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나는 나를 좋아한다?

세상에는 너만 있는 게 아니거든!

“나는 천상 두목이다. … 따라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 나는 나를 좋아한다.”
“A보다 I가 앞이다.”
“나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나를 알아주는 커피가 있다.”
“아름다운 개인주의”
“대한민국 1%”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것, 참 중요한 일이다. 철학자 루소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고. 온전한 자신의 특성과 장점을 아는 것,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은 자신의 생활과 삶에 대한 자기 통제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스스로 완전한 하나의 개체임을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슈퍼맨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일들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되, 타인과 관련된 일에서는 개개인의 특성을 통해 서로 협조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나를 위한 욕심은 아름답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사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개ː인―주의(個人主義)[―의/―이][명사] 1.(모든 면에서) 국가나 사회·단체보다 개인을 우선으로 하는 주의. ↔ 전체주의. 2.개인의 생활을 남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으려고 하는 주의.
이ː기―주의(利己主義)[―의/―이][명사] 1.윤리학에서, 자기의 쾌락을 증진시킴을 도덕적 행위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기적 쾌락주의. 자애주의. 주아주의. ↔ 애타주의·이타주의. 2.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태도. 개인주의. 자기주의



하지만 분명 차이는 있다. 전체주의의 상대어는 개인주의이지 이기주의가 아니다. 경제 개발만을 강조하며 개인의 신념이나 사상의 자유를 말살시켰던 박정희 정권 시대를 실질적으로 겪었던 우리 사회라면 전체주의를 지양하는 개인주의의 확산은 오히려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에게 ‘자기만 편하게 살려는 이기주의자들’ 혹은 ‘다른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는데 자기는 하지 않겠다는 무임승차자들’로 치부하는 것이 그렇다.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을 할 뿐이고, ‘병역의무’가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전쟁반대, 평화주의에 대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행동보다는 그 행동의 결과가 가져올(수도 있는) 결과에 대해서만 판단하게 된다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혼동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그러나 궁극적으로 개인주의는 개인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타인과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지만 이기주의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의 동기를 얻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도 ‘병역거부’라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은 자신의 신념은커녕 농담조차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암흑의 시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는지도 모른다. 특히 최근의 광고 카피들은 ‘우리,‘전체’만을 강조했던 예전과는 달리 ‘나’라는 개체의 특성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나를 위한 욕심을 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매일같이 찬양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주의 외피를 쓴 이기주의


하지만 맨 위에 나열한 요즘의 광고 카피들은 개인주의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보여주고 있다. 그냥 세상에 마치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게 전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성어를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은 표현력의 진보를 느끼고 있지만, 오히려 그 화려한 수사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 너무 텅 비어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나를 좋아하는 것, 나를 위한다는 것의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갖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타인과 이야기 할 수 있는 밑천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가 갓난아이와 논쟁할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만의 주장과 생각을 얼마나 확고하게 가지고 있는지는 타인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광고에서의 자기애는 개인주의와는 상관이 없다. 싫증을 잘 내는 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나… 그래서 그 다음은? OO이동통신사를 이용한다는 것을 증거로 내밀라는 것이다.


상업광고의 목적은 얼마나 그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드느냐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서 쓰는 모든 수단이 항상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어디서 사는지 보다는 나만 좋은 곳에서 잘 살면 되고, 나만 개성을 표현할 줄 알면 되며, 남이 아닌 나만 알아주면 되는 것이다. 예전 한 분유회사에서는 “내 아이는 특별하다”며 특별한 아이에게 특별한 분유를 먹이지 않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같은 뉘앙스를 주는 지면광고를 내보냈었다. 특별대우를 받으며 자란 그 특별한 아이가 자기 이외 다른 아이들을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고 차별한다면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차별을 조장하는 것일 뿐이다. 아름다운 개인주의를 표방한 화장품 회사는 남들보다 특별하게 더 예뻐져야 한다는 여성의 욕망을 부추기며 외모지상주의를 합리화한다. 이런 광고들은 상품의 특징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품과는 상관없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개인의 이기심만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나를 좋아한다면, 나를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발전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타인과 공존하면서 자신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더 많이 채우기 위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한다면, 상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애정을 채우는 것 보다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내가 얼마나 더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명품으로 치장한 겉만 세련된 사람보다 그저 그런 것들로 몸을 감싸고 있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진짜 ‘인간’인 사람과 같이 생활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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