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은지와 바타 이야기

다문화가정 테두리에서도 배제되는 이주아동들

1997년 태어난 은지는 10살이 될 때까지 필리핀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술을 자주 마시고 엄마에게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있는 가정에서 은지를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해 은지를 필리핀에서 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5년째 혼자 살면서 10년이나 떨어져 살던 은지가 11살이 되고 동생이 7살이 되었을 때에야 한국에 데려왔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은지는 한국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엄마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공장에서 오랜 시간 일한다. 어눌한 한국말로는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엄마에게 아무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직업교육도 받은 적이 없는 엄마가 은지와 함께 살기 위해서 오랜 시간 일을 하는 동안 은지는 동생을 돌봐야하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 언젠가 은지는 알림장에 쓰인 ‘등교’라는 말을 몰라 혼자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엄마도 그 말을 몰랐고 다음날 등교해야 하는지 몰랐다. 학교준비물과 숙제를 엄마도 도와줄 수 없다. 얼마 전 방과 후에 다니고 있는 이주민지원센터에서는 보건소의 도움으로 치과검진이 있었다. 은지는 그 작은 입속에 얼마나 많은 충치를 키웠는지 지원센터에서는 치료할 수 없어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나 엄마가 일하는 곳에서 반나절을 빠졌다가는 일당을 온전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은지를 데리고 병원에 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설사 병원에 간다고 해도 매번 일을 빠질 수 없고 병원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운데다 부족한 한국말로는 병원에서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 그나마 지원센터에 다니고 있어 그곳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은지와 바타의 불확실한 미래


1998년에 입국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학교를 다닌 바타(중학교 3학년, 17살, 몽골)는 다른 이주노동자 자녀들처럼 비자도 없고 몽골어로 자기 이름을 쓰지도 못하고, 심지어 몽골어를 하면 발음이 그게 뭐냐면서 오히려 몽골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바타는 운동을 잘한다. 그래서 학교를 옮겨 운동부에 들어갔고 서울 소재 학교 경기에서 꽤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그것이 끝이다. 비자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게 된 것 이상을 할 수 없었다. 전국체전에 나가려면 반드시 한국인이어야 하기 때문에 꿈을 접고 방황하고 있다. 바타는 한국학교를 다니면서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8년을 다녔지만 알파벳을 알지 못했고 사칙연산도 잘하지 못했다. 그 긴 시간동안 누구도 공부를 봐준 사람이 없었고 못하는데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오랫동안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못해도 드러나지 않아 노력하거나 잘할 필요가 없었고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숨길수가 있었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가야하는데 비자가 없으면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려면 교육청의 배정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학만을 위해 공부해야하는 인문계는 갈 생각도 없고 가서 무슨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른 이주노동자 자녀들처럼 실업계나 공업계 고등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이거야말로 학교장 재량이라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몽골어로 이름도 쓰지 못하는 몽골사람인 바타가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거나 고등학교를 나온다고 해도 비자 없이는 취직도 할 수 없고 대학에 진학하려 해도 비자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학교를 다녀 외국인특별전형에도 지원할 수 없다. 진학과 취업이 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몽골에 돌아가야 하는데 몽골어도 쓰지 못하는 바타는 어떤 나라에서 살 수 있을 런지….


바타는 지금 고민이 많다.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인지 그냥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한국에 왔을 뿐인데하고 한탄해도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아이들은 그저 오래 떨어져 살고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한국에 온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입국하고 뒤 늦은 나이에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게 된다.
이주아동들은 의료를 비롯한 많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받기 힘든 실정이다. 센터의 건강검진 모습. 사진제공 |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 같은 사례는 은지와 바타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주아동은 많은 시간 노동하는 부모보다 한국어를 빨리 배운다. 이들이 배운 한국어는 학교에서보다 가족들이 한국에서 당한 억울한 일들을 통역하면서 그 실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의존해 공장에서 일한 임금을 받는 일에, 다친 가족을 위해 산재처리를 해야 하는 일에 활용한다. 그래서 아이들 결석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다 늘 부모가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며 생활하고 있어 정서적 안정감을 갖기 힘들다.



이주아동들에게 체류허가를


한국에는 다양한 경로로 입국한 이주아동 1,209명이 재학 중이고 8,000명이 넘는 아동들이 학교에 취학하지 않고 있는데 이들 아동들은 최근의 화두가 되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제외되고 있다. 국내에서 출생하고 한국 국적을 갖게 되는 아이들과는 달리, 태어나더라도 무국적인데다 체류의 권리가 없어 또래 친구와도 정당한 교우관계가 되지 못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어 감기라도 걸리면 몇 만원의 병원비를 내야한다.


학교입학 전 한국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없어 학교생활 적응이 어렵고 이로 인해 학교 내에서 소외되며 학업중단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생활언어를 잘하게 되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학습언어를 익히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꾸준히 지도해야 하지만 이주아동들은 그럴 기회를 갖기 힘들다. 자유로운 입학과 취학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 대책과 취학 후 학업중단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안심하고 교육받을 수 있는 체류허가가 주어져야 한다. 반면 국제결혼가정에서 태어난 아동들 44,258명중 13,445명이 취학하고 있는데1) 국제결혼가정 자녀들은 14.5%만 취학 전 교육기관에서 교육받고 있어2) 취학 전 아동교육지원과 취학 후 학습의 점검이 필요하다. 또한 엄마나라 언어를 발달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며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다문화라는 일괄적인 테두리에서 한국말을 잘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모아 한국어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아동들과 국제결혼가정의 다양성을 알고 그에 맞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가정의 상황을 고려해 상황에 맞게 아동복지 차원의 개념을 가진 교육적 접근과 사회적 지원이 모색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말

1) 2007. 행자부 통계자료, 교육부 통계자료 2) 국제결혼가정 심층분석 보도내용 중 국제결혼여성실태조사(2007.4.2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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