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이에요, 당연하지] 태안 자원봉사에 대한 딴지걸기

세계가 놀랐다는 인간 띠, 과연 세상은 살 만한가

최근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연일 태안의 방제작업과 봉사활동 관련 기사들을 보도하느라 정신이 없다. 새 대통령 당선자가 정부 부처를 줄여 예산을 깎고, 의료보험 민영화에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 등의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도 여전히 태안 얘기가 대세다.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방제활동의 손길이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놀란 인간 띠” 운운하며 구제 금융을 받았던 시기의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는 둥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원봉사를 추켜올리기에 바쁘기만 하다. 그러면서 한 켠에서는 여전히 봉사활동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아직도 주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으며, 생태계가 완전히 복원되려면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는 등의 흉흉하고 절망적이면서도 선정적인 소식들을 내보내면서 은근슬쩍 더욱 많은 손길을 요구하는 내용을 흘리고 있다.


봉사활동을 추켜세우는 목소리가 슬슬 지겨워질 즈음, 방송에서 지역 주민들의 상황을 접했다. 어장 주인의 울분에 찬 모습이 화면에 떴고 얼굴 고랑 하나에 자식의 수십 년 세월을 담아왔을 할머니의 모습도 있었다. 매일 해산물을 캐고 잡아서 생활을 연명했을 바닷가 주민들에게 검은 기름띠의 바다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로 느껴졌을 것이다. 멸종위기를 간신히 넘긴 고래가 기름 때문에 배를 드러내놓고 바닷가로 밀려들어왔다는 뉴스에 ‘진짜 불쌍하다’로 넘겨버렸던 감정이, 어장 주인의 울분과 할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들의 삶과 생활이 파탄 난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해 분노하기 전에, 살아계실 때 죽도록 고생하시면서 엄마와 나를 키우셨던 우리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버렸다.


아마 그것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태안으로 달려간 이유는. 주민들의 분노를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동했던 무딘 나와는 달리,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꼈던 것이다. 연인관계나 부부, 가족관계에서조차도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방제 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공감능력에 전 세계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들이 태안으로 달려간 이유


예능 프로그램 ‘라인업’이 요즘 뜨고 있다고 한다. ‘생계형 개그’를 표방하며 얼마나 가난하고 불쌍하게 살고 있는지를 자랑하던 개그맨들이 몸소(?) 태안에 내려가서 방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이 그렇듯, 패널들이 봉사활동 하는 몸짓, 손짓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방송하는 것은 물론, 기름덩어리를 보며 찌푸린 얼굴 표정 한 번 클로즈업할 때마다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는 듯 구구절절하고도 친절한 자막으로 열심히 설명해준다. 그 프로그램의 MC는 “누구 때문에 국민들이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나? 가해자들은 가만있고 피해자들만 고생을 한다”는 발언을 해서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라인업’ MC의 인기가 오르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봉사활동을 참여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 가해자는 뭘 하고 있을까? 내 주변 지인들 몇몇도 태안에 다녀왔단다. 솔직히 처음 들었던 생각은 ‘거길 왜 가?’하는 것이었다. 누가 바다에 유조선을 띄웠으며, 왜 악천후에도 그 무거운 해양 크레인을 끌고 그 곳을 지나갔는지, 그리고 사후 대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름이 유출되었다는 말에 밑도 끝도 없는 선한 의도로 태안에 달려간다는 사람들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구제금융 시기에 서민들은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해서 나라를 살리려고 노력했건만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비정규직만 600만을 훌쩍 넘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말을 참 잘도 뱉어낸다 싶기도 하다. 생태계가 제대로 복원되려면 5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양의 기름을 토해내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싹 입 씻고 있는 가해자들은 조용히 뒷짐이나 지고 앉아 있으면서 자원봉사의 힘이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기나 해주면 감사해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인권과 봉사의 차이


태안에서의 봉사활동은 우리에게 ‘아직도 세상은 살 만해.’라는 희망을 심어줄 만큼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진 그들이 모두 인권 감수성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 공감을 통해 표출되는 행동이 결국 ‘금 모으기 운동’ 따위로 치환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건 논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흔히 ‘인권 감수성’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공감하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권리’의 개념은 감성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것과 타인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선에 대한 합의가 바로 권리인 것이다. 인권의 의미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의 감성을 공개한다고 해서 내가 인권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수용할 때야말로 인권을 수호할 수 있는 것이다.


‘라인업’ MC의 발언에 MC의 인기가 치솟는 것은 그가 우리의 감성을 대신 표출해 주었기 때문이지 그가 옳은 말을 해서가 아니다. 태안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방제활동만이 아니다. 가해자가 반성하고 사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저 뒤편에서 끌어내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 지점에서 태안에서의 방제활동은 인권을 지키는 활동이 아닌 봉사활동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적인 공감을 넘어 실천적인 차원으로 공감하는 것이 그들에게 생존의 권리를 온전하게 돌려주는 것이며, 그게 바로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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