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세계인권선언의 제정과 현재적 의미

세계인권선언(이하 <선언>)이 선포된 지 60년이 흘렀다. 인류의 평화와 정의를 염원하던 언약은 예상치 못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인권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선언> 이후 각종 국제인권규범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인권은 국내외에서 강력한 세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는 증대되는 빈곤과 불평등, 인간존엄성을 억압하는 전쟁과 시장의 침략 앞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며, 시공을 초월한 격랑 속에서 <선언>은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선언>은 이제 그 역할을 다한 것인가? <선언>은 본래부터 흠결 없는, 완전하고 완결된 것이 아니었다. 인권이 정치적 과정을 통해 새로이 만들어지고 해석되는 것이듯, <선언> 역시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투쟁과 논쟁의 ‘합의’이며, ‘산물’에 불과했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의 폐기가 아니라 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고 권리를 목록화하며, 그 이행방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강구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선언>의 제정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고, 부족하나마 그 한계를 짚어보고자 한다.



<선언> 이전의 국제적 차원에서의 인권 논의


인권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논의는 19세기 노예제 문제에서 시작됐다. 존엄한 삶을 위한 용기 있는 노예들의 저항이 계속되면서 프랑스와 영국을 필두로 미국,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노예제가 폐지되고 노예무역이 금지됐다. 이 과정에서 발표된 <8국 선언>(Eight Power Declaration, 1815)은 노예제 및 노예무역에 반대하는 초국적 운동의 서막을 알렸으며, 이후 세계노예폐지대회(World Anti-Slavery Conference, 1840), 베를린 회의(Berlin Conference, 1884) 등으로 이어졌다.1)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국제적 차원의 인권 논의는 소수민족 보호, 노동조건 보호, 외국인에 대한 처우 등으로 확장됐다. 사회주의 진영은 볼셰비키혁명 이듬해인 1918년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사상 최초로 일국을 넘어선 노동자 권리에 대한 사회주의적 인권원칙2)의 천명이었다. 한편에서는 유럽 열강을 중심으로 국제연맹과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됐다. 이 기구들은 인간적 노동조건, 여성과 어린이·청소년의 인신매매 금지, 질병의 예방과 통제 및 민족자결 등의 인권원칙의 이행을 약속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열강들의 국익보호를 위한 냉정한 이해타산과 철저한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었지만 국제적 차원에서 인권이 논의되고 국가 간 합의가 도출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양차대전 사이의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본격적인 국제적 차원의 인권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살육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시작됐다. 5천만 명에 이르는 대학살 앞에서 인류는 새삼 인권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 가치를 천명하게 되었다. 그것이 비록 전후 국제질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열강의 계책이었을지는 몰라도, 인권은 전 인류의 평화와 공존, 정의와 자유를 위한 약속의 언어로 사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위한 전쟁 중 또는 전쟁 후의 중요한 선언이나 조약에서 한차례의 예외도 없이 인권이 등장했고3), 이러한 인권의 강조는 유엔의 설립과 <선언>의 채택으로 이어졌다.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1945년 창설된 유엔은 유엔헌장 전문에서 기본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 및 가치를 명시했다. 그리고 제55조와 제56조를 통해 인권 존중과 준수가 유엔의 목적임을 재확인하고, 그 성취를 위한 행동서약을 규정했다. 이에 따라 1946년 1월 제1차 유엔총회에서 유엔인권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유엔인권위원회는 지역적, 문화적 안배를 고려해 8개국으로 구성된 유엔의 인권선언 ‘기초위원회’를 구성했다. 1947년 1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기초위원회를 중심으로 인권선언의 문구가 성안됐다.


<선언>의 제정과정은 치열한 격론과 논쟁으로 점철됐다. 초반 논쟁의 핵심은 ‘조약’을 만드느냐 아니면 ‘선언’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부 국가들은 단순한 권고나 결의안이 아닌 세력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를 똑같이 구속하는 조약을 원했던 반면 일부 국가들은 이행장치 없는 선언 또는 원칙들을 담은 성명을 끈질기게 주장했다.4) 또한 구 소련이 사회·경제적 권리와 함께 시민적 의무를 중요시 한 반면 미국이 시민·정치적 권리를 강조하면서 마찰은 계속됐다. 문화적, 종교적 차이 역시 쉽게 결론 나지 않는 논쟁이었다. 격렬한 논쟁과 1천 4백여 번에 달하는 투표 끝에 <선언>은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총 58개국의 유엔 회원국 중 50개국의 인준으로 통과됐다.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탄생한 것이다.


