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다방] 거울도, 시계도 없이

이번 여름은 내게 행복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에코토피아도 열리고 평화캠프도 열려서 자전거를 타고 1,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달렸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가 완공된 지 1년여 만에 에코토피아를 하기 위해 다시 찾은 전북 부안 해창갯벌은 딱딱한 사막처럼 변해 있었다. 그곳에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도록 하자는 것이 일주일 간 텐트를 치고 자며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생태화장실을 쓰고 전기 없이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소망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갯벌에서 선풍기도 없이 냉장고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느라 몸이 힘들었지만 나는 특히 그 풀내음 솔솔 풍기던 생태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허허벌판에 백 명이 공동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지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를 위해 자전거로 발전기를 만들었고, 자가발전이 가능한 손전등이나 라디오를 사용했다. 나는 목수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일정을 챙기고, 사람을 챙기고, 먹을 것을 챙기는 돌봄 노동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는 ‘살살 페스티벌’도 열렸다. 엄청난 돈을 들여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해 쇼를 하는 흥청망청 일회성 낭비가 아니라 갯벌도 살고 사람도 살자는 정신을 참가자들이 모두 나눌 수 있는 소박하고 정겨운 잔치였다. 마지막 날 저녁 살살 페스티벌에 함께 하기 위해 빗속을 뚫고 2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가 절정이었다. 조그만 공연장이 열기와 환호성으로 가득 채워질 때 나는 지난날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렸다. 이 열기는 누군가 시켜서 기획해낸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사온 것도 아니었다. 행사가 끝나면 모래바람처럼 흩어지는 것 같지만 언제든 순수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모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과 함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다니고, 지금은 평화캠프가 열리는 용인 ‘생명에너지센터’에 와 있다. 거울도, 시계도 없이 지내면서 나는 이들과 즐거운 운동을 만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나를 이해해주고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내겐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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