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교실에서 더 이상 희망을 말할 수 없다

한 고등학교 교실의 일상적인 풍경

대학 입학 성적을 기준으로 보면 제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중상위권에 속하는 학교입니다. ‘무한 경쟁’, ‘승자 독식’, ‘경쟁력 제고’, ‘능력 지상주의’ 이런 것들이 개인의 삶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이 시대에 학업 성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이미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학업 성적은 상대 평가이므로 경쟁에서 뒤쳐지는 학생들은 어느 시절에나 있었지만 요즘은 이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증가하는 것이 이전과는 달라진 양상입니다.


요즘 교실에는 ‘잠’과 ‘야유’가 넘실댑니다.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쉬는 시간의 소란함 속에서도 전 수업 시간부터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출석부로 교탁을 3~4차례 힘껏 내리치고(때로는 호루라기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조용히 제자리에 앉고 자는 학생들 깨우라고 소리를 치면 교실이 진정됩니다. 잠이 깬 학생들의 이마에는 손등에 눌린 붉은 반점이 찍혀 있습니다.



잠과 야유가 넘실대는 교실


수업이 시작되면 의지(?)를 갖고 10~20% 정도의 학생들이 잠을 자기 시작합니다.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을 활용해 교사의 눈을 피해 잠을 잡니다. 잠에 대한 체벌을 별로 개의치 않는 이 학생들은 체벌이 없을 경우에는 책상에 엎어져 맘껏 잠을 잡니다. 하루 7시간 수업 중 4~5시간 이상 잠을 잡니다. 내신 성적에 반영되는 시험을 치를 때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10분 이내에 답안지를 작성하고 취침모드로 들어갑니다. 일부 학생은 문제를 읽어 보지도 않고 답안지만 작성합니다. 이들은 시험 기간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일찍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 학생들의 얼굴에서는 대체로 절망, 포기, 무기력, 걱정 등이 묻어나고, 생김새나 몸짓에서 가난함이 배어납니다. 학업 성적은 대체로 하위권입니다.
사진제공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20~30분의 시간이 흐르면 10~20% 정도의 학생들이 추가로 잠을 잡니다. 교사 몰래 친구들과 놀다가, 혼자서 핸드폰 등의 오락기를 가지고 놀다가,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교사들의 우스갯소리에 반응하다가 따분해지면 잠을 잡니다. 이 학생들은 잠과 체벌의 연관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체벌을 하지 않는 수업 시간을 골라 하루에 2~3시간 정도 잠을 잡니다. 이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 학생들입니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재미를 추구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학업 성적은 중하위권입니다.


이처럼 많은 수업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학생들에게 ‘왜 이렇게 많이 자니?’라고 물어보면 나름대로 이유를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요’, ‘몰라요’, ‘졸려서요’ 등의 대답을 합니다. 이런 대답들 속에서 경쟁에서 뒤쳐져 삶의 희망을 품기 힘든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려는 가녀린 몸부림이 느껴집니다.


잠자는 학생들을 깨워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지도하면 이 학생들은 대체로 무기력하게 앉아 있거나, 친구와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거나, 잠시 후 다시 잠을 잡니다. 자는 학생들을 깨워서 지도해 봐야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수업이나 방해하고, 자는 학생의 수도 나날이 많아진다고 생각하여 이들을 깨우지 않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위의 학생들과는 달리 졸음에 겨워 잠을 자는 학생들이 10% 정도 있습니다. 대체로 성적이 중상위권의 학생들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해 하루 한두 시간 정도 졸다가 자다가 합니다. 이 학생들은 나름대로 무한경쟁시대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혼나면 즐겁다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에게 참으로 잔인한 대우를 하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의 친구관계도 많이 변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자거나 깜박하여 주번 학생이 칠판을 지우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교실에 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몇몇 학생들이 소리칩니다. “주번 누구냐? 칠판 안 지우냐?” 당연한 외침 같지만 이 소리의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다릅니다. “선생님, 주번 혼내주세요. 친구가 혼나는 것을 보면 즐거워요.” 입니다.


수업 중, 학생이 교사의 질문에 대답하거나, 교사에게 질문을 하거나 또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만한 행동을 하면 학생들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야유’입니다. 학생의 행동이 훌륭하면 “오, 대단한데…”, 반대의 경우에는 “이런 XX같은 놈.”의 내용으로 많은 학생이 한꺼번에 야유를 합니다. 온갖 행동에 대해 야유를 하기 때문에 누가 언제 야유를 받을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학생들은 야유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야유를 받으면서 힘들어합니다. 학생들에게 놀이처럼 되어버린 이런 ‘집단적 야유’는 매 수업 시간마다 여러 차례 벌어집니다.


수업 시간 외에, 어디를 가든지 2~4명이 함께 다닙니다. 등하교 때에도, 단체급식을 먹을 때에도, 화장실에 갈 때에도 함께 다닙니다. 심지어 큰일을 볼 때도 한 명이 냄새를 맡으며 문 밖에서 기다립니다. 문고리가 고장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교무실로 선생님을 찾아올 때에도 용무가 없는 학생도 함께 옵니다. 친구 반의 종례가 늦게 끝나거나 선생님과 면담이 있어서 하교 시간이 평소보다 1시간 이상 늦어져도 절대 먼저 집에 가지 않습니다. 끝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갑니다. 과거에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나타나던 모습이었는데 요즘은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보편화 되었습니다. 교실 내에서, 1학급 단위에서 벌어지는 공격과 야유, 따돌림 등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으로 보입니다. 한두 명의 친구와 매우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여 숨 쉴 공간을 만들려는 몸짓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런 소집단 내부에도 따뜻한 감싸주기보다는 공격과 야유가 흐릅니다.



답을 찾지 못하는 교사들


과거에는 경쟁에서 뒤쳐진 학생들에게 성실하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능력 지상주의라는 말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성실성을 학생들에게 강조할 수 없습니다. 취업 경쟁에서 밀려나 100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는 비정규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성실하게 일해도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독과점 체제로 변해가는 이 땅에서 경쟁에서 뒤쳐진 학생들에게 무엇으로 희망을 북돋아 주어야 하는지 교사들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책과 자괴감을 품고 교사들은 교실로 들어갑니다.





덧붙이는 말

*덧붙이는 말. 저의 신원과 소속 학교를 밝히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로 인해 제가 소속된 학교와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 체제 속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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