8개 국가는 투표에 기권했는데, 구 소련을 포함한 6개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선언>의 내용이 주로 개인적이며,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불충분하게 명시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권은 국내의 정치범수용소 운영 등 인권보장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 근거한 것5)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선언>의 구속력에 부담을 느꼈다. <선언>은 도덕적 언어로 쓰여 법적 구속력이 없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내 흑백분리체제에 대한 간섭을 두려워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회교도 전통을 <선언>에 반영(특히 종교와 혼인의 자유)하려고 했지만 이는 번번이 좌절됐고,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는 기권을 선택했다. 이렇듯 각기 다른 이유로 8개 국가가 <선언>의 인준을 포기했지만, 이들 국가가 <선언>의 정신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인권선언의 성과


<선언>은 보편적 인권 개념을 확대하고 이를 정리한 최초의 문서로, 개개인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사상에 입각한 최초의 국제문서들 중 하나이다. (후술하겠지만) 사실 보편적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권은 문화권마다 다른 성격을 지니며 서로 상이한 제도와 정치적, 경제적 배경 아래 구축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선언>의 제정 과정을 통해 인권이 기반을 둔 인류공통의 신념이 최소한으로나마 논의되고 확인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언>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는 것은 인권규범의 정교화에 <선언>이 미친 영향이다. <선언>의 제정 이후 유엔을 주축으로 국제인권규범을 제정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됐다. 그 결실로 각종 협약들이 제정되고, 그 이행에 관련한 절차들이 마련됐다. 이런 국제인권규범은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 공통의 대화기준이 됐으며, 인권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토양이 됐다. 국가가 자국민을 대하는 방식이 정당한 국제적 관심사일 뿐 아니라 국제기준에 속한다는 시각을 새롭게 규범화한 것 역시 <선언>이다. <선언>이 등장하기 이전에 자국민에 대한 처리는 온전히 일국의 영역으로만 사고됐었다. 아울러 국제관계에 인권을 호출함으로써 지구적 관점 말고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건설에 기여했다.


사실 제정 당시 <선언>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목표와 희망을 담은 문서에 불과했다. 유엔 총회는 <선언>을 모든 개인과 사회가 ‘점진적인 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통의 성취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덕적 언어로 쓰인 <선언>은 그 후 일련의 흐름 속에서 규범력을 갖는 지구적 기준이 되었다. 우선 1948년 <선언> 채택 후 유엔에 가입한 많은 신생독립국들, 특히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선언>을 참고, 인용해 그들의 헌법을 제정했다. 유럽 밖에 있는 많은 지역기구들 역시 <선언>을 여러 협약이나 결의문에 반영했다. 또한 <선언>은 제정 후 유엔과 많은 전문기구들이 의결, 공포한 각종 인권규범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흐름에 국가의 인권존중 관행이 늘어나고 국제정치 현장이나 법정에서 <선언>을 정기적으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결국 선언문은 구속력 없는 ‘결의문’의 지위를 넘어서 국제 관습법의 지위를 획득하게 됐다.6) <선언>이 인권을 강력한 법적,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인권은 그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때론 매우 정치적이고 위선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정치현장에서 인권원칙에 대한 거론은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필수적 개념이 되었다. 인권에 힘이 생긴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의 한계와 논쟁


인류 인권 역사에 대한 <선언>의 지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선언>은 제정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야기했으며, 제정 이후에도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래의 논의(선언의 한계와 논쟁, 선언과 인권패러다임의 변화)는 지난 9월 인권연구소 창에서 작성한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의 일부를 발췌, 재정리한 것이다.



