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한국적 다문화 운동의 실험

안산 ‘국경 없는 마을’ 운동

안산은 불과 20여 년 만에 ‘농어촌 문화’가 변하여 ‘공단 도시문화’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곳으로, 수도권 공장의 교외 이전에 따라 갯벌지역에 흙을 매립하여 주택지와 공장 부지를 형성하고 반월 공단과 도시 주거지역이 형성된 도시입니다. 특히, 1990년 이후에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모인 반월 공단 공장들이 심각한 인력난을 맞이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함께 거주하며 살아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특히, 안산시 원곡본동은 3만여 명 주민의 70%정도가 외국인이며, 약 18개 국가 출신의 외국인들이 생활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430여 개의 외국인 상점들이 입주해 있으며, 20여 개의 지원 단체와 민족 공동체, 종교기관이 이들에 대한 상시적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초기 도시 조성 당시, 수도권 인근의 시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공단을 찾아 안산에 이주해 왔듯이, 외국인 노동자들도 국경을 넘어 같은 문제로 안산을 찾아와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국경 없는 마을’은 바로 이처럼 1990년 중반, 반월.시화공단에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다양한 국적 출신의 이주민 집단 거주지를 지칭하기 위해 안산이주민센터(당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가 발의한 명칭이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이 지역을 ‘다문화 공동체’로 전환시켜 나가겠다는 지역사회운동을 의미합니다.



‘국경 없는 마을’ 운동의 이해


지역 다문화 공동체 운동의 모델로서 ‘국경 없는 마을’은 지역 주민과 이주민이 지역사회 내에서 국적, 언어, 피부색, 종교, 경제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공동체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특히, 법적.제도적 접근만으로는 90년 중반 당시의 이주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인종적.문화적 차별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상호간의 문화적 교류와 이해 증진, 무엇보다도 다수자의 인식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화적 활동과 공동체성 강화라는 장기적인 기획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진제공 | 국경 없는 마을

이 운동이 지향하는 ‘다문화’란 실천적으로 차별문화, 즉 배타와 소외, 경쟁의 문화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운동이 추구하는 ‘공동체’란 가치관의 개혁과 소외된 관계의 회복, 나아가 경쟁적인 사회경제적 환경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협동적 삶을 뜻합니다. 즉, 운동으로서 ‘국경 없는 마을’은 존재방식에서 다문화적이고 관계방식에서 공동체적이며, 삶의 방식에서 협동적인 ‘다문화 공동체’ 형성인 것입니다.


‘국경 없는 마을’ 운동의 진행경과


지금까지의 ‘국경 없는 마을’ 운동의 진행경과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1996년에서 2002년에 이르는 제1기는 운동의 준비기이자 기반 형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내셔널 카페가 운영되는 등 정기적인 다문화 만남의 장을 마련하였고, 코시안 가족모임과 이주민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다문화운동의 주체를 세워나갔습니다. 특히 1997년부터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소식지 명칭을 ‘국경없는 마을’로 바꾸어 발행하고, 이후 1999년 11월에는 센터가 원곡본동으로 이전하면서 운동이 본격화되기에 이릅니다.


2003년에서 2006년까지의 제2기는 국제결혼의 급증으로 한국사회 이주민 구성에 급격한 변화와 증대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론화 작업, 정책 제시, 프로그램 운영에 착수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산업연수제의 폐지와 고용허가제의 도입 요구, 이주가정 코시안 아동의 교육권 주장, 이주민지원 조례의 제안 등의 제도개선 운동을 전개하였고, 지역 청소년 대상의 ‘찾아가는 다문화교실’, 주말(방학) 다문화캠프 및 대안학교 등의 다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습니다. 동시에 다문화운동에 대한 이론화 작업에 매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2006년 6월 이후 현재까지는 제3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의 명칭을 안산이주민센터로 변경하여 이주자들도 ‘주민’으로서 노동권을 포괄하는 사회적 권리와 생활여건을 향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보다 전문화된 ‘다문화’ 운동을 위해 ‘사단법인 국경 없는 마을’을 설립한 것을 계기로 시작됩니다. 현재 (사)국경 없는 마을은 다문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문화적 실천을 목적으로 연구조사 사업과 다양한 체험 콘텐츠 개발, 그리고 실천적인 지역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성과와 과제


다문화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장기적인 운동기획의 특성상, ‘국경 없는 마을’ 운동의 가시적인 성과를 섣부르게 진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다문화주의를 지향하는 선구적이고 실험적인 운동이었고, 자연스레 국내외로부터 연구자들과 관련 공무원과 사회단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급변하는 인구구성 및 이주민 유입 현상과 관련된 함의와 시사점, 운동적 결과물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하고 활발한 이주민공동체들이 형성되고, 누구보다도 열정과 헌신을 다해 이들을 지원하는 적극적 활동그룹들을 양산했다는 것 또한 지역 다문화 공동체 운동의 핵심 주체의 형성과 관련하여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역 내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주민의 문제, 원곡본동 ‘국경 없는 마을’을 공통의 지역 의제로 삼아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몇 성과에 비해 앞으로의 과제가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의제를 선도하고 운동적 가치를 생산해내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보다 전문성 있고, 창의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시 행정의 역할이 점차 증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의 일방적이고 개발중심적인 행위를 벗어나 보다 합리적이고 주민참여적인, 나아가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정당성을 높여나가는 노력이 요구됩니다.1) 또한 ‘국경 없는 마을’ 운동이 다수자 인식 변화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전망을 지니고 있는 만큼 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사업이 수립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여전히 중요한 법제도적인 개선과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를 위해서도 가장 앞장서서 이주민의 목소리를 정확히 대변하고 실제적인 다문화적 삶의 여건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말

1) 최근, 무리한 절차와 부실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추진하고자 하였던 안산시의 원곡본동 다문화체험특구 신청 계획은 이주민과 주민 간의 다문화적 공생과 무관한, 오히려 그간의 ‘국경 없는 마을’이라는 주민주도형, 상향식 운동의 성과들을 외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특구 신청은 이주민지원단체들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한결같은 저항에 직면하여 무기한 연기되었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논의를 위한 민관협의 국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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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응 | 안산이주민센터 대표, (사)국경없는마을 이사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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