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특별기고] 활짝 피어라, 사람 꽃!

도가니 열풍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 시발점은 바로 2005년 6월 광주였다. 정확히 말하면 1960년 인화학교 설립 때 시작한 광풍이 6년 전에야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아이들을 처음 본 것은 실로암사람들에서 개최하는 여름과 겨울의 장애인 캠프를 통해서였다. 청각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은 유독 예쁘고 귀여워서 참가자들 가운데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수화를 한마디도 하지 못한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해야 했다. 그러다 수화를 배워야겠다는 개인적 목표를 세웠고, 2년 반 만에 공인 수화통역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수화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과 같다.

그해 여름, 피해자들을 만났다. 놀랍게도 내가 잘 알고 만났던 아이들이었다. 내 아이들 또래도 있었다. 그때 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이 아이들이 부모처럼 믿고 따르던 선생님과 보육사가 성폭력 범죄자로 돌변하였을 때 아이들 곁에는 이들을 보호할 책임 있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던 아이들이 대책위 어른들에게 안겨왔다. 우리들은 스스로 약속했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나쁜 어른들을 반드시 큰 벌을 주겠노라고, 그리고 결코 다시는 이 손을 놓지 않겠노라고…….

2005년 6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에도 여학생 그룹홈(2006년 9월), 남학생 그룹홈(2007년 2월)이 만들어지기까지 피해자들은 15~20개월을 지옥 같은 인화원에서 가해자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 갈 곳이 없어서였다. 그 사이 가해자로부터 협박도 받고, 선배들로부터 린치도 당했지만 인화원 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시청과 구청, 교육청 그 어디에서도 이 아이들을 책임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살 집을 마련하는 것도 고스란히 대책위에 참여한 어른들의 몫이 되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아이들은 철저히 국가의 사회보장 시스템에서 배제되었다. 성폭력의 아픔과 생존권의 위험 속에서 4년여를 견뎌야 했다. 2010년에야 한 시의원의 도움으로 정부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그룹홈의 3분의 2수준이었다.

그 사이 이 아이들은 대부분 일반학교 특수학급으로 전학을 했고, 6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맙게도 비교적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철없던 녀석들이 첫 월급을 타오던 날에 후배들을 위해 통닭을 사고, 선생님들께 선물도 했다. 취업을 하고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날의 상처와 아픔으로 아직 아무 일도 못하고 지내는 청년들도 있다. 이들에게 세상은 아직 무섭고 잔인한 곳이다.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홀더카페다. 홀더란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들이 살고 있는 그룹홈과 공부방 이름이다.

도가니 열풍은 인화학교 성폭력 문제를 넘어서 이제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과 사회복지시설의 투명한 운영, 아동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양형 기준 마련, 청각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항거불능 인정, 청각장애인 교육권 보장 등 장애인 인권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사회정책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교육은 장애인에게 생명과도 같다. 인화학교를 다니다가 성폭력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학교장으로부터 패륜아로 검찰에 고소당한 청각장애학생들이 2008년에 '꿈의 농학교'란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은 청각장애 학생들이 다녔던 인화학교와 이들이 꿈꾸는 학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농학교의 선생님들은 대부분은 건청인들이다. 심지어 20년째 농아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수화로 학생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다. 농학생들은 수화를 못하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수업에 흥미가 없고 지루해 한다.

농학생들이 원하는 학교는 특별하지 않다. 자신들의 모국어인 수화로 대화하고, 수업의 내용을 전달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직도 꿈이다. 인화학교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광주공동체를 통해서 사람의(人)의 꽃(花)으로 활짝 피어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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