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아름다운 뒤끝을 꿈꾸며

학생 스스로 준비하는 학생의 날

"11월 3일이 무슨 날이지?"

학생들에게 묻는다. "글쎄요?" 수업 시간에 광주학생항일운동(1929)을 배웠을 법한데 잘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1984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지만 대부분 모른다. 정부 차원의 행사는 거의 없고 학교 차원은 커녕, 단위 학교 조합원들 중심으로 교실에서 간단히 행사를 치른 수준이다.

2005년, 2006년 천안에서는 지역의 평준화 문제와 맞물려 전교조와 학부모 단체가 행사를 주도했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왔다. 워낙 지역에 학생을 위한 행사가 없다보니 위력이 컸다. 그런데 행사를 치루면 그걸로 끝이다. 학생들은 구경을 하루 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어른들이 판을 벌여놓고 아이들이 와서 하루 놀다 간 것이다. 학생들은 주체가 되지 못하는가? 어른들도 이런 행사 한 번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다시는 실무를 맡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2007년에는 행사를 못했다.

2008년 지회 참실을 맡게 되자, 새로운 접근을 하고 싶었다. 학생의 날 주체는 바로 학생이다. 그들은 현재의 주인공이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하는 온전한 시민이다. (이런 고민은 '청소년, 세상을 날다' 룙2009 참교육 음반 수록룚 라는 노래에도 잘 표현되어 있다) 그 해는 촛불소녀들이 청계천에서 광우병 파동을 먼저 말하던 때로, 청소년이 사회 참여의 주체임을 만방에 보여주었다.

당시 천안 지역에는 고교회장단 모임이 친목 모임 수준으로 있었다. 학생의 날 행사를 제안하니, 뜻밖에 회장단이 "그 동안 학생의 날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당연히 주최하고 싶다. 처음이니 어른들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이후에 역량이 축적되면 학생 주최로 하고 싶다"고 호응했다.

결국 교사, 학생, 시민사회 공동추진위원회 형식이 되었다. 9월 중순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회장단과 회의를 했다. 실무 책임을 맡은 나로서는 걱정이 앞섰지만, 학교 축제를 진행해 본 회장단에게는 오히려 큰 일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세부적인 실무 조직을 구성하여 '문자 홍보, 플래시몹'등 새로운 방식으로 홍보도 한다. 다양한 마당을 만들다 보니 자연히 행사 참가자도 늘어나게 되고 억지 동원을 할 필요도 없었다.

크게 '체험과 참여마당, 기념식마당, 공연마당'의 형식으로 이뤄진 행사가 성대하게 끝났다. 자신들의 문화를 표현할 공간이 없어 고민하던 많은 동아리들에게 무대를 열어 준 것은 대단한 것이었고, 기념식 중에 청소년 신문고 형식으로 청소년이 직접 정책 건의를 하자 부시장이 나와서 즉석에서 답변을 하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행사 마지막에 회장단이 올라와서 '청소년이 주체다'라는 내용의 상황극을 표현할 때 그것은 감동 그 자체였다. 회장단에게 지역 청소년 문화를 만들기 위해 후속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흔쾌히 동의한다. 행사 이후에도 MT도 가고 지역 청소년 정책에 대해 토론도 하였다. 행사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뒤끝 있는 모임"이 중요하다.

2009년에는 청소년이 주도권을 더 갖도록 노력하고 전교조는 지원 체계로 나가려고 노력했다. 당시 신종 플루로 인해 야외행사가 불가능하여 대부분 사이버 한마당으로 진행하여 규모나 열기는 덜했지만 그들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소통을 주제로 유일하게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했던 토론한마당 행사의 경우 학생들이 직접 홍세화 선생님을 섭외하여 모셔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자기들이 주체이다 보니 판도 멋지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 당시 행사를 준비했던 학생들은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2010년 행사에서는 개인 사정상 부분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지역의 전통으로 형성된 학생의 날 행사는 예년과 같이 풍성하고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고민꺼리는 있었다. 지역 상황으로 인해 '고교 평준화 실현'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는데 고교 평준화 문제가 학교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보니 회장단모임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학생 주체론이 약간 주춤하게 되고 어른 중심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었다. 행사는 나름 잘 끝났지만 행사 후 뿔뿔이 흩어져서 아쉬웠다.

올해도 고교회장단 모임과 전교조가 중심으로 공동추진위원회 형식으로 준비 중이다.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슬로건이나 프로그램 기획 과정에서 학생 주체론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중이다. 물론 그러다보니 슬로건이 지나치게 비정치적이어서 학생의 날 행사의 정체성 고민도 생기기도 하고 학생들 여건상 시간이 부족하여 여전히 실무적인 부분은 어른들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재정 부담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생의 날 정체성은 교사가 지도해야 할 몫이 아니라 최소한의 역사 지식은 가르쳐주되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성인이 지원해야 될 부분은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전교조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보며 지켜보고 싶다.

올해는 행사 후 다시 아름다운 뒤끝 모임이 만들어져서 지역의 청소년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있는 주체 역량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교조가 지역의 청소년 모임과 연계하여 지역의 청소년 문화와 정책의 일꾼을 자연스럽게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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