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지평선이 누워 있는 김제 벽골제

나는 김제에 사는 스쿠터 라이더다. 여행을 즐기지 않는 게으른 라이더다. 하지만 학교가 감옥 같을 때, 스쿠터를 타고 나간다. 시내에서 남쪽 4km 정도에 갑자기 공기가 상쾌해지는 경계선이 있다. 나에게 여행은 이런 해방을 주는 것이다.

 



작년에 해방을 주는 새로운 지점을 찾았다. 아리랑문학관과 지평선축제 때 본 벽골제다. 나의 경계선 너머 3km 정도에 위치한 벽골제, 그 안엔 장생거라는 현존 최고(最古)의 수문이 있고, 뒤편 둑길엔 지평선이 누워있다.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가 말했듯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지평선은 고요하고 적막하여 좋다. 끝없는 논의 행렬은 풍요와 여유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라 해도 좋다. 해방감은 크다 못해 광대하다. 발길을 돌려 벽천 미술관에 가면 나상목의 독특한 산수화를 볼 수 있다. 평야에는 없는 산수를 실내에서 감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재밌다. 들은 바로는 바로 옆 명인학당의 선비문화체험과, 농경사주제관 및 체험관도 좋은 학습의 장이라 한다.

 

해방감에 들뜬 기분으로 길 건너 아리랑 문학관으로 가는 것도 좋다. 대개는 문학관만 보고 돌아가는 일이 많으나, 창작 스튜디오에 들러보길 권한다. 이곳은 요일별로 도자기공예, 목공예, 서예·문인화, 한국화, 천연염색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이한 점은 현역 작가들이 작품 활동과 동시에 체험활동을 직접 지도한다는 것이다. 도자기 담당인 토광 장동국 씨는 학생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 매년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는 작가이면서 분명 좋은 교사다. 수업의 실패의 원인을 학생에게서 찾지 않는 반듯한 교사다. 아리랑 문학관에 들어서면 나는 조정래 작가의 말이 먼저 떠오른다. 김제와 군산을 잇는 전군도로는 김제의 쌀을 실어내기 위해 만든 끔찍한 수탈의 도로라는 말이. 풍요로워서 설운 땅이 바로 김제라는 말이. 학교는 어떤가? 이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수탈하는 자는 누구인가? 수탈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벚꽃놀이에 흥겨운 이들은 현실의 수탈을 바로 볼 수 있는가? 아리랑 문학관에는 작가의 육필 원고가 탑처럼 장엄하게 서있다. 그는 노동자의 작업과 같이 규칙적 노동으로 그 탑을 쌓았다. 그 탑은 노동의 화석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연재를 마친다는 것은 글 감옥에서 가석방된 것이라고 했다. 치열한 글쓰기의 현장이었던 작가의 방을 재현한 전시물은 명령한다. 너의 감옥은 학교다. 치열한 가르침이 너의 노동이다.

 

문학관을 나오면서 기꺼이 학교라는 감옥에 돌아갈 이유를 깨닫는다. 스쿠터를 타고 다시 혼탁한 공기와 만나는 경계선에서 감옥에서의 해방을 위해 나는 다시 시작한다.  
태그

여행 , 김제 , 스쿠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고영주 현장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