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우리’안에 가두지 마라

여수화재 참사와 주류 미디어의 한계

성룡은 어김없이 설날 안방극장에 등장하였고, 모창대회와 연예인 노래자랑 역시 빠지지 않았다. 자사 시청률의 공신프로그램의 ‘베스트’와 ‘NG’가 이어졌고, 흥행영화들은 늦은 밤 TV를 장식하였다. 변함없는 명절 TV 풍경이다. 개인사는 논외로 하고, 귀향길 교통정체와 대선을 둘러싼 정치싸움을 뺀다면 TV에서는 다들 흥겹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늘 그랬듯이 명절 방송 프로그램의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러나 늘 그랬듯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외국인 노래자랑’을 비롯한 이주자에 대한 방송이다. 올 설은 ‘거침없이’ 자사 흥행 프로그램이 도배를 했고, 덕분에(?) 이주자에 대한 방송은 KBS의 <러브 인 아시아>와 <설특집 놀라운 아시아 베스트> 정도에 그쳤다.


장황한 설날 방송 편성에 대한 논평을 적은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미디어가 보여주고 있는, 혹은 재현하고 있는 이주자,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허구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사진출처 |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홈페이지


‘인권’은 냄비 속에서 식을 수 없다


최대 명절이라 일컬어지는 설이 있기 한 주 전 즈음인 2월 11일,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단순화재가 아닌 구조적 문제, 그리고 한국사회의 추악함이 9명의 이주노동자의 죽음으로 확인되었다. 당일 지상파 방송 3사는 메인뉴스로 여수참사를 보도하였다. 그리고 12일 일간지들 역시 이주노동자 27명 사상이라는 참변의 원인에 대해 큰 비중을 다뤄 보도하였다. “화재원인” “사상자 및 피해 현황” “사고처리 및 대처방안” “외국인보호시설의 문제” “안전 불감증”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의식 부재” 등 여수화재참사를 둘러싸고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사설]여수참사가 보여준 한국적 인권의식 (한국일보)
[여수출입국사무소 화재]전국 23곳 897명 수용중 안전·인권문제…(국민일보)
외국인 보호소 실태…감옥같은 생활 (MBC)
정부보상 어떻게 되나 (세계일보)
[사설]안전불감증을 세계에 노출시킨 여수 참사 (문화일보)
여수 출입국사무소 불…경찰 “탈출 노린 방화인듯” (동아일보)
감시카메라 가린뒤 5분만에 불 (한겨레)



<경향신문>의 경우 ‘여수 참사 인권은 없었다’는 기획을 통해 여수화재 참사를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치부에 대해서 다른 미디어에 비해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여하튼 여수에서 발생한 화재는 화재를 둘러싼 대처에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이주자에 대한 인권 문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 문제에 접근하였다. 특히 여수화재 참사를 보도하면서 모든 언론매체는 외국인 보호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있었으나 결국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은 언론매체도 마찬가지다. 9명의 이주자의 목숨과 바꾼 미디어의 이주자에 대한 보도태도는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실제 여수화재 참사는 너무나 당연히 무차별적 단속과 추방으로 공식화된 정부의 반인권적 이주노동자 정책에서 기인한다. 한국 사회의 추악한 모습인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반인권적 태도와 차별적 정책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이다. 그러나 언론매체들의 호들갑과 걱정은 사건 당일을 기점으로 추락하고 문제의식은 나아가지 못했다. 결국 16일 합동분향소를 찾은 김성호 법무부 장관의 분향을 화재 희생자 유족들이 막아 나서면서 반인권적 이주노동자 정책의 문제의식은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여수 화재 합동 분향소 ‘아수라장’ (국민일보)
항의… 몸싸움 (MBC)
난장판된 ‘여수 참사’ 분향소 (세계일보)
김법무 여수분향소 헌화 유가족등과 몸싸움 벌여 (서울신문)



그리고 설 연휴를 지나면서 여수화재 참사에 대한 관심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전형적인 냄비근성. 박노자 교수의 지적처럼 “외국인 인권 침해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렸던 것은 다행이었지만” 여수화재 참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의 핵심에서 점점 더 벗어났고, 심지어 이제는 이에 대한 후속 보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언론매체의 현실이다. 여수화재 참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 사고가 처리된다고 해결되는 것이 정말 아니다. 누누이 지적한 것과 같이 한국 사회가 지닌 고질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여수화재 참사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이주노동자의 반인권적 정책을 비판하며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구성되고 여수화재 참사가 남긴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고 당일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안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특히 아시아 이주자를 폄하하며 거들먹거리는 사장님 나라의 근성과 의식 변화를 위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정말이지 법무부장관의 분향소 방문에 대한 항의는 유족들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다. 법무부는 사고 발생 이후 유족들에게 즉각적으로 사망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사고 현장인 보호소 내에 분향소를 설치하려는 유족들의 요구 또한 법무부는 묵살하였고, 오히려 분향소를 설치할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였다. 어디 이 뿐인가. 여수시측과 출입국직원들은 새해 첫 날 준비하기로 한 합동차례에 무성의하게 대처하였고, 병원에 있는 사고 피해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부상자 의료 통역 부재, 외상 후유증 치료에 대한 무대책 등 몰상식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국무총리는 공대위의 면담요구조차 거부하고 있다. 현재 여수화재 참사에 대해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는 전형적인 사건의 은폐와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매체는 어떠한가. 여수화재 참사 직후 들끓던 언론매체의 호들갑과 정부에 대한 비판은 온데간데없다.


