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당에 후원을 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교사를 추가로 수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때는 지난 13일. 광주와 경기 등 지방검찰청이 시‧도교육청과 해당 학교에 공무원인사기록카드 사본 송부를 요청하는 수사협조 의뢰 공문을 보낸 것이다.
사실상 ‘무죄’ 판결 사안 대상 바꿔 또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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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공문에서 “수사 중인 정치자금법 위반 등 피내사사건과 관련해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2항에 의거, 대상자에 대한 사본을 최대한 신속히 송부해 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적사항, 관련사항, 근무경력사항(현재‧이전 근무처, 근무처 별 재직사항 포함), 징계 관련 사항은 반드시 표기’하라고 했다.
16일 오전 현재 전교조가 파악한 인사기록카드 제출 대상자는 1400여명에 달한다. 서울이 196명으로 가장 많고 광주 150명, 경남과 충남 각 120명 등으로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악되는 명단이 추가되고 있어 수사 대상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검찰이 계좌추적을 마치고 신원을 최종 확인하는 차원에서 공문을 보낸 것으로 보고 수사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교사들이 전화로 검찰 출석을 요구받았다.
검찰이 지난 해 5월 같은 혐의로 189명을 기소한 사안이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원은 지난 1월 판결에서 “당원 증거가 없다”고 사실상 무죄를 내렸다. 정치자금법 위반과 관련해서도 “후원금이 많지 않고 후원제도가 바뀌었다는 점을 몰랐다”며 30~50만원의 비교적 가벼운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 사안을 대상만 바꿔 수사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지난 14일 학교에서 팩스로 공문을 확인했다는 서울의 한 교사는 “황당하다. 법률적으로 판단이 끝난 것이다. 검찰이 억울하면 항소심을 잘 준비해야 되지 않나. 그런데 다시 무리하게 수사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찰이 추가로 수사를 진행하는 배경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검찰이 민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높아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본부(중수부) 폐지 여론에 몰리는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중수부 폐지 물타기? 전교조 집중 투쟁 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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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가 수사는 대검찰청 공안부에서 직접 지시해 각 지역 지방검찰청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지난 6일 “수사로 말하겠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밤 학교장에게 검찰 공문 왔다는 얘기를 전화로 들었다는 경남의 한 교사는 “정말 놀랐다. 가슴이 벌렁거리더라. 이명박 정부는 정말 사람을 힘들게 한다”면서 “수사로 말하겠다는 게 지난 사안을 확대해 또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반값등록금 요구가 폭발하는 가운데 전교조가 대정부 집중 투쟁에 나서는 것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이 학교로 공문을 보낸 날은 13일. 공교롭게도 전교조가 집중 투쟁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여는 하루 전이었다.
전교조는 현재 ▲조건 없이 반값 대학등록금, 무상 급식 실시 ▲일제고사·교원성과급제도 폐지, 2009개정교육과정 시행 중단 ▲진보교육감에 대한 배타적 행위와 정책 간섭 중단을 핵심적으로 요구하며 청와대 분수대 앞 1인 농성과 광화문 앞 1인 시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장관호 전교조 정책실장은 “이명박 정부 말기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교육부분에서 거세지는 반발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전교조를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이 정치적 자유를 행사하는 움직임에 손발을 묶는 일환이라는 데 해석에도 무게감이 실린다.
내년 선거 앞두고 ‘정치적 자유’ 단속
지난 해 부터 진행한 노동조합의 소액정치후원금에 대해 검찰이 지난 5월20일 KDB생명과 LIG손해보험노조를 압수수색한데 이어 지난 3일 전국보건의료노조와 전국사무금융연맹 등 누리집 서버관리업체도 압수수색한 탓이다. 심지어 검찰은 민주노총 서버와 사무실 압수수색도 염두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세력이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합의문을 발표한 것도 검찰의 노동조합 정치후원금 때리기에 일정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3권의 완전 보장과 노사관계 민주화를 주요 정책 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백승우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은 “지난 해 6월과 올 4월 결과에서 보듯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불안하면서 또 다시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추가 수사의 근거 자료도 문제다. 검찰 쪽이 밝힌 이번 수사의 기초는 지난 2009년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 당시 진행한 압수수색물이다. 그런데 이를 다른 사건인 정당 후원과 관련한 수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 해 검찰이 기소할 때도 별건 수사 논란이 일었다. 이에 법원은 지난 해 11월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압수수색 자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압수수색 대상물을 2009년 6월18일 시국선언과 관련된 것으로 제한했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오는 17일 야4당과 함께 오전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을 규탄하며 대응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박효진 전교조 사무처장은 “명백히 정권 차원에서 기획된 전교조 탄압”이라며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와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