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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12일 오전 11시경. 서울 ㅈ초등학교 6학년생인 박성준 학생은 학교가 아닌 서울 대학로 국립서울과학관에 있었다. 일제고사 반대 시민모임과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가 마련한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에 참여한 것이다.
실제 크기로 박제된 바다표범 등을 보면서 동물의 신비로운 몸을 관찰했다. 아들과 함께 서울과학관을 찾은 박은경 씨는 “4학년 방학할 때였다. 학교에서 일제고사 결과에 따라서 방과후 수업을 방학 때 매일 하라고 했다. 아들이 울더라. 영어 시험에서 답을 한 칸씩 밀려 썼다는 거다. 가슴이 먹먹해 졌다. 아들이 방학 때만이라도 꿈을 꾸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방학 때만이라도 꿈 꿨으면”
박성준 학생과 함께 서울과학관을 찾은 학생은 80여명. 오전에 서울의 관악구 등에서 40여명의 초등학생들과 오후에는 경기와 충남 천안, 충북 등에서 40여명의 학생들이 ‘체험학습’으로 서울과학관을 찾았다.
경기 부천에 있는 부인중 3학년인 박예진 학생은 “학기별로 보는 중간․기말고사로도 이미 제 위치가 어디인 지 충분히 알아요.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요. 1년에 4번을 보는 거잖아요”라며 ‘춤을 추는 로봇’에 눈을 돌렸다.
충남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자녀 6명도 이날 체험학습에 함께 했다. 금속노조 유성지회 가족대책위원회 차원에 참가했다. 아이들 손에는 ‘부모는 야간노동, 아이는 0교시․야자, 온가족이 미치겠다’는 패널이 들여 있었다.
김예린 학생(충남 천안 성환초 6학년)도 엄마와 함께 올라왔다. 김예린 학생은 “친구들과 똑같은 시험을 보는 것이 꼭 기계 같아요. 시험 기계. 아무 말하지 말고 시험만 보는 거 같아 인권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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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대구와 광주, 경북 등 전국 11개 시․도에서 체험학습이 진행됐다. 경북에서 39명의 학생들이 경주와 고령, 포항 등의 지역으로 역사문화 답사를 하거나 생태학습을 했다.
광주와 전북에서도 각각 7명과 20명의 초등학생, 중학생이 시민단체가 짠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다.
이날 전교조가 집계한 전국에서 체험학습에 참가한 학생은 256명이었다. 여기에는 일제고사 대상(초6, 중3, 고2) 학년인 아닌 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서울 금호초 3학년1반 24명의 학생들도 체험학습에 참여했다. 담임인 박세영 교사는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뜻에서 학부모들에게 동의를 받고 함께 왔다”고 말했다.
“우리 인생을 숫자로 규정짓지 마세요” | ||
일제고사를 본 학생들의 ‘큰’ 목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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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의 무단결석, 무단결과 등의 지침으로 부득이하게 시험을 봐야 했지만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다시 확인됐다. 서울 경인고 2학년 학생들이 지난 8일 적은 일제고사에 대한 짧은 생각에는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대로 옯겨 본다. “우리들의 인생을 숫자로 규정짓지 마라. 이제 그만! 우리에게 요구하지 마라.” “선생님, 일제고사에 반대해요. 작년에 일제고사에 반대하다 징계를 받은 교사의 뉴스를 보고 화를 낸 적도 있고요. 선생님이 옳다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뒤에서 선생님을 응원할께요!!” “솔직히 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학업능력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제고사라고 불리는 시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정해지는 학교의 등급을 거부하는 것이다. 교육은 못하는 학생을 감싸고, 더 나은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하는 데 단지 등급으로 학생의 기회를 없앤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제고사나 학력평가가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높여 대학입시에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교육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산 낭비가 너무 심하므로 그 수가 적더라도 선택형으로 보고 싶은 사람만 시험을 봤으면 좋겠다.” “비교한다고 모두가 경쟁하고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일제고사 보는 날에 수업진도 빼서 더 많은 지식을 배우는 게 좋은 듯하네요. 사람은 심리적으로도 비교하고 더 강제로 시키면 하기 싫고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거 아닌가요, ‘일제고사’ 없어져야 합니다.” “내가 ‘우수’인지 ‘보통’인지 ‘미달’인지 궁금해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으로 나를 평가하길 바라는 게 아니예요. 그냥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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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프로그램 금지 하니 체험학습 늘어
교과부가 파악한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은 학생은 187명이었다. 무단결석으로 처리한 학생이 136명이고 무단결과로 처리한 학생이 51명이다. 이 가운데 무단결석 학생은 지난 해 87명보다 50여명이 늘었다.
이는 지난해 전북과 강원, 서울 지역에서 보장했던 일제고사 대체프로그램이 교과부의 금지 지침으로 사실상 어렵게 되자 시험을 거부 의사가 있는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올해 등교는 했지만 시험을 보지 않은 학생(무단결과)은 지난 해 349명(7월13일)보다 1/7로 줄었다.
이병우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제고사는 아동학대”라면서 “곽노현과 김상곤 교육감이 인권에 관심이 많은데도 교과부의 지침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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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교과부 앞 1인 시위와 규탄 집회로 일제고사를 반대했다. 이날 오전 10시20분 경 교과부가 입주해 있는 정부중앙청사 후문에는 30여명의 교사가 각자 패널을 들고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해당 학년 담임이 아닌 교사들이 연가 등을 사용해 1인 시위에 나선 것이다.
오세연 충남 천안 동방초 교사는 비바람에도 우산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몸에는 ‘일제go死, 교육 죽이는 쥐약, 판매금지’라는 글귀가 적힌 A4용지를 붙였다. 오세연 교사는 “아이들의 미래가 시험에 죽어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 반대를 말로만 해서는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제go死, 교육 죽이는 쥐약, 판매금지
이날 오후 교과부 후문에서 열린 일제고사 폐지 교육주체 결의대회에는 100여명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학업능력의 향상은 반복적인 문제풀이와 획일적인 일제고사로 이뤄지지 않는다. 진정 무엇이 부족한지 제대로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생과 학생간의 소통과 협력”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교사 충원 등 교육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말로는 선언만으로는 결코 일제고사를 폐기시킬 수 없음이 확인됐다. 일제고사 폐지의 그날까지, 공교육 실현의 그날까지 결코 흔들림 없이 전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