보편성 논쟁
우선 <선언>은 서구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인권체계에 편향돼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식민지배 하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이 <선언>의 작성 및 채택에 참여하지 못했던 반면 이들을 지배하던 유럽 열강들은 대거 <선언> 과정에 참여했다.7) 또한 <선언>과 그 후의 국제규범들을 기초한 사람들은 주로 서구인들과 서구에서 교육받은 비서구사회의 대표자들이었다. 하여 <선언>은 서구 인권체계에 경도돼 의무보다는 권리를, 집단의 권리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그리고 사회권보다는 자유권을 더 강조한다. 제국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명시적 우려 표명이 부족한 것 역시 비서구사회의 목소리가 충분하게 반영되지 못한 증거이다. 또한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선언>의 보편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기도 한다. 1947년 미국인류학협회(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는 처음으로 <선언>에 조직적인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 협회는 <선언>이 문화적 다양성과 지역의 특수성을 변형·파괴한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 ‘아시아적 가치’를 필두로 ‘아프리카적 가치’와 ‘이슬람 인권’에 관한 담론이 제기됐다. 식민국들의 반발을 반영한 문화상대주의 입장은 인권이 새로운 개입과 침입을 위한 구실이라는 것이다. 인권은 서구의 개념으로 비서구사회에서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으며, 인권은 서구의 식민지 연장을 위한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인권 이념과 전통문화 간의 긴장을 인권 대 문화,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의 대립관계인 것으로 호도하거나, 혹은 문명의 충돌, 서구 열강의 문화침탈의 결과인 것처럼 부당하게 강조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인권이 아닌 동양 대 서양, 민족주의 대 식민주의라는 대결구도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문화적 다양성을 탄압한 것은 서구의 인권이 아니라 국가민족주의이며, 문화적 민족성을 탄압한 것은 서구적 인권이 아니라 국제식민주의라는 것이다. 인권이 문화전통에 대한 정당한 자기주장을 펼 수 있는 규범이 될 수는 있어도 어떤 획일성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인권
<선언>에 가부장적 관점이 담겨있다는 것 역시 오래된 비판이다. <선언>에는 ‘가족주의’나 ‘남성중심성’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곳곳에 녹아있다. 우선 전문은 인류 구성원의 공동체를 가족으로 비유하고 있으며, 16조는 가정을 사회의 기초적인 구성단위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제1조는 “형제애의 정신”(in a spirit of brotherhood)을, 23조와 25조는 “(남성 노동자)자신과 가족”(himself and his family)이란 어휘를 사용, 남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성인지적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선언>은 매우 소극적이고, 피상적인 자세로 여성인권문제에 접근했다. 일례로 참정권, 노동권에서 여성의 권리를 특화하자는 주장은 모두 일반적 표현으로 수렴됐다. <선언> 제정 당시, 많은 국가에서 모든 사람들의 동등한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여성권리 옹호자들은 정치적 미성숙을 이유로 여성의 참정권이 보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참정권 앞에 ‘동등한’ 이라는 말을 삽입하기 원했다. 또한 노동권에 대해서도 남성과 동등한 혜택 속에서 일할 권리와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을 주장하며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 대신 여성을 특화시킨 표현을 사용하길 원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여성을 포함하는 말이며,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은 영역에 걸쳐 있기에 특정 영역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반론 때문이었다.



자유권과 사회권의 대립
<선언>을 둘러싼 가장 치열한 논쟁 중 하나는 자유권과 사회권에 관한 것이었다. <선언>에 사회권 명시를 불만스러워한 진영은 시민·정치적 권리만이 명확한 권리이며, 이를 넘어 새로운 종류의 권리를 <선언>에 포함시킨 것은 인권개념의 혼란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사회권을 실체적 권리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8) 반면 사회권을 중시한 국가들은 사회권은 19, 20세기에 인류가 성취한 사회진보의 결과로 이는 보편적 생각임을 강조했다. 사회권이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할 근본적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의의 이념과 합치된다는 것이다. 한편 <선언>에 사회권을 명시하는 데는 동의했지만 그 이행과 관련해 다른 생각을 가진 국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회권이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거나 그 의무를 지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여 가난한 나라의 경우 사회권의 이행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며, 넓은 의미의 원칙을 표명하는 수준에 합의했다.
격론 끝에 사회권은 총 6개 조항만이 명시됐다. 이는 총 15개에 달하는 자유권에 비하면 매우 미약한 것이다. 또한 자유권은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 선언된 반면 사회권은 보충적이며, 잔여적인 것으로 선언됐다. 즉 사회권을 누가, 얼마만큼,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생략된 것이다. 이러한 접근과 대립은 자유권 규약과 사회권 규약이 각각 별개의 권리규약으로 제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자유권과 사회권을 분리해 사고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선언과 인권패러다임의 전환


<선언> 제정 후 60년, 인권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선언> 제정 당시와는 매우 다른 환경과 인권문제들에 직면하게 됐다. 따라서 이후의 논의에서는 시대적 변화와 요청 속에서 향후 <선언>을 어떻게 독해, 재구성해 나가야 할지를 살펴볼 것이다.