지적한 것과 같은 정부의 반인권적 행태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데도 언론매체의 사고에 대한 주목과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냄비언론’이라는 수식을 또 한 번 거머쥐기 충분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특히 아시아 이주자에 대한 반인권적, 타자적 시선을 버리지 못하는 언론매체의 추악한 권위성과 우월적 정체성을 숨길 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사진 | 참세상


‘우리’ 안에 가두려 하는 추악한 우월적 욕망


한국 사회 안에서 비주류/소수자/사회적 약자라는 것은 정말 암담하다. 구조적 문제와 조장된 시선, 왜곡된 평가와 시혜적 대상화는 정부 정책은 물론 언론매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사회를 둘러보면 한국 사회의 집단적 정체성은 더 이상 규정하기 어려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기호와 욕망, 그리고 소수자적 정체성은 계급, 성, 인종, 지역, 민족이라는 층위들을 가로지르며 나타나고 있다. 현상적 근거를 들이밀어도 거부하고 부인한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구성원과 구성원의 욕망은 다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도 정부정책과 언론매체는 현상을 직시하지 못한 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특히 ‘아시아’라는 공간적 틀에서 우월성을 인정받고 싶은 권위적 욕망은 추악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방송프로그램은 부쩍 증가하였다. 방송이 보이고 있는 아시아에 대한 관심의 증폭은 아시아 내에서의 한류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자본과 콘텐츠의 교역과 아시아라는 공간의 지정학적 역학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방송은 “한류 열풍 속에 아시아의 중심에 선 한국. 사람과 사람이, 국가와 국가가 사랑으로 맺어지는 다문화 시대에 … 이해와 인식을 새로이 하고 … 관심을 열린 시각으로 담아낸다(KBS 1TV, <러브人아시아> 기획의도)”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 대중 미디어 담론은 자민족이나 국민-국가의 경계 밖의 타자를 정형화된 이미지로 재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타자에 대한 담론은 집단의 다양한 특성과 집단 내 차이를 무시한 채 특정한 특성만으로 집단을 정형화시키면서, 타자에 대한 효율적인 이해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존재론적인 차이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도전! 지구 탐험대>와 같이 타민족의 문화를 다룬 프로그램에서 “민속지학적 관음주의”가 발견되기도 하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담론은 불법체류자, 가난한 자로 대상화되면서 온정과 동정의 눈길로 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언론매체에서 드러나는 아시아에 대한 욕망은 교류와 소통, 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욕망은 제국주의적 발상과 권위적 추잡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언론매체는 아시아인에 대한 ‘우리’ 안의 가두기를 위해 인권과 문화적 교류라는 가치가 아닌 타자화와 시혜라는 형태로 시청자들을 혹은 독자들을 포섭한다.


실례로 KBS 1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러브人아시아>는 국제결혼을 소재로 하여 한국 안으로 들어온 아시안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에서 재현되는 그들은 철저하게 ‘우리’ 안으로 포섭되고, ‘한국인’이 되기 위하여 그들의 욕망과 가치체계는 스스로 숨기거나 버리는 과정을 밟아야 함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해 <조선일보>의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기사와 동영상 뉴스파문은 언론매체에서 드러나는 혹은 조장하는 아시아이주여성에 대한 인권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현재 한국사회 언론매체의 이주자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 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그들은 ‘풍경’이 아니다


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담론화 할 때는 “아시아 사회의 체제나 경제 상태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전망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언론매체의 상황과 판단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아시아를 조명하는 것은 진취적인 우월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코리안 드림’으로 인해 실제 이주노동자들은 가난하고 불쌍한 ‘대상’이고, ‘불법’ 체류자이며 그러하기에 한국 사회의 민족적 정체성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은 존재라고 규정된다. 이와 같은 불편함을 ‘동정’과 ‘시혜’로 포장하며 한국 사회, ‘우리’ 안에 그들을 가두고자 하는 욕망으로 표출한다. 이런 가운데 여수화재 참사는 ‘사고’와 ‘사건’을 급급하게 좇는 언론매체의 호들갑까지 보태져 그동안 언론매체가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특히 이주자에 대해 얼마나 몰상식적 태도로 일관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주노동자방송 MWTV의 마붑 공동대표는 “한국 언론은 우리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소개하고 있다. … 방송들은 한국인들을 눈물 흐르게 하지만 현재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리 찾기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주노동자 인권문제와 열악한 환경에 대한 조망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과 문화 생산자로서의 기능을 하고자 한다”며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방송 MWTV의 활동방향성에 대해 설명한다. 실제 현재 한국사회 안에서도 주류미디어에 대항한 이주노동자, 이주자의 주체적 미디어가 운영되고 있다. 이는 주류 미디어가 기획한 프로그램 안에서 이주자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처한 현실과 차별적 행태들에 대해서 발언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다.


주류미디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미디어가 탄생하는 것은 다양한 미디어와 미디어민주주의 실현에 있어서 중요한 발견이지만, 마붑 대표의 지적과 비판에 대해서 주류미디어의 각성 또한 필요하다. ‘특종’을 좇는 혹은 ‘사고’ 현장을 좇는 선정적인 방식은 사회 구성원과 함께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다. 현재 한국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모순과 문제들을 풀어가고, 수많은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주목과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이 언론매체가 좇아야 하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언론매체가 여수화재 참사는 ‘예고된 인재’라 떠들었던 것과 같이 이미 지적되어온 이주자 정책의 문제와 반인권적 태도 등을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전달해야 한다. 또한 ‘아시아의 용’이 되고자 이주자를 대상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이 진정 이주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기획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이주자는 한국 사회의 ‘풍경’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함께 호흡하고, 한국 사회의 모순에 함께 노출되어 있다. 한 치라도 다른 시선과 판단이 개입한다면 이미 그것 자체가 반인권적이며 폭력적인 형태로 드러난다는 것에 대해 언론매체는 고개를 끄덕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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