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일제고사에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지난 4월 학교로 돌아간 교사들을 만났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7일 연 전체회의에서 MBC-AM ‘박혜진이 만난 사람’에 대해 ‘주의’ 조치를 했다. 방송심의에관한규정 제9조2항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징계조치 가운데 ‘주의’는 중징계로 재허가 심사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박혜진 아나운서가 특정 인물을 만나 매일 오전 11시45부터 30분 동안 인터뷰하는 내용을 방송하고 있다. 방통심의위가 문제를 삼은 방송은 지난 4월11일자. 당시 내용은 일제고사와 관련해 해직됐다가 복직한 박수영 서울 거원초 교사와 김윤주 서울 구로남초 교사와의 인터뷰 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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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방송에서 이들 교사는 “일제고사를 거부했던 건 아니고 그 시험에 대한 응시 여부를 물어봤다”, “위법한 행위를 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방통심의위는 이에 대해 “시험 응시 선택권을 부여했다기보다 시험에 응시하지 않도록 사실상 유도하는 행동이었고”, “해임 조치가 과한 것일 뿐 위법행위가 명백한데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일방의 주장을 방송했다”고 봤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해 11월에도 KTX여승원과 인터뷰를 한 이 프로그램에 대해 공정성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권고’ 조치를 한 바 있다.
프로그램 연출을 하는 김현수 MBC PD는 전화통화에서 “유감스럽다”면서 “시사프로램도 아니고 특정 사안을 해당하는 인물이 출연해 얘기를 들어봤는데 여기에도 공정성 잣대를 들이대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방통심의위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방송에 출연했던 교사들은 황당해 했다. 박수영 교사는 “이럴 수가 있나”라고 허탈해 하며 “누가 봐도 언론의 자유를 무참히 짓밟는 것으로 권력 앞에 방송을 무릎 꿇게 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청취자들은 해당 프로그램 누리집-청취자 한 마디(www.imbc.com/broad/radio/fm/interview/meet/index.html)에서 방통심의위를 성토했다.
부산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한 글쓴이는 “이 프로로 아직은 사람 냄새나는 세상,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징계라니요. 어이가 없다”면서 “아직도 이런 편협적인 사고와 시선으로 방송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통심의위의 역할과 수준에 대해 회의가 생긴다”고 밝혔다.
또 다른 글쓴이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로 법적 정리된 사항에 대한 주의 결정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입장”이라며 “법치국가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청취자에게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제고사 강행 교과부 인사 인터뷰해도 ‘주의’ 줄 껀가
방송 관련 시민, 사회단체도 성명서로 “상식 밖의 징계”라고 했다. 한국PD연합회는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방송했다고 문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누구를 인터뷰 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만일 ‘일제고사’를 강행하는 교과부의 인사를 인터뷰한다면 방통심의위는 이 또한 ‘주의’라는 중징계를 줄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공안검사 출신 박만 위원장이 PD에게 재갈을 물렸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방통심의위가 방송심의 규정상의 객관성 조항을 얼마나 자의적이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는지 보여준 것”이라며 “법원이 이미 잘못임을 인정한 사안에 대해서조차 50대50비율로 상대측 의견을 넣어야 객관성을 만족한다는 기계론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언론인권센터는 “당사자의 양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으며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사회 현안에 관련된 인물은 섭외하지 않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불러내 ‘토론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내부에서도 무리한 징계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택곤 방통심의위 상임의원은 “시청자의 알권리를 위해 어떤 사람을 인터뷰하고 선택할 것인지를 전적으로 제작진에 자유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면서 “법원 판결 내용의 일부를 빠뜨린 부분은 권고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