국가중심에서 시장중심으로
인권이 보편적 인간의 차별 없는 권리라는 초국적 의미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국민국가의 영향력이 강성하던 시대에 탄생한 <선언>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인권개념에 기초해 있다. 시민·정치적 자유는 ‘국가에 의한 권리침해로부터의 자유’에 중점을 두었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국가에 의한 복리의 보장과 증진’을 강조했다. 국제인권법의 의무당사자는 당연히 국가였다. 국가에 인권 존중과 보호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패러다임은 국가에서 ‘시장과 무역 중심’으로, ‘시장 우호적’으로 전환됐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국가의 중대한 역할, 특히 재분배역할과 공공성을 부정하는 반면, 자본을 위한 자유롭고 무한대의 공간 창출을 국가에 요구한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및 의무 불이행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에 의한 새로운 인권문제들이 매우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구조적으로 전개된다. 경계가 무너진 지구화 속에 국가 관할권이 미치지 못하는 초국적기업이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 영역이 민영화되면서 민간 기업에 의한 공공성 파괴와 인권침해가 발생한다. ‘인권 주체의 혼란’은 시장의 이익을 최대화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권 문제 중 하나다.
기업가의 권리가 노동자의 권리와 대등하게 다뤄지고, 기업의 이익 주창이 권리의 언어로 포장되는 것, 자유와 안전이 거래 가능한 것처럼 다뤄지는 것 등이 바로 권리 주체 혼란의 대표적 사례다. <선언>의 17조(“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와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와 27조(“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학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 등을 오용해 기업 등은 자신들이 권리의 주체임을 자임하며, 인권의 언어로 자신들의 이익을 포장하려 든다. 기업이 개별 인간의 결사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갖는 기존의 인권으로부터 기업의 권리를 도출할 수 있다는 식이다. 기업의 제약 없는 과학기술 실험의 권리를 ‘언론자유’식의 권리 논리로 설파하고, 기업에 대한 비판을 ‘명예와 신망에 대한 권리’로 방어한다. 또 인류가 건강권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제약과 의료산업의 연구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악용은 필연적으로 시장과 사회적 강자의 우위와 횡포를 불러온다. 따라서 인권운동은 인권의 주체와 보호돼야 할 인권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야만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서는 저항의 언어와 구조로써 인권을 기획하고 재구성해야하는 것이다. 이는 <선언>이 기초했던 국가중심주의를 극복9)하는 동시에 그 외의 비국가행위자들(non-state actors)10)의 인권책임을 부과하고 관계를 정립하는 일과 병행되어야할 것이다.



법의 지배에서 ‘정치’로
인권과 ‘법의 지배’(법적 제도화)는 마치 동의어처럼 거론되곤 한다. 인권은 법적 제도화를 통해서만 그 도덕적 차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11) 그러하기에 <선언> 이전 대부분의 국제선언과 조약들은 국내법으로 명시돼야만 권리로 인정될 수 있다는 실증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현실에서 법 조항의 유무가 인권 존중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는 것 역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법은 오직 법을 통해 인권이 보장돼야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국제인권법을 비롯해 헌법 등의 여러 가지 법제화가 인권을 풍요롭게 만들고 매우 강력한 실천 기재로 작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권담론을 형식화시키고 상상력을 제한하는 틀로써 작용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인권은 시공을 초월한 인류의 투쟁 역사 속에서 그 영역을 하나씩 확장해왔으며, 법은 확장된 권리 실현을 위해 취해진 많은 조치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권의 사고와 실천이 국내외적으로 법적 사고와 언어에 크게 치우친 경향을 띄고 있다. 마치 명문화되지 않은 것은 인권이 아닌 것처럼 사고되고, 인권을 실천하기 위한 과정 역시 법 중심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기획된다. 인권을 저항의 언어, 사회해방의 언어, 아직도 진행 중인 전 세계적인 무수한 대중투쟁의 현장까지 담지하기 위해서는 인권과 법의 지배를 개념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법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띌 수밖에 없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권이 법의 지배라는 보다 유순한 담론으로 대체되지 않고 통치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으려면, 저항의 언어로써의 인권과 탈정치화에 대한 꾸준한 경계가 필요하다.



