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미디어세탁소] 무엇이든 꼬리를 잡아야 사는 미디어

학벌위조 사건을 중심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포털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국내감독을 맡았던 신정아,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그녀의 학력위조가 드러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포털은 유명인들의 ‘학력위조’ 의혹 혹은 사실로 들썩거리고 있다.



소낙비 같은 의혹, 소문, 사생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위 위조 사실에 접근하는 언론매체는 일단, 의혹이 제기된 초창기 조심스럽게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약력에 주목하였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동국대 교수 논문표절 의혹”(<경향신문>, 7월 8일)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학력위조 의혹”(<서울신문>, 7월 9일)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가짜 예일대 박사’ 의혹”(<중앙일보>, 7월 9일)



그리고 학력위조가 사실로 드러나자 언론매체는 마치 갈지(之)자를 연상시키듯 오락가락하기 시작하였다. 학위 위조와 가짜 학력으로 대학교수가 된 그녀를 보며 가짜학위가 통했던 대학교수 임용 구조의 허술함에 경악하기도 하고(“‘학력 위조’ 구멍 뚫린 대학, 광주비엔날레 감독 선임 외압 의혹”, <서울신문>), 때로는 젊은 여교수의 뻔뻔함에 치를 떨기도 하였다(“광주비엔날레 감독 신정아씨의 대담한 거짓말 행각”, <연합뉴스> /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신정아 거짓말 들통 ‘예술계의 여자 황우석’”, <한국경제>). 그러다가 학력위조와 같은 사건이 벌어진 구조적 원인을 한국 사회 내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적 병폐라고 꼬집기도 하였다(“‘신정아 파문’으로 ‘위조인생들’ 간판중시 풍조가 주원인”, <서울경제> / “명성 좇는 미술계 ‘화려한 포장술’에 당했다”, <중앙일보>). 참으로 다양한 품평이 언론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어디 이 뿐인가. 사기행각이 가능했던 상황에 집중하면서 신정아의 주변 인물과 미술계 내에서의 평가는 물론 원로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이었다는 미술판에 돌아다니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비롯하여 가족을 둘러싼 재력과 배경까지 기사로 등장하였다. 여기에 동국대학교 내에서 학력위조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들도 빠지지 않았으며, 더욱이 사기행각의 주인공이 삼풍백화점 참사 때 생존자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삼풍에서도 살아났으니 어떤 것도 겁 안나”(<헤럴드뉴스>, 7월 13일)라는 기사까지 등장하고 나섰다. “날마다 新 미스테리”라며 언론매체들은 앞 다투어 신정아 씨에 대한 이력과 학력, 학위 위조 과정의 의혹과 가족관계 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소낙비는 피해가고 천천히 대응하겠다”는 신정아 씨의 발언처럼 신정아 씨의 학위위조 사건에 대해 언론매체는 마치 ‘소낙비’가 내리듯이 신정아 씨 주변의 온갖 정황들을 퍼부어댔다. 미온적인 동국대의 태도가 불교계가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던 언론매체들은 ‘신 씨의 모친이 불교계의 큰 손이라는 것은 낭설’(“신정아 ‘힘있는 집안’ 아니었다”, <한국일보>)이라며 신정아씨의 가족관계는 물론 신정아씨의 모친이 기거하는 사찰까지 보도하고 나섰다 (“신정아 교수… 모친이 기거하는 사찰”, <뉴시스>).


정작 학위위조로 비롯된 한국사회 내의 학벌중심과 구조적 거짓과 위선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언론매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술계, 혹은 학계의 학위위조와 학벌중심의 사회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했지만 지속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언론매체의 관심은 저조하였다. 이런 가운데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사건은 검찰 수사 착수와 광주비엔날레 이사진의 사퇴 등이 이루어질 때 즈음 난데없이 등장한 또 한 명의 학위 위조 사실로 인해 정말 한 여름 소낙비처럼 마무리되는 모양새를 취하였다.



