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사회공공성 그림 그리기

일상의 정치로부터 자치와 연대의 힘 기르기

지금부터 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사보험도 들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건강보험 적용을 받았어도 한 달 반 동안 종합병원에서 쓴 돈이 약 7백여만 원에 이른다. 적금을 깨고 비상금을 털어서 마련한 돈으로 병원비는 해결했지만, 퇴원이후 매달마다 들어가는 병원비와 간병인비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다. 큰 병이 들면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생생하게 겪고 있어서 ‘무상의료’가 절실하게 다가오지만, 그 화두를 운동으로 풀어가기에 현실의 조건은 녹녹하지 않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상의료”라는 사회공공성 투쟁이 왜 큰 운동의 흐름으로 보이지 않는지 궁금하고 의아스럽다. 사회운동포럼 사회공공성 기획단 활동을 하면서 이러한 관심은 내내 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사회운동포럼 사회공공성 기획단에서는 우선, 그동안 전개된 사회공공성 운동을 평가하면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투쟁 막바지에 가면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으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라거나 “생존권 투쟁에 대한 사회적 명분을 얻기 위해 덧붙이는 구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라는 회의적인 평가부터 “변혁을 위한 투쟁의 중요한 매개”라는 주장까지 사회공공성 운동 평가의 시작과 끝은 극과 극이다. 또한 “노동조합 상층이나 일부 사회단체 활동가들 외에 현장과 지역의 주체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거나 “의제 자체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정작 투쟁은 해당 영역 노동조합이나 일부 사회단체에 국한됐다.”라는 평가도 지적됐다. 이러한 의견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결국 지금 민중운동진영이 맞닥뜨린 공동의 어려움도 있고, 아직 제대로 사회공공성 투쟁이 나래를 펴지 못해 겪는 한계도 보인다. 그럼에도 사회공공성 투쟁은 신자유주의라는 시장과 자본의 극한적 자유의 광풍에 저항하려는 사람에게는 이념적 좌표에서 실천적 지침까지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사회공공성의 전제는 ‘개개인의 삶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민영화.사유화 조치에 대한 방어적인 측면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회공공성 투쟁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구성’에 대한 지향을 담고 있다. 따라서 사회공공성 투쟁은 인간다운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인 재화, 용역, 서비스를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기획, 생산, 유통, 분배하는 구조를 고민하는 운동이다. 이를 가리켜 8월 31일 ‘사회공공성 투쟁의 의미와 과제’ 워크숍에서 현정희(서울대병원노조 조합원) 씨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제공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현장 노동자의 이 같은 표현은 사회공공성의 각 영역에서 노동자가 사회적 재화나 서비스를 가장 잘 생산하고 유통하며 분배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교육, 철도, 교통 분야의 사전워크숍 동안 진행된 사회공공성 투쟁의 경험을 공유한 자리에서 관련 분야의 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에 대해 ‘자신감’ 있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회공공성 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행위자인 노동자들이 자기가 하는 노동에 관한 사회적 의미를 성찰하기 힘든 상황과 맞부딪친 것이다. 현재 2년여 동안 활동하고 있는 <영등포역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대위>의 경우, 철도노조가 결합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공공역사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역사의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노동 강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공공성이 가장 작은 노동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일부터 파고 들어갈 때 보편성을 갖는 힘을 획득한다. 이윤과(!) 시장의 논리로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공공역사를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편리를 제공하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작은 물줄기가 필요하다.



노동이 갖는 사회적 관계를 성찰하는 것의 의미


우리가 변혁운동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일상의 삶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극과 극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그리고 나의 노동이 사회(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성찰은 사회공공성 투쟁에서 필수적이다. 우리가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누가 생산을 계획하고 통제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생산.창조하는 것의 ‘상호관련성’과 ‘생존의 공동성’을 드러내며, 서로 주고받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형성된다. 이 때 우리는 삶에 대한 선택이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은 공기업의 소유 형태가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 이제는 운영의 문제, 그리고 해당 기업, 기관에서 생산해내는 재화.서비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고 있다. 또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제로 하는 사회 시스템 전반의 구성에 대한 고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용역.재화.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자기 노동에 대한 기획의 권한, 즉 이윤을 위한 노동을 극복하고 사회 구성원을 위한 노동으로의 재편이라는 문제의식과 맞닿는다.


사회공공성 워크숍에 함께 한 청중들은 ‘사회공공성’이 어떻게 자신의 삶으로부터 구체화되는지 표현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네 살짜리 아이를 둔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한 범용 씨는 “생활인으로서 적게 벌어도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 자리에 왔다”면서 “생산자들의 입장, 활동가들의 고민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한 대학생은 대학등록금을 융자해준다는 대학 내 대자보를 떠올리며 학생으로서 무상교육의 요구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은 변혁적 전망을 지향하면서도,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장으로부터 운동을 기획하는 ‘삶을 담아내고 새롭게 바꿔가는 운동’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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