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고용허가제 3년, 그 빛 좋은 개살구

싼 값에 쓰고 내치면 그만이라는 저급한 경제논리

올해로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지 3년을 넘어섰다. 고용허가제 아래 이주노동자에게 주어지는 합법적인 체류와 취업기간이 3년인 것을 생각할 때, 외국인력 제도로써의 고용허가제 운영이 한차례의 순환을 마치고 다음 순환으로 가고 있는 시점이다. 이는 그간의 제도운영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시기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난 8월 14일 고용허가제 시행 3년을 앞두고 정부 주관으로 그간의 제도운영 성과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는 “고용허가제가 우리나라 외국 인력 정책의 획기적 전환점이 됐으며 지난 3년의 평가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이주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노동현장의 목소리는 ‘또 하나의 현대판노예제’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사진 | 참세상



세 번의 기회와 우롱당하는 인권


“스리랑카인 V씨는 2005년 8월 9일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였다. 어렵사리 오게 된 한국! 그는 고생스럽더라도 꾹 참고 열심히 일을 해서 하루빨리 돈을 벌어 고국에 있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미래를 그리며 한국에서의 첫 직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첫 직장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사업주는 일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가도 그의 손에 쥐어져야 할 노동의 대가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권단체를 통해 임금은 받았지만 사업주의 미움을 산 V씨는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첫 직장을 나와 새로이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두 번째 직장. 첫 직장에서의 좌절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의 바람은 이내 깨어지고 말았다. 또 다시 반복된 임금체불.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직장을 바꿨다. 그런데 세 번째 직장에서 그는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병을 얻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또 새로운 작업장으로의 이동. 스리랑카인 V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2년이 채 안 되는 동안 사업장을 세 차례나 변경해야 했다. 그로서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데 그가 네 번째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감이 줄어들면서 같이 일하던 4명의 스리랑카 동료들이 모두 다른 작업장으로 옮기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두었고, 회사는 V씨마저 해고하려 했다. V씨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다시 인권단체를 찾았다. 거기서 V씨는 세 차례의 사업장변경이 노동자의 귀책이 아닌 경우에는 한 차례 더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차례 더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는지 관할 고용지원센터에 문의하였다. 그러나 고용지원센터의 기록에는 세 번의 이동사유가 ‘정상적 계약종료’, ‘합의 퇴직’으로 되어 있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인 사업주의 주장만이 사업장 이동의 사유로 인정된 것이다. 결론은 세 번의 이동사유 모두가 V씨의 귀책이 인정되어 더 이상의 이동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V씨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세 번의 기회를 모두 박탈당해버린 것이었다. 꿈을 안고 한국에 온지 2년 V씨의 꿈은 산산이 깨져 버렸다. 부당하게 해고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혀 단속과 강제추방이라는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미등록 체류자가 되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숨죽이고 지내야 할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2003년 입법을 거쳐 2004년 8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 고용허가제는 “그간 산업연수제도 하에서 연수생으로 들여와 실제로는 근로자로 편법 활용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인권침해, 송출비리, 불법체류자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 외국인근로자에게도 내국인과 동등하게 노동관계법을 적용하여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국제적 기준에도 맞고 … 국익과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제도이다.”라고 노동부 고용정책 담당자는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난을 받아 온 산업연수제의 폐해로 인한 외국인력 제도의 파행을 막고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확인하면서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실어 도입된 것이 고용허가제다. 그러나 시행 3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도입 초기부터 지적되어온 ‘사업장 이동의 원칙적 금지’ 조항으로 인해 국내 노동자와 동등한 노동권의 보장이라는 선언은 이미 형해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하여 미등록 체류자로의 전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인정하는 변경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가 인정하는 사유는 ①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 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고자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고자 하는 경우 ②휴업·폐업 그 밖에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그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 ③사업주의 법위반 등으로 인해 고용허가의 취소 또는 고용제한 조치가 행하여진 경우 ④상해 등으로 외국인근로자가 해당사업장에 계속근무가 부적합하나 다른 사업장에서의 근무는 가능한 경우에서 3회에 한해 인정된다. 그리고 모든 경우 사업주의 변경 동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변경사유와 사업주의 동의라는 비현실적인 요건을 정해 놓음으로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차별대우와 계약위반,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 등 각종의 부당한 처우에도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 설령 변경사유에 해당한다 해도, 노동부가 인정하는 변경절차를 모르는 경우, 또는 그것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사업장 변경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참고 지내던지 아니면 불법체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고용허가제 하 모든 권리는 사업주에게 있을 뿐이며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법적 지위가 결정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종속적 존재에 불과하다. 고용허가제 하 이주노동자는 ‘관리와 통제’의 대상일 뿐 권리의 주체로써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수 없다.1)



이율배반의 폭력 - 단속과 강제출국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정부는 고용허가제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목표 아래 소위 ‘불법체류자’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면서 ‘국가안보, 국내노동시장 교란방지,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의 우범화 방지, 합법적 체류질서 확립’이라는 논리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추방정책의 추진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정책의 부도덕한 이율배반적 폭력을 합리화하는 억지에 불과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정부정책에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산업연수제 이후 송출비리와 노동착취, 인권침해 등 이주노동자에게 노예적 삶을 강요해 온 정부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양산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한정된 수의 이주노동자만을 합법의 테두리에 포함시키는 제도의 유지를 통해 그 운영을 맡은 이익집단인 사용자 단체의 이권을 보전해 줌과 동시에 산업현장에서의 노동력 부족에 대한 요구를 무마시키기 위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 오기까지 했다.


이렇듯 일련의 정부정책이 추구해 온 기조는 노동권이 부정된 등록이주노동자와 체류지위가 부정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구조의 유지 강화였다. 이러한 기조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강제단속과 추방을 통한 불법체류 감소라는 정부정책의 실패는 이미 증명된 지 오래다. 오히려 합법적 질서를 표방하며 진행되는 단속과 보호, 추방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가 횡행하고 있고 그로 인한 인권침해가 반복되고 있으며, 단속을 두려워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악덕 사업주 등의 착취와 억압만을 더욱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부끄러운 자화상


최근 정부는 이주민 100만 시대를 맞이하여 ‘이주민과 함께 하는 다문화 사회의 구현’을 국가적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내놓고 있다. 정부의 정책기조는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우수 전문 인력의 적극적 유치와 수년 사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결혼이주민의 사회통합을 최대의 과제로 설정한 가운데 단순노무인력, 즉 고용허가제 하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기존의 제도적 틀 내 최대한 활용하되 정주화 방지를 통한 사회적 비용발생은 막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이기주의에 봉착한 추악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에 본격적인 ‘이주노동’이 시작된 지 17년여가 지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한국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어느새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명한 사회적 실체로써 이주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에 이들 이주노동자들에게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이라는 작은 문 하나도 열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다문화사회’라는 허황한 구호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조차 희석시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동등하게 보장하겠다던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그 자화상은 ‘빛깔만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필요할 때는 싼 값에 쉽게 쓰고 효용이 적어지면 내치면 그만이라는 자본주의식의 저급한 경제논리가 아닌 인간존엄과 보편적 인권논리에 입각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덧붙이는 말

1) 최근 ‘외국인근로자고용등에관한법률 제25조 ‘사업장 이동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특히 사업장 이동의 횟수제한에 관해 제기한 위헌판단 요구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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