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유권자는 인터넷에서 ‘닥치고 표나 찍으라’는 선거법

인터넷 시민이여, 익명으로 발언할 권리를 되찾자

민주적 선거는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선거 결과는 다음 선거까지 사회의 방향을 좌우한다. 어떤 정당이 얼마만큼의 의석을 갖느냐, 누가 대통령,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는 크게 변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선거는 우리 사회 저변의 역동적인 민심의 변화를 보여 왔다. 그래서 선거결과는 기득권층이나 심지어는 우리 스스로도 깜짝 놀라게 해 왔다.



선거의 꽃이 된 방송과 인터넷


민주적 선거의 전제는 민주적인 토론이고, 그 요체는 ‘발언의 자유’, ‘비판의 자유’이다. 정책은 비판과 토론을 통해서 검증된다. 선거 시기에 ‘토론과 비판’을 못하게 입을 막으면 선거는 그 기능을 할 수 없다. 우리 역사 속에서 선거법은 국민과 후보의 귀와 입을 막는 법으로 군림해 오다 시민의 저항에 독소조항이 하나씩 폐지되는 역사를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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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매개체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5공화국 때는 ‘합동연설회’에 구름같이 시민들이 모여 들었다. 정치적 표현과 참여에 목말랐던 것이다. 1987년의 대통령선거에서는 DJ, YS가 여의도에서 100만 명의 인파를 모았고, 민중후보 백기완 선생이 대학로에서 30만의 인파를 모았다. 당시 선거의 꽃은 ‘대중집회’였고, 그곳에 결집한 시민들은 ‘여론’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정치적 기본권을 누렸다.


2002년 대선 때는 풍경이 바뀌었다. 미디어 시대에 맞게 ‘방송 토론’도 중요해졌다. 그러나 주역은 역시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에서 시민들은 거대 기성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노무현 후보에 열광했고, 마땅한 기반이나 거대한 시스템도 가지고 있지 않던 노무현 후보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인터넷의 수백만 시민들이 여론을 만들고 거대한 기성의 시스템을 뒤흔든 것이다. 전 세계 언론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인터넷이 가져온 놀라운 사회변화를 앞 다퉈 소개하였다.
이번 대선은 어떨까?


인터넷의 영향력은 2002년에 비해서 훨씬 커졌다. 국민의 70%인 3,400만 명이 하루 2시간 이상을 인터넷을 이용하고,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1,300만 명이나 된다. 다음 블로그에는 매일 50만개의 글이 올라온다. 국민의 48%가 뉴스를 보는 1순위 매체가 인터넷이다. UCC를 만들어 본 적극적인 인터넷 이용자의 비율이 51%를 넘는다. 대부분이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여러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글도 쓰고, 읽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에서 인터넷은 가장 역동적인 공간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번 대선의 분수령도 ‘인터넷’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번 대선에서도 ‘인터넷’에서 시민들이 ‘여론’을 형성해서 기성의 거대한 시스템을 흔들고, 진정한 민의를 수렴해 나갈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2002년보다 법이 개악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2002년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통제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자신이 혜택을 본 인터넷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비민주적인 입법을 추진했다. 인터넷의 속성을 잘 알아서일까? 그 결과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선관위의 정보삭제요청권이 신설되었다.



인터넷에 덕본 대통령이 인터넷을 통제해


어쨌거나, 인터넷은 현재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선거법과 정보통신망법은 인터넷에서 시민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인터넷을 ‘침묵의 땅’, ‘그들만의 땅’으로 만들었다.


선거법에 의하면 선거일 전부터 24일간을 제외하고는 인터넷에서 특정 후보나 정당을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기 위한 선거운동용 글을 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어기고 글을 쓰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렇다는데 누가 감히 정치적 표현을 하겠는가? 혹시 누군가가 몰래 지지글을 쓰고 선거운동을 할까 봐 선관위는 330명의 감시요원을 선발하여 전 국민을 감시하겠다고 했다. 감시요원이 한 번 검색엔진을 돌리면,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써 놓은 댓글까지도 샅샅이 검색된다. 유사 이래 이처럼 완벽하게 표현을 감시하던 때가 있었는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표현은 사라지게 된다. 시민들은 인터넷에서 연예기사나 읽고 기다리다가 투표나 하라는 셈이다. 정치나 정책, 정당에 대해서 왈가왈부 글 쓰고, 토론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운동하고, 조직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입법된 인터넷 실명제도 독소조항 중의 독소조항이다. 인터넷에서 이름을 밝혀야만 의견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발언자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강자의 횡포이고, 표현의 위축을 노리고 있다. 실명제를 하면 표현은 대단히 위축된다. 특히 소수자나 약자의 의견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결국 기득권자와 강자의 목소리만 높아지게 된다. 논의는 왜곡되고, 여론도 왜곡된다. 익명으로 발언할 권리를 막는다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정보통신망법은 정당이나 후보자가 ‘명예훼손적표현물’이라고 항의를 하는 경우 다툼의 소지가 있으면,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블로그 등은 임시조치라는 명목으로 게시글을 안보이게 가려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럴진대 인터넷의 비판적 글이 남아나기 어렵다. 비판적 글이 없는 인터넷. 과연 민주주의가 보장된 땅인가?



유신시절에도 익명 비판은 가능했다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 정치적 발언이 금지되고, 할 말이 있으면 실명확인을 거쳐 실명을 달고 발언을 하라는 악법 조항. 유권자들의 정치적 비판과 토론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330명의 감시자는 인터넷에 있는 모든 텍스트를 검색한다. 그리고 이름을 체크한다. 소수자의 발언은 사라진다.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미니홈피에 오른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에 대해 정치인들은 명예훼손이라는 명목으로 삭제요청을 하고, 결국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된다.


유사 이래 이렇게 참담하게 표현이 억압받던 때는 없었다. 유신 때에도 뒷골목 포장마차에서는 정치 비판을 할 수 있었고, 이름을 대야만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근수근 비판을 할 수 있었고, 익명으로 말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감시원을 풀어 놓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은 일찍이 18~9세기부터 보장되었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부정되고 21세기적 완벽한 검열과 통제가 가능하다.


인터넷 시민들이여, 이제는 궐기하자. 그래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 권리’, ‘익명으로 발언할 권리’를 되찾아 오자. 침묵이 강요되는 감시의 땅 인터넷에 민주주의를 불러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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