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내목소리]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 반대가지지를 못 얻는 이유

고질적인 기자실 기자단의 문제점

정부가 내놓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놓고 벌어진 정부와 언론계의 갈등이 100일을 넘어섰다. 최근 정부가 언론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수정안을 발표했지만 언론계의 공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초 정부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언론계의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정책을 강행한 점은 지적받을 문제다. 또 언론의 대정부 정보 접근권 차단 의도를 갖고 이 정책을 추진한 속내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진 | 언론개혁시민연대




하지만 권력과 언론의 투명한 관계정립, 취재 문화 개선 등 이번 정책의 근본 취지를 고려한다면 반대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는 대부분의 언론 행태도 썩 올바르지만은 않다. ‘5공 언론탄압’을 사례로 들며 전면전을 펼치고 있는 언론이 자기반성과 대안제시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펼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보호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45년째 언론계에 몸담고 있는 안병찬(71) 전 경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험한 1960~70년대 폐쇄적이고 권위에 찬 기자실의 백태를 낱낱이 털어놨다. 그는 인터뷰에서 촌지를 판돈 삼아 고스톱 치는 기자실에서의 일상과 출입기자단 외에는 기자실 이용도 못하도록 했던 당시 경험담을 토대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자실의 문화를 지적했다.
문제는 그가 경험한 이 같은 기자실의 백태가 30~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년의 세월동안 정권은 바뀌었어도 기자실과 기자단의 폐해는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고스톱 판이 벌어지는 기자실


중앙부처 기자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각 출입처 기자실에서도 이 같은 백태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소위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역 일간지 소속 기자들로 구성된 지역 각 기관 출입기자단의 행태도 중앙부처 출입기자단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월드컵이 열리던 해인 지난 2002년 수원시청 기자실. 기자단과 공무원, 경찰 등이 모여 앉아 고스톱 판을 벌이다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한 젊은 기자의 문제제기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소동은 곧 사그라졌지만 기자단과 공무원들의 고스톱 판은 수원시청 옆 A은행 경기본부 기자실로 자리만 옮긴 채 계속됐다.


기사나 정보를 대가로 뇌물성 광고가 기자단을 통해 오가기도 하는데 기자단의 자체 결의로 풀기사(하나의 기사를 각 언론사에서 일제히 보도하는 것)가 되기도 하고 보도를 아예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3년 수원의 한 백화점 개점을 앞두고 경찰의 수사망이 수원시청 기자단을 향한 적이 있다. 수원남부경찰서는 당시 수원민자역사 애경백화점측이 개장을 앞두고 기자단 명목의 수천만 원대 대가성 광고를 발주한 혐의를 포착,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백화점 측이 행정절차를 밟지 않고 개장한 점과 이를 묵인한 수원시청 그리고 광고를 받은 기자단과의 연관관계를 집중 수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수원시청 기자단은 자진 해산하고 기자실마저 폐쇄해 버렸다. 수원시청 기자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인 지난 2004년 경기도교육청 기자실에서는 평소 일상대로 기자단과 공무원, 경찰 등이 모여 앉아 고스톱 판을 벌이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공중파 방송사의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놀랄만한 점은 이 자리에 한국기자협회 경기인천지역 지회장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 문화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는 한국기자협회 소속 간부가 다른 기자들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실과 기자단의 잘못된 문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자단에 가입하지 않으면 기자실 사용도 못하는 폐쇄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기자단이 기자실 출입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에 비회원사 기자는 기자실에서 기사 송고조차 못한다.


특히 대부분의 기자단은 관련 출입처의 광고를 수주해 회원사에 배정하는 일을 담당하는데 이 때문에 비회원사의 진입이 쉽지 않다. 회원사가 늘게 되면 배정받는 광고도 줄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논조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데 풀기사가 만연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기자단의 폐해는 이 같은 권언유착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현저히 침해한다. 또 국민의 세금은 기자단과 소속 언론사를 먹여 살리는 ‘돈줄’로 전락한다.



언론인의 책무


‘기자단=기자실’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일각에서는 기자실을 브리핑룸으로 전환하고는 있지만 주요 출입처는 기자단의 반대에 부딪혀 기존대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수원지역에만 경기도청을 비롯해 경기도교육청, 경기도지방경찰청, 수원지방법원(검찰) 등에 기자실이 존재한다. 물론 기자단도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출입기자단이 회원사를 투표로 정하고 신생 언론사의 기자실 출입을 제한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언론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고 변화하지 않은 채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한 반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 언론자유를 외치면서 정작 ‘언론인의 책무와 과제’는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범 기자협회 특위 위원장이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은 과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수사기관 등 특수 출입처의 기자실을 개방하게 되면 이름도 알지 못하는 동네신문부터 검경 수사내용 자체를 돈으로 사고파는 온갖 사이비 기자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라며 “검경 수사상황 등을 고려하고 엠바고를 깨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는 출입기자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반대 논리에 불과하다. 스스로 특권층이란 것을 인정하면서 그 권위를 잃지 않으려는 치졸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주장대로라면 그동안 보여준 기자단의 사이비 행태는 무엇인가. 또 엠바고는 취재 경쟁이 과열되면서 그들이 먼저 깨지 않았던가.


이같이 언론 스스로 권위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에 탈 많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의 폐해를 한 목소리로 지적해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 정말로 선진화 방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언론 스스로도 반성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일 때 가능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필자는 2002년 경기신문에서 광고수주에 따른 기자 서열화에 항의하는 편집국 기자단 집단사직 사태로 퇴사한 이후 경기도와 인천 지역언론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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