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충성맹세를 가르치는 이들에게 묻노니...

도덕과 교육과 국가주의*

국가주의를 정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가주의는 일종의 국가 중심적 사고를 말하는 것으로, 한 사회의 운영에서 국가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상이며 개인 삶의 의의를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찾는 이념 체계이다. 여기에서 연역되어 나온 단위인 ‘국민’은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국가의 부속물로, 국가라는 초월적 실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개체적 수단으로만 인식될 뿐이다. 여기에는 개인이 국가에 맞설 권리, 국가가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 국가를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보는 가치 체계는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권혁범) 문제는 국가주의가 도덕과 교육의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 교과서의 겉표지를 넘기고 나면 내지 맨 앞쪽에 위치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교과서를 통해서 확인이 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도덕’


하지만 나의 조국과 민족을 위한 몸과 마음 바침이 때로는 타 국가와 민족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일 수가 있으며, 나는 가해자로서 도덕의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국기에 대한 맹세가 정당하려면 그 국가는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여야 하며, 그 선함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신을 상정하지 않는 한 그러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에는 그 어디에도 자유로운 시민과(국민이 아닌) 그 시민(개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써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단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만 한다는 강제만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것이 도덕과에서 설정하는 도덕적 인간상이며, 한국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이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개체(주체)로서의 인간 존엄이나 숭고한 도덕성은 아예 문제가 될 수 없다. 애국.애족의 본질이 어머니 품에 안겨 있을 때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과 동일시된다. 왜 일부 국민들 사이에 나라와 민족에 대하여 느껴왔던 만족감이나 자랑스러움에 대한 마음이 그 빛을 잃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적 의문은 들어설 곳이 없다. 국가의 결정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시작되어야 할 중학교 학생들은 이에 앞서 마치 소년병(少年兵)처럼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해야 하며,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헌신과 병행되어야 한다. 의무가 지나치게 과도했던 우리의 상황에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는 잘못된 풍조라고 한다.(중2 도덕)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실증적인 자료로서 대한민국의 정체(政體)를 규정하는 헌법을 살펴보면 과연 이것이 정당한가에 대하여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장 제1조 ①항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제10조부터 제39조까지의 30개 조항 중 국민으로서의 권리 조항이 28개이고, 나머지 두 개만이 국민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헌법의 기초는 자연법사상과 사회계약론이다. 자연법사상이란 실정법의 근거로서 국가나 실정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개인은 천부인권으로서 생명, 자유 및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고, 사회계약론은 국가의 발생에 관한 이론으로 국가는 개인의 합의에 의한 계약의 산물이며 도구라는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국가의 주인은 시민(국민)이고, 국가는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수단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국가는 시민을 주인으로 삼아 충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가 교과서의 첫 장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전도된 대상에 대한 맹신과 맹목을 도덕으로 강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우리의 국가주의가 용납 가능하다면 일본의 군국주의나 우경화도 그들에게는 애국이고 국민으로서의 도덕적 자세에 충실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의 나찌즘이나 파시즘은 말할 것도 없고, 깡패 집단의 조직원 행동 강령도 도덕과 윤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과연 이것을 도덕이라 할 수 있겠는가?



헌법에도 반하는 국가주의


때문에 도덕과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러한 국가주의를 문제 삼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도덕 교과서를 가지고 교육을 행하는 곳이 학교이고, 그 내용이 보편성을 정수로 하는 도덕이기 때문이다. 도덕 시간이라면 일상의 비도덕적인 현상이나 행태들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저편에서 비도덕을 유발하는 기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탐구와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주의적인 덕의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보편의 지평에서‘국가’내지는‘국가주의’와‘도덕’은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이 둘이 갈등 상황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경우에는 우리가 어떠한 도덕적 관점을 유지하고 판단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우리의 역사와 민주화의 진행과정을 보면 나는 태극기가 자랑스럽고, 북한 인민들의 고통스런 삶을 보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우연에 너무도 감사한다. 또한 국가 단위로 세계 정치질서가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라는 단위를 통해서 개인적 삶의 보장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국민적 의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실재적인 현실에서의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의무는 특정 정치권력 내지는 집단에 대하여 타율적 복종이 될 수도, 타민족이나 국민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김두식 교수의 지적처럼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는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덜 나쁜’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난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가전제품이나 생활 용품 중 일제는 없는가? 당신들의 상품 선택 기준은 언제나 메이드 인 코리아인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위해 당신들은 언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는가? 맥도널드나 코카콜라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으며, 외화는 절대 본적이 없는가? 경상수지 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해외여행과 연수와는 무관한가? 국내 박사 학위로 당신들은 지금의 직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는가? 국가(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고 따르며, 교육부의 공교육 정상화 정책에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가?

덧붙이는 말

*이글은 2006년 전교조 신문 '교육희망'에 실렸던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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