육청은 하루에 20여 명을 출석시켜 무작정 대기시키고, “무슨 말을 할 지 다 아니 짧게 진술해라.”, “10분 안에 끝내지 않으면 직권으로 종결하겠다.”는 등의 협박으로 진술권을 제한하였다. 심지어는 진술 도중에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종결을 선언하고 이에 항의하는 교사들을 4, 5명의 장학사들이 팔다리를 휘어잡아 강제적으로 밖으로 끌어내거나, 진술자를 방에 남겨둔 채 징계위원들이 자리를 옮겨 다음 대기자의 징계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경우에는 항의로 소란한 가운데 이름을 세 번 부르고는 3분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술포기를 선언하며 진술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징계위원회는 오후 6시가 넘을 경우 본인의 동의를 받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다음 차수로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OO교육청은 교사들의 연기요구를 묵살한 채 26일의 경우 밤11시가 넘어서까지 징계위를 강행하였다. 저녁 식사 후 많은 교사들이 심한 스트레스와 피로누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으나 묵살 당하였으며, 결국 두 명의 여교사가 119에 실려 나가는 사태가 벌어지고서야 교육청은 징계위를 종결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러한 부당한 처사의 시정을 위해 29일에는 오랜 시간동안 기다린 교사들이 징계위 일정 변경 요구를 했지만 역시 기각하였고, 기각결정에 항의하면서 귀가한 교사들에 대해 징계위 간사는 빈 대기실 허공에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들어오지 않았다며 진술포기로 처리, 징계를 종결시켰다.


징계위가 열리는 장소와 대기실에는 수 십 명의 장학사와 교육청 직원들 그리고 교육청에서 요청한 경찰들이 감시를 하며 교사들의 이동을 철저하게 가로막았다. 진술이 끝나고 대기실로 짐을 챙기러 들르는 것도 막았으며,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 잠시 교육청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거부당하였고, 가족이 함께 대기실에 있으려는 것조차 불허하는 등 사실상의 감금상태를 만들었다. 특히 경찰은 수없이 교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 찍으며 위압적분위기를 만들었고, 장학사들은 대기실에서 징계위 장소까지 교사들을 범죄인 끌고 가듯 팔짱을 끼어 데려가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였다.

사진 | 참세상


공문에 징계 매뉴얼까지 내려 보낸 교육부


이러한 교육청의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해 우리들은 끊임없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3분 안에 들어오세요.”라거나 “상부의 명령과 지시”라는 말뿐이었다. 당시에는 상부 명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이제 그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가 징계를 미루는 시도교육청에 대해 “(징계) 처분이 지연되는 시도 교육청에 대해서는 행·재정적 불이익을 강구할 예정이니 이점 유의하라”는 엄포성 공문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교육청에서 징계위원회를 열면서 ‘3분 안에 진술하라’는 내용의 징계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울 OO교육청은 지난 26일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이 같은 내용이 들어간 A4 용지 3쪽 분량의 매뉴얼 문서를 작성하였다. 서울 OO교육청은 징계 매뉴얼을 통해 징계 혐의자를 출석시킨 뒤 신분 확인, 연가 집회 참석 여부와 법 위반인지 여부 등의 5개 단순 질문을 이미 구성해 놓고 있었다. 이어 징계위원장이 “혐의자께서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간단히 3분 범위 안에서 말씀하라”고 지시하도록 되어 있다. 법으로 보장된 진술권을 3분으로 제한한 셈이다. 어쨌든 그들이 말하는 상부의 명령과 지시 앞에서 상식과 교사들의 인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관념 속의 레토릭에 불과하였다. 나는 이처럼 반인권적인 교육청 장학사들의 행태 속에서 아이히만(Adolf Eichmann.1906-1962)의 모습을 보았다.


아이히만은 나치정권의 관료로 유태인 말살정책을 집행했던 사람이다. 그는 나치 패망 후 도피하다가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체포되었고 예루살렘으로 이송돼 특별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된 재판에서 기대와는 달리 아이히만은 한 가정의 가장이자 기계공으로 살아가는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행위가 빚어낸 가공할만한 비극에 대해 그 어떠한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은 상부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며, 따라서 참혹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고 항변하였다. 아이히만 재판의 전 과정을 취재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와 같은 아이히만의 행위에 대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은 특별한 악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히 평범한 범인들에 의해 자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악행을 저지르는 범인들에게는 철저하게 명령과 질서 속에서 길들여진 언어와 사고체계로 인해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타자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며,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번 징계과정에서 반인권적으로 행동한 교육청 장학사들은 전형적인 우리 교육계의 ‘아이히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지위를 상승시키기 위한 승진만을 꿈꾸는 자들로서 상부의 명령과 지시를 그대로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자들일 뿐이다.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함께 살아가는 자들에 대한 예의는 무엇인지 그리고 교육계의 관료로서 함께 일구어야 할 교육은 무엇인지 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채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권력의 시녀일 뿐이었다.



우리는 법에 보장된 연가권을 통해 교육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권리 행사를 두고 현행법을 어겼다고 한다. 교사들이 현행법을 어겼다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징계를 하면 된다. 그들에게는 징계대상자들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가 없으며, 짓밟아서도 안 된다. 물론 일사불란한 하향식 명령과 지시체계, 승진구조 등 교육행정의 비민주적 관료체계가 문제의 근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하급 장학사들을 포함하여 교육계 관료들의 비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을 회피할 수는 없다. 이것이 그들에게 결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인권은 상부 명령에 따라 보호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이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따라서 이번 OO교육청 장학사들의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도덕적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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