꼬리를 잡아야 산다


<굿모닝 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 씨가 허위 학력을 고백하자, 언론매체들은 득달같이 이지영 씨에게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지영 씨의 허위 학력 사실에 대해 보도하던 언론매체는 “이지영 씨 ‘친정 빚 때문에 학력 속였다’”(<중앙일보>, <조선일보>), “이지영 동정론 확산… ‘그의 영어실력이 아깝다’”<한국일보>며 갑작스럽게 동정심을 유발시키기 시작하였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따라가기 시작한 언론매체는 가벼운 방식으로 ‘학력문제’를 제기하였다. “학력이 아닌 실력이다.”라는 논조는 학력위주 사건과 관련한 네티즌들의 대체적인 반응에 다름 아니다. “‘간판’ 중시하는 사회… ‘가짜 학위’ 판쳐”(<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한국은 가짜 석.박사들의 천국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브로커를 통해 학위를 만들어 내고, 학위 관리 시스템 조차도 허술하다’며 ‘학위 검증 시스템 강화’를 주장한다. 알고 있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벌중심의 사회가 지속되고 있고, 학력과 학벌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거쳐야 하고, 학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학연 속에서 그러나 한국 사회 내 학벌, 학력으로 구성되는 권력의 구조는 이 사회가 차마 청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최후의, 치명적인, 거대한 야만이다. 그리고 늘 그러하듯이 미디어는 이러한 야만에 기생하거나 힘을 보태는 세력으로 존재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학력위조를 보도하는 언론매체의 태도를 조금 더 살펴보면 이러하다. 일단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을 뒤흔들고 있는 학력위조에 휘말리거나 혹은 고백, 의혹이 제기된 사람들은 신정아, 이지영에 뒤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만화가 이현세,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창하, 동숭아트센터 대표 김옥랑, 교수 정덕희, 배우 윤석화, 장미희, 오미희, 최수종, 코미디언 강석, 방송인 주영훈, 지광스님 등. 학력위조 구설수에 오른 사람들도 만만찮다. 이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학력위조 논란을 보도하는 언론매체의 태도는 터무니없다. 더욱이 하루에 한 명씩 등장하는 학위위조 논란에 매체는 너나 할 것 없이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혈안이 되어있고, 보도 자체에 있어서도 의혹과 무성한 소문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도 긁어서 일단 터뜨리고 보는 저열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선정적 코드로써의 학력위조 사건을 포장하는 매체들의 전략에 몇몇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학력인증’을 하고 나서기도 한다(“임하룡 ‘한양대 중퇴’ 커밍아웃…당당한 학력 연예인 누구”, <조선일보>). 그러더니 결국 김태희, 송윤아 등의 연예인들이 뜬금없이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상위 랭크를 하고, 이는 다시 미디어를 통해 구현되기도 한다(“탤런트 송윤아 온라인서 시선집중…왜?”, <중앙일보>). 또한 누구에게는 동정을 또 누구에게는 마녀사냥식 보도로 일관성 없는 태도를 취하는 미디어는 결국 스스로 학력위조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한 관심과 의미부여보다는 가십형태로 사회적 공론화를 무력하게 하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미디어는 학력위조 논란 속에서 읽어내야 하는 공론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채 오히려 학력위조 사건을 흥밋거리로 전락시키며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 혈안이 된 야수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학벌사회의 충실한 버팀목


