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위헌의 결정판, 광화문 광장조례를 고발한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8월2호 특집기사 ②

 

위헌의 결정판, 광화문 광장조례를 고발한다

 

 

류제성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화문 광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광화문 광장을 직접 가본 적은 물론 보도를 통해서도 본적이 없다. TV를 통해 광화문 광장의 모습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그처럼 광화문 광장에 대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광화문 광장이 제2의 서울광장이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물론 오세훈 시장도 나와는 다른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이 제2의 서울광장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광장조례’로 약칭함) 때문이다. 광장조례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위법의 결정판으로서 조례로서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악이다.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규정에 정면으로 위반

 

  우선 광장조례는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 제21조제4항의 명문규정에 정면으로 반한다. 집회에 대한 허가제 금지를 굳이 최고법인 헌법에 못 박은 이유는 무엇인가?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인정할 경우 행정공무원이나 경찰공무원이 주관적 재량에 의해 특정한 내용의 집회를 금지할 우려가 있고 허가권한을 소수파나 반대파의 집회를 억압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장조례는 광장을 사용하려면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한 허가를 변경하거나 취소·정지도 할 수 있다. 감히 조례 따위가 최고법인 헌법에 정면으로 맞서는 꼴이다. 다른 것은 더 볼 것도 없다.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규정한 그 자체만으로 이미 광장조례는 위헌이다.

 

집회의 장소, 시간, 목적, 내용, 형식에 대한 자기결정권 침해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장소, 시간, 목적, 내용, 형식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 특히 집회에 있어 장소에 대한 선택권은 매우 중요하다. 집회 장소가 바로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므로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광장조례는 광장 사용시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집회 장소에 대한 선택권을 침해한다. 그리고 광장 사용의 목적을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으로 제한함으로써 집회의 목적과 내용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

 

명확성의 원칙 위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령의 규정은 그 뜻이 명확하여 누구나 어떤 권리가 어떻게 제한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모호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규정은 권력자의 자의적인 법집행을 가능하게 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은 규정은 그 자체로 위헌이 된다. 특히 집회의 자유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경우에만 제한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규정 내용의 명확성, 집회 자체의 폭력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라는 이중의 명확성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장조례는 서울시장이 ‘광장의 조성목적에 위배되는지 여부’ 등을 고려하여 허가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장조례는 광장의 조성목적을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광장의 조성목적이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등이라는 것은 누구의 생각인가. 무엇이 건전하고 무엇이 불건전한가, 무엇이 여가선용이고 무엇이 여가악용인가. 너무나 불명확하다. 오로지 서울시장이 판단할 뿐이다. 그리고 광장조례는 광장 사용을 희망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광장 사용을 통해 구체적으로 공공의 안녕에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 사용을 불허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을 명확히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평등권 침해

 

  광장조례는 서울광장 사용에 대한 허가를 신청순서대로 하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의 경우 우선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 또는 서울특별시가 공익을 위하여 광장 사용이 필요한 경우’ 이미 허가한 사항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경우’에는 사용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대체 국가, 서울시, 지자체가 일반 시민이나 단체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혜택을 받을 근거가 무엇인가. 참으로 권위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발상이요 평등권 침해가 아닐 수 없다.

 

기본권 제한의 형식상 한계 위반, 조례제정권의 한계 일탈

 

  헌법 제37조 제2항은 분명히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로 하라고 명령한다. 이를 기본권 제한의 형식상 한계라 한다. 여기서 법률이란 당연히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말한다. 그런데 감히 조례 따위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지방자치법 제22조는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거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조례제정권의 한계라 한다. 그런데 서울시장에게 집회에 대한 허가권한을 위임한 법률은 없다. 물론 그런 법률은 있을 수 없다. 앞에서 본 것처럼 집회에 대한 허가제는 헌법에 의해 금지되기 때문이다. 혹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떠 올리지 모르겠다. 그러나 집시법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서울시장에게 허가권을 위임한다는 규정은 당연히 없다.

 

광장을 되찾아야 한다

 

  도대체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조례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집회는 무언가 불온하고 불건전한 것, 그래서 가능한 한 금지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위헌적인 발상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으로서 기본권 중의 기본권, 다른 기본권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본권이다. 따라서 이런 우월한 기본권에 대한 제한은 보다 더 엄격한 기준에 의해야만 한다. 그러나 광장조례는 이런 헌법적 상식을 무시한다. 열린 본래의 광장을 되찾는 것, 그것은 헌법을, 민주주의를, 우리의 인권을 되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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