선언의 재구성
<선언>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다. 하여 2차 대전 후의 사회경제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권리,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새로운 권리를 반영하면서도 급진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극히 신중을 기했고, 여성의 권리나 가족생활에 관련해서는 보수적 사회기조를 반영했다. 차별을 금지하면서 ‘장애’를 언급하지 않는 등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빠진 부분도, 한계도 많다. 따라서 <선언>이 목표한 “모든 국민들과 국가에 대한 공통의 기준으로서”의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변화된 시대와 요구에 맞춰 <선언>을 확장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인권운동진영이 시도하고 있는 시민인권선언(가칭)은 이에 부합하는 시도다. 아래는 최근 부상하는 인권문제들을 <선언>에 반영, 대안을 마련해본 것이다.12)



2조 차별금지
가치 있고 자율적인 삶을 살 노인의 권리
장애유형이나 정도와 무관하게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시민권을 행사하고 자신을 발전시킬 권리
3조 생명권
생물다양성을 향유할 권리, 미래 세대를 위해 환경의 유지와 지속성을 지킬 권리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의료분야의 과학 및 기술발전으로부터 인간존엄성의 기본원칙을 존중받을 권리
8조 구제받을 권리
진실과 정의에 대한 권리: 피해자와 그 가족구성원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진실을 구하고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공공당국은 심각한 인권침해의 경우에 조사와 규명과 처벌을 해야 한다.
13조 이전과 거주의 자유
보편적 이동권: 모든 인간의 이주할 권리와 선택한 곳에서 거주할 권리
주거와 거주에 대한 권리: 자신들의 사회적 관계가 있는 곳, 자신에게 중대한 환경 또는 자유롭게 선택한 제3의 곳에서 거주를 유지할 권리
법적 지위가 어떠하건 간에 이주자가 이주한 국가 내에서 효과적으로 보호받고 권리를 존중받을 권리
16조 혼인과 가족보호
개인적 유대를 선택할 권리: 선택한 사람과 정서적으로 결합할 개인의 권리. 모든 유형의 자유롭게 동의한 개인적 유대는 동등한 보호를 받는다.
모든 인간이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공공당국으로부터 가족보호를 받을 권리
18조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모든 사람은 자신의 종교를 제약 없이 행사할 권리를 갖지만 공공영역에서의 모든 개종권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권리, 군대의 모든 구성원이 국제인도법의 원칙과 규범을 위반하는 국내적 및 국제적 무력행동 또는 심각하고 대량으로 체계적으로 인권을 침해할 때는 군사서비스를 거부할 권리
19조 의견과 표현의 자유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권리: 자신이 선택한 어떤 수단으로나 동료 인간과 의사소통할 권리. 이를 위해 모든 사람은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 특히 인터넷에 대한 접근권과 사용권을 갖는다.
21조 참정권
법적 연령의 모든 사람이 국적과 시민권과 무관하게 관습적으로 거주하는 곳에서 행해지는 모든 선거과정과 대중협의에서 능동적·소극적 참정권을 성취할 권리
자기 국가의 통치만이 아니라 지방정부, 다양한 준 공적, 준 사적인 기구 더 나아가 모든 공익의 결정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할 필요
참정권을 국가 내의 자결권의 테두리를 벗어나 세계적 차원으로 실현하는 문제
23조 노동권
보수를 받는 노동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보장하는 가치 있는 활동을 행사할 권리를 노동권에 포함한다.
25조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
마실 물에 대한 권리
전기 등 기본적 에너지에 대한 권리
기아와 극빈을 퇴치할 권리와 의무
기본 소득에 대한 권리: 나이, 성, 성적 지향성, 시민자격, 고용상태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국가 예산으로 지불되는 정규소득
필수의약품을 가질 권리
27조 문화권
다문화성에 대한 권리,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알고 보존하고 발전시킬 권리
선주민의 권리: 선주민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지적, 자연적 자원으로부터 충분히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자신들의 구별된 특성을 인정하는 특별한 조치에 대한 권리
28-29조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
저항의 권리: 직간접적인 외국의 억압(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성격)에 대한 투쟁에서 그러한 억압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정당한 수단을 통해, 그런 투쟁 속에서 국제적 지원을 구하고 받을 권리를 갖는다.
국가와 기타 행위자, 특히 초국적 금융기구와 초국적 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의무를 가지며 이들의 법적 의무는 국경을 넘어선다.
연대민주주의에 대한 권리: 미래 세대의 권리를 발전시키고 방어할 권리
국제 정의에 대한 권리: 유엔의 적절한 기구를 통해, 어디에서 벌어지건 대규모의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방지하는데 필수적인 모든 조치의 채택을 통해 국제사회의 집단적 보호를 받을 권리