사실 한국 사회 내에서 학벌은 새로운 계급에 다름 아니다. 노동부의 2005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고졸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대졸 이상 임금은 154.9로 1.5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지난 해 중앙고용정보원의 청년패널 자료에서는 실업계고 졸업자의 월 평균 임금은 95만원으로 인문계고 졸업자(114만원)보다 낮았으며, 취업률도 3.3%포인트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서울대 신입생 10명 중 약 4명의 아버지 직업이 전문관리직,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이었고, 기업체 고위 간부 등 관리직에 해당하는 학생의 비율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정치인은 물론 기업체 고위 간부는 여기 저기 대학을 전전긍긍하며 ‘명예박사’는 물론 ‘최고경영자과정’ 등의 학위를 이력서에 훈장처럼 달고 있다. 이는 곧 학력으로 평가받는 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이를 통해 연결되는 학연의 망 속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조건,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학력과 학벌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을 측량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회적 구조 안에서 그 동안 학력과 학벌 등의 문제를 다루는 모습에서 학벌사회의 충실한 버팀목으로써의 미디어를 손쉽게 간파할 수 있다. 미디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실업의 안타까움을 전달하며, 토익과 토플에 매달리고 있는 학생들의 처지를 강변해왔다. 입시철만 되면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소위 일류대학의 소식만을 전달하였고, 고학력 연예인들이 등장하면 화색을 띄고 칭송하였다. ○○대학교 타이틀이 없을 경우에는 ‘성공신화’ 혹은 ‘전문가’로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라며 경악을 해댔고, 그리고 중졸 학력의 서태지는 대중음악사에서 ‘천재’로 불리고 있다. 반면 삶 속에서 노동을 하고,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을 향해서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며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지식이 아닌 육체로써 평가하고,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양극단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미디어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구도로 이끌어 나간다. 결국 학력을 중시하고, 학벌의 구도 안에서 구성되는 사회를 논의하던 미디어가 학위 위조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조롭기 그지없는 형태로 드러났고, 학벌을 중시하는 근원은 찾지 못한 채 너무나도 정직하게 학벌사회에 대해 질타하고만 있다.


최근 학력을 속여 왔다고 고백한 만화가 이현세 씨의 발언에서 미디어가 대하는 학력, 그리고 미디어가 따라가는 학벌에 대한 지독한 애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현세 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고졸’ 대신 ‘대학 중퇴’라고 해서 덕을 본 게 있었나”라고 묻자 “독자는 아니지만, 만화평론가, 기자들 평가에서는 좀 받았을 수도 있겠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해서 스토리가 탄탄하다’ 이런 말 나오면 그렇게 찔릴 수가 없더라.”라고 말하였다. 구체적 근거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고졸이 아니라 ‘대학교 중퇴’, 그러니까 대학교를 입학한 사실로 인해 기자들은 만화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참으로 야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인가. 이현세 씨의 이와 같은 대답에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 매우 궁금해진다.



학력위조 사건의 영구적 종결방법


결국 학력위조 사건을 두고 본다면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는 ‘가짜’, ‘짝퉁’이 아닌 것이 없다. 의도적인 학력위조를 한 개인도, 학위를 검증하는 시스템과 과정도, ‘지식’을 강조하는 포털의 개인정보도 무엇 하나 ‘가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학위 위조의 경악과 배신감, 그리고 최소한의 사회적 성찰은 이미 선정적인 가십 기사로 전락하였고, 학벌 중시.간판 중시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던 미디어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환원하거나 혹은 동정심에 호소하기도 하다가 갑작스레 사회적 문제로 환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나마 학력위조 사건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내용들은 학위검증시스템 도입, 개인의 양심 강조 등에 불과하다. 때로는 ‘자진신고기간’을 통해 이참에 학력위조 연예인 등을 구제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수하여 광명 찾자’며 명백한 범죄행위인 학력사기를 다른 문제로 환원하지 말자라며 질타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력위조 사건과 관련하여 어느 매체건 일관된 논조는 찾아볼 수 없고, 우왕좌왕 정신없는 모습만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그리고 대안으로 제시되는 내용조차 구체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한국사회 내 치명적 모순을 들춰내지 못하고 있다.


학벌사회의 문제점과 폐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식상하리만큼 그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회의 치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강고하게 다져져 왔다. 미디어 역시도 학력사회에 철저하게 봉사하며 기득권을 쥐고 왔다. 학력위조 사건은 오늘, 내일 끝날 일이 아니다. 이는 학벌중심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일이다. 올 여름 태풍처럼 몰아친 순간의 학력위조 사건으로 도덕적 양심을 회복하고, 학계의 학위 검증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쯤에서 ‘서울대의 나라’인 한국에서 ‘서울대’를 해체하는 방법으로 ‘학력위조 사건’의 영구적 종료를 주장하는 것이 그리 뜬금없지 않을 것이라 본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형진 |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활동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