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특집] 에너지 민주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

‘Q드럼’이라는 물건이 있다. 원통형으로 가운데가 빈 플라스틱 재질의 물통으로 줄을 묶어 굴리면서 끌도록 만든 것이다. 아주 단순한 설계지만 먼 거리를 힘겹게 물동이를 져 나르던 아프리카 사람들의 생활은 가히 혁명적으로 바뀌었을 터다.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이라고 설명되는 ‘적정기술’의 대표적 사례다. 사실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편의들은 고도의 기술력이나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태양광 조리기나 자전거 발전기도 그렇다. 필요한 에너지만큼을 필요한 곳에서 만들어낸다. 투자비도 크게 들지 않고 위험할 여지도 별로 없다. 이에 비해 핵에너지는 ‘거대기술’이다. ‘적정기술’과 비교한다면 ‘과잉기술’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서 보듯이 정말이지 ‘위험기술’이다.


핵 발전의 위험성은 이제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발전소 방식이 후쿠시마와 같은 비등경수로(BWR)인지, 한국과 같은 가압경수로(PWR)인지, 한반도에 편서풍이 계속 부는지 가끔 동풍도 부는지, 쓰나미가 10m 높이로 오는지 15m 높이로 오는지 하는 이야기는 본질이 아니다. 핵분열을 원리로 하는 발전은 인간이 각종 첨단장치와 안전수칙을 가지고 조심스레 통제해야 할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점, 그리고 발전 과정과 종료 후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치명적인 방사능을 방출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 핵 발전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민간 발전사들은 수익성과 안전성 확보 부담으로 진입을 꺼려했고 각국 정부는 막대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시행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어떤 핵발전소를 어디에 어떻게 건설하고 운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과학자, 정치인, 기업가의 손에 맡겨져 왔다. 일반인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들을 거드는 전문가와 언론이 있다.


반핵론자들은 이러한 이들의 행태를 두고 ‘원자력 마피아’, ‘원자력 카르텔’이라 부른다. 그러나 핵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폐기물의 방사선에 피해를 입는 이들은 이 카르텔 외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1979년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 때 대피한 수십만 명의 시민들과 피폭당한 노동자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진압에 투입되었던 군인과 노동자들, 한국의 안면도, 굴업도, 위도에서 방폐장 건설 시도에 맞섰던 주민들 모두가 그렇다.


미국과 구소련, 한국의 정부가 유독 관료적이고 독재적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핵 발전이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기술이 가질 수밖에 없는 불투명성과 비민주성이 바탕에 있는 탓이다. 핵 발전은 한 기가 최소 수십만 메가와트 이상 되는 막대한 출력을 가지며 핵분열 속도를 조절하기 어려운 탓에 일단 핵 연료봉이 들어가면 출력을 바꾸기도 어렵다. 또한 아무리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군사무기 이용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원자력 전문가들 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왔다.



핵 발전의 비민주성과 불공정성


핵 발전이 갖는 비민주성은 공간적 불공정성도 낳는다. 한국의 핵 발전 단지는 부산 고리, 월성, 울진, 영광의 네 곳이다. 이 단지들이 입지한 곳은 하나 같이 냉각수를 얻기 쉽고 지질이 안정적이며 주민의 반발이 적은 외진 바닷가들이다. 그러나 고출력의 핵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를 사용하는 곳은 수십 수백 킬로미터 바깥의 인구와 산업 밀집 지역들이다. 서울의 경우 전력 자급률은 1.9%에 불과한데 경북은 189.4%, 충남은 333.9%에 이른다. 경북의 핵발전소와 충남의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고압 송전선을 타고 수도권까지 오기 때문이다. 전력을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생산을 결정하는 이들과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이들 사이가 완전히 나뉘어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전력을 많이 쓰는 수도권 주민들이 비난받아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의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15년 단위로 작성된다. 왜냐하면 핵발전소 한 개를 건설하는데 드는 시간이 사전 조사와 건설, 시험가동까지 포함하여 10~15년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15년 이후의 전력 수요와 핵 발전 비율을 결정하면 국민들은 그에 따라 전기를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만큼 전기 수요가 늘어났으므로 계속 핵 발전을 증설하게 된다.


한국에서 핵 발전 비율이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또는 줄일 필요가 있는지 하는 것은 각 지역의 국민들에게도, 심지어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도 무관한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십여 기 더 건설하여 한국의 핵 발전 비중을 59%까지 늘리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참여한 국민들은 전혀 없었고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조차 개입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올 6월까지 결정하겠다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예정부지 선정에 신청서를 낸 삼척, 울진, 영덕의 주민들에게 주민투표라는 참여 기회를 주었다면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상황은 핵 발전이나 대규모 화력발전과 같은 중앙집중형 에너지 수급 시스템에서는 불가피하다. 게다가 먼 곳으로 고압송전을 하다 보니 실제 소비자가 이용하는 전력은 발전으로 나온 양의 40%에 불과할 정도로 효율도 떨어진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지역분산형 시스템, 즉 그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그 지역에서 만들어 쓰는 방식이다.


이러한 지역분산형 시스템에 적절한 것이 대표적으로 재생가능 에너지 방식들이다. 동네 학교와 집 지붕에 얹는 태양광 발전 패널, 중소형 풍력 터빈, 지열과 바이오가스, 하천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소수력 발전들이다. 이들은 거대하고 위험한 기술이 아니고 지역주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절약하는 방식까지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에너지 효율에서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고용까지 창출할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 같은 민폐를 끼치지도 않는 방식들이다.


