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제가 여기 있습니다, 대답하기 쉽지 않다”

문정현 신부의 고뇌

신부님과 참으로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같이 보냈다. 지난 12월 19일 나는 신부님의 일터인 ‘군산 미군기지 피해상담소’에서 잠을 잤고, 그리고 다음날에는 신부님과 서울에 와서 내내 같이 있었고, 신부님이 집전하는 시국미사에 온전히 참가했고, 용산역에서 익산 가는 KTX 개찰구로 들어가시는 뒷모습을 보았다.


논산에 강연이 있어서 내려가는 길에 연락을 드렸더니 논산에 직접 차를 몰아서 나를 데려갔다. 신부님과 이런저런 밀린 얘기를 하려 했지만 고단하셨는지 차에서부터 주무시더니 급기야는 술상을 차리기도 전에 식탁 옆에서 코를 고셨다. 다음날에는 거실에서 자는 나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방에서 두 시간여를 꼬박 기다려주시며, 혼자 미사를 드리고, 붓글씨를 쓰셨다고 한다. 그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자한 모습의 신부님을 뵙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대중 앞에 서시면 누구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선동꾼이 되고, 경찰 앞에 서면 30년 넘게 짚어온 지팡이로 욕과 함께 폭행을 일삼는 ‘깡패신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2008년 12월 20일, 그날의 스물여섯 번째 촛불시국미사는 신부님이 집전하셨다. 신부님은 촛불시국미사 강론에서 많은 말씀을 하셨다. 기륭전자, 강남성모병원, 대학비정규교수노조를 손님으로 초대해서 진행한 강론에서 그들의 ‘해방’을 기원해주셨다.


“1990년대 초반인데 명동성당에서 전노협 위원장이 수배를 피해 성모동산에 들어와 있었어요. 성당 주임신부님은 어떻게든 빨리 내보내려고 하고, 나는 그들 농성을 도와주려고 하고. 그때가 성탄 무렵이었는데, 성당에서 말구유 장식을 어느 때보다도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단 말이지. 그러다 보니까 이게 아기 예수가 너무 커 버렸어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지요. 예수님이 어디로 오실까 하고 말이죠. 틀림없이 수배 받는 전노협 노동자들에게 먼저 오시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강론에서도 실천을 강조하셨다. 전교조 교사들이 해직된 것을 아파하면서도 전교사 교사 중에 펀드한 사람의 얘기를 예로 들면서 “신자유주의적 삶에 편승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질타했다.


“성경 4복음서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훌륭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고뇌와 피땀이 어우러진 길 앞에서, 우리는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흔쾌히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군산에서 올라오는 중에도 이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로 소통하고, 공유하고, 끊임없이 낮아질 것을 주문하셨다. 대중들 속에서 아파하고, 끊임없이 낮아지는 가운데 새로운 상의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하셨다.


미사를 마치신 신부님은 서울시교육청 앞 촛불집회에 참석하셔서 격려를 하시고는 이내 용산역으로 향하셨다. 인혁당 때 다친 무릎 연골은 회복될 리 없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걸음걸이도 갈수록 시원찮다. 불안하게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걸음걸이랄까. 마지막 용산역에서 배웅할 때 그 뒷모습이 쓸쓸한 잔상으로 남았다.


그분이 힘든 몸을 이끌고 나서지 않아도 되는 세월이 올까, 늘 신부님께 미안하기만 하다.



인터뷰-박래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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