인권 이론 모색
‘인간’이라는 ‘사실’과 인간이니까 당연히 권리를 갖는다는 ‘당위’사이에는 비약이 있다. 오늘날에는 자연법이나 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근거로 인권이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하지만 인권이 현실에서 설득력을 갖고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물론 인권이 어떠한 확고한 이론적 기초를 통해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과 인권이 정당성이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권의 기초에 관한 한 어떤 철학 이론도 압도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선언>의 기초자들 역시 인간의 이성과 양심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피하고 세속적인 문서를 만들려 했다.13) 권리 목록(내용)에 대한 합의가 시급한 과제였기 때문이다(따라서 인권에 대한 정의는 물론이고 <선언>에 명시된 많은 권리 목록은 그 정의에 있어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선언> 이후 제정된 국제인권규범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권의 철학적 기초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절대적인 권위의 해석을 찾겠다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다양한 차이들을 관통하는 대화와 인권의 ‘창’을 통해 각 문화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거쳐 인권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확대하자는 것이며 현실에 대한 적용 원리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이는 인권이 다양한 정치공동체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승인돼야 하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의 이론은 기존의 지배적 담론을 대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구체적으론 기존의 발전과 안보담론을 인권담론으로 대체해야만 한다. 물론 전통적 국가안보에 대응한 인간안보 패러다임, 인간의 자력화와 역량강화를 중심으로 한 인간중심의 발전개념 등의 유의미한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경제발전과 안보담론 앞에서 인권은 비현실적이거나 순진한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정치인들은 인권을 최대한 의미 없는 것으로 규정하려 하고, 잠재적·실질적 인권침해자들은 인권개념의 불명료함, 비현실성을 파고든다. 따라서 인권 이론에 대한 철학적 모색과 발전을 통해 인권을 제한, 박탈하는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 담론을 도출해야 한다. 또한 현실에 대한 적용원리와 더불어 창조적 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덧붙이는 말

1) 이후 이 흐름은 국제연맹의 <노예무역 및 노예제도 금지 협약>(1926) 제정으로 이어졌다. 협약의 당사국들은 “잔존하는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식민지와 기타 영토에서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를 폐지”하기로 약속했다. 2) 미셀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 『세계인권사상사』, 도서출판 길, 2005, 302쪽. 3) 1941년 8월 영미공동선언, 1942년 1월의 연합국공동선언, 1943년 11월의 카이로선언, 1945년 2월의 얄타협정, 1945년 7월의 포츠담 선언 등에서 인권존중이 강조되었다. 최영철, “인권의 국제적 보호”, 『인권법』, 아카넷, 2005, 52쪽. 4) 류은숙, 세계인권선언 뜯어보기① 탄생의 역사적 배경과 한계, <인권오름> 제3호(2006. 5. 10) 5) 조효제, “인권운동의 새로운 지평-<세계인권선언>60주년에 부쳐”,2008제주인권회의 6) 미셀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 『세계인권사상사』, 도서출판 길, 2005, 372쪽. 7) 유엔 회원국 58개국 중 아메리카 21개국(36%), 유럽 16개국(27%), 아시아 14개국(24%), 아프리카 4개국(6%), 남태평양제도 3개국(5%) 8) Maurice Cranston, “Human Rights, Real and Supposed”, Patric Hayden eds, The philosophy of human rights, Paragon House, 2001, p163-173. 9) <선언>의 국가중심주의를 극복한다는 것이 인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10) 비국가행위자는 초국적 기업은 물론 테러집단, 무장저항세력, 국제기구, 지식공동체, 종교·노동·인권단체 등이 포괄된다. 11) 장은주, 『생존에서 존엄으로』, 나남, 2007, 286쪽. 12) Barcelona Draft Chater of Emerging Human Rights: Human Rights in a Globalised World, source: Richard Falk, Hilal Elverand and Lisa Hajjar eds, Human Rights: Critical Concepts in Political Science, Routledge, Vol V, 2008, p.181-198 13) 물론 이는 ‘하나’의 공통된 철학적 기초가 없다는 것이지, 전무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언>에는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 자유주의적 자연권 사상, 사회주의 사상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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