물론 재생가능 에너지라고 모두 지역분산형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강화도와 가로림만의 조력발전소, 갯벌과 산야를 파헤치며 조성하는 대규모 태양광과 풍력 단지들은 주민들의 참여도, 지역 내의 수급도 보장되지 않는 비민주적이고 위험한 규모의 기술 시설이 된다.


에너지 민주주의가 정치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으며 지역 수준의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 확산이 관건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구호가 “동네 에너지가 희망이다”라는 것이다. 당장 현재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동네의 재생가능 에너지로 대체할 수는 없더라도 중앙정부만 쳐다볼 게 아니라 지역 수준에서 에너지 전환을 이루는 만큼 위험기술과 전문가주의의 비민주성을 줄이고 탈핵/탈화석에너지 사회를 앞당길 수 있다는 희망이다.


동네 에너지는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영국 토트네스의 에너지 전환 마을, 독일 운데의 바이오에너지 마을 같은 해외의 사례가 소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안 등룡마을과 변산 공동체, 홍성의 에너지전환, 산청의 대안기술센터가 한국판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안과 시민합의회의의 교훈


지난 2004년의 두 풍경을 통해 에너지 정책에서 국민 또는 지역민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2004년은 최근 공동체 상영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는 이강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야만의 무기>에서 생생히 전해지는 ‘부안 항쟁’이 일단락된 해였다.


2003년 부안군의 작은 섬 위도에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가 추진되면서 시작된 이 항쟁은 군민 7만여 명의 대다수가 사실상 생업을 접고 나선 사건이었다. 문정현, 문규현 신부가 늘 앞자리를 지켰지만 환경단체들, 노동단체들, 지역 주민들이 이 투쟁에 동참했다. 비가 와도, 삼복의 땡볕이 내리쬐어도 군청 앞 ‘반핵민주광장’의 촛불은 계속되었다.


2003년 7월 11일, 부안군수가 독단적으로 유치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 항쟁은 7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의 불법시위 엄중대처 발언과 함께 열린 부안군민 1만인 대회에서 주민 1만 명과 경찰 8천명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급격히 고조되었다. 다음날 대통령은 군수에게 격려 전화를 하고 부안은 흡사 계엄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듬 해 2월 주민들은 법적 효력이 없는 주민투표까지 자체 실시했고, 70%라는 높은 투표율에 유치 반대가 93%에 이를 정도로 부안군에 방폐장을 설치하기란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러나 방폐장 건설 시도가 중단된 것은 아니었는데 상황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위도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어 방폐장 건설이 불가능하다고 판명 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안항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이후 군산과 경주 등이 방폐장 유치를 위해 찬성 주민투표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던 것까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바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존재는 무엇으로 취급당했는지를 상기해 본다. 국가적으로 이 만큼의 전력이 더 필요하고 방폐물 폐기장은 어딘가에 필요한데 이를 거부하는 지역민들은 님비(NYMBY)의 주범이거나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떼꾼이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전력과 그만큼의 폐기물 처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역민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 바는 없었다. 핵 발전으로 만들어진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도권 주민과 에너지 다소비 업체들이 지역민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너희들도 전기 안 쓰고 살 수 있냐”는 힐난은 이들 지역민들의 가슴을 후비는 상처로 남았다. 부안의 에너지 자립마을 실험이 시작된 것도 그에 대한 응답 중 하나였다.


2004년의 또 다른 풍경은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다. 부안항쟁이 끝을 향해 가고 있을 즈음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소장 김동광)는 외국의 정책 시민배심원 제도를 모델로 하여 핵 발전 정책의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 도출을 시도했다. 핵 발전 정책과 산업의 이해와 무관한 다양한 연령대의 ‘보통시민’ 18명이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민패널로 모집되었다. 이들은 3개월 동안 예비모임과 본 모임을 통해 핵 발전에 대해 찬반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청취하고 집중 토론을 벌였다.


그해 10월, 3박4일 간의 집중토론을 통해 보고서가 마련되었다. 향후 핵 발전 정책에 대해 1안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거한 핵발전소 추가 건설, 2안 국민의 동의를 얻어 제한적 추가건설 허용, 3안 신규건설 중지라는 세 개의 선택지가 투표에 붙여진 결과 3안이 12명, 2안이 4명의 찬성을 얻었다. 핵 발전을 당장 다른 전력원으로 대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회의적이지만 현재와 같은 핵 발전 중심의 전력정책을 이어나가는 한 핵 발전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는 더 힘들어진다는 것에 다수의 시민패널이 공감한 것이다.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면서 재생에너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을 덧붙였다.


이 기특한 회의와 결정 내용은 금세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져갔지만, 그리고 정부와 전력업계도 이 회의의 주문을 무시하고 말았지만, 지금 필요한 사회적 논의의 기본틀도 결국 이 사례 속에 있다. 거대한 위험기술, 막대한 에너지 수요, 국제 시장에서의 생존 필요성은 에너지 독재로, 일방적 정책 결정과 집행으로, 그리고 핵 발전에 대한 엄청난 선전과 회유로 우리에게 강요된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 속의 온갖 정치적 억압과 환경 훼손은 ‘모두’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포장된다. 에너지 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 묵인하는 것은 민주주의 파괴를 묵인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법, 결정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에너지 민주주의 실현, 나아가 녹색사회 전환과 정치과정 변화와 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너지와 정치를 모두 바꾸는 이 긴 투쟁에서 동네 에너지를 매개로 한 풀뿌리 수준의 활동은 가장 큰 뒷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