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옥상에 만들어진 미술관, 도시는 우리의 것이다!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8월2호 후일담

 

옥상에 만들어진 미술관, 도시는 우리의 것이다!

옥상미술관프로젝트 두 번째 오프닝 현장

 

 

안태호

('예술과 도시 사회' 연구소 책임 연구원)

 

  옥상에 미술관을 만든다? 벽없는 미술관을 넘어 방방곡곡에 찾아가는 미술관이 들어서는 마당에 옥상에 미술관 하나쯤 들어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옥상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철공소 단지의 쓰레기가 가득한 곳이라면? 이야기가 좀 될만하지 않은가?

 

  옥상미술관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문래동 철재상가 한 복판에 위치한 프로젝트스페이스 랩39의 옥상이다. 프로젝트 형태로 선언되고 진행되는 건 올해의 일이지만, 실제로 옥상은 미술관으로 기능해 왔다.

 

  2007년 프랑스 조각가 장 미셀은 옥상의 쓰레기들을 이용하여 <소비의 탑>을 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2008년에는 포르투갈 철조 조각가 안나 마노의 <철로 만든 정원>이 발표되었고, 안해룡은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라는 전시를 개최하며 옥상에 초기의 재일조선인학교를 나무로 제작하여 설치한 바 있다. 경희대 회화과 학생들은 옥상에 벽화를 제작하였고, 남미액션투어 프로젝트 예술가들은 설치 작품 등을 옥상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작품 제작 뿐만 아니었다. 옥상은 퍼포먼스 행사장, 파티, 영화상영장, 콘서트장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옥상미술관 프로젝트의 첫 주자는 로봇정원. 옥상의 한면을 가득 채운 로봇은 다리를 뻗어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폐품들을 활용해 만든 새로운 조형미와 공간활용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8월 21일(금) 열린 두 번째 오프닝에서는 스튜디오 24와 손민아 작가가 각각 작품을 발표했다(물론, 작품 설치는 그 이전에 모두 끝냈다). 스튜디오 24는 서울시립대 건축과 학생들이 결성한 그룹이다.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이냐고? 물론, 자기소개를 하며 각자 마음 속에 품은 걸그룹들을 꺼내놓긴 했다. 수줍게 브라운아이드걸스와 애프터스쿨, 투애니원이을 입에 올리는 그들의 모습이 풋풋했다. 이들의 풋풋함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스튜디오24의 작업이 용산참사를 주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용산참사가 벌어진 후 무작정 랩39를 찾았다. 아마도 그때까지 랩39에서 진행했던 실험적인 전시, 혹은 사회적인 전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대책없이 찾아온 이 학생들을 랩39 디렉터 김강은 대책없이 용산 현장으로 등을 떠민다. 김강의 판단은 옳았다. 이 학생들. 처음엔 쭈뼛거리고 겁도 먹었지만, 이내 작업의 ‘꺼리’를 찾고 적극적으로 용산 현장미술에 동참한다. 평화박물관에서 열린 용산현장미술 전시 망루전에 참여한 이들의 작업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주워모은 도시가스파이프를 활용한 구조물이었다. 이들은 망루전을 마치고 옥상미술관 프로젝트에 다시 참여해 새롭게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을 소개하며 공개한 영상은 재개발이라는 폭력과 자신들의 작업을 재치있게 엮어내 주목을 받았다. 최근 논란이 됐던 ‘20대 개새끼론’은 역시 ‘꼰대’들의 머릿속에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옥상미술관 프로젝트의 큐레이터이기도 한 손민아 작가는 옥상 난간 테두리에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갖는 단어들을 나열한 텍스트 작업을 선보였다. 진실-유언비어, 특권이 있다-기회가 없다, 평범하다-특이하다, 기억하다-잊어버리다, 자유롭다-억압당하다, 안전하다-위험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언어의 대립쌍은 맥락을 따라가는 순간과 순간 사이,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인다. 손민아 작가는 오프닝의 축하공연에까지 겹치기 출연을 감행, 1인3역을 너끈히 소화해내는 저력을 선보였다.

 

  공연팀은 둘. 결성 이후 두 번째 공연을 벌인 도시락밴드와 EP앨범 발매를 앞둔 여성듀오 랩그룹 폴어쿠스틱이다. 먼저 무대에 오른 도시락밴드의 수수한 공연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관객들도 아슬아슬하면서도 너그러운 맘으로 지켜보며 새 밴드의 탄생을 축하했다.

 

  폴어쿠스틱의 공연은 한밤중의 옥상이 들썩들썩거릴 정도로 청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사도 바울부터 시작한 폴의 리스트는 폴 스미스, 폴 사이먼, 폴 고갱, 폴 매카트니, 폴 오스터에까지 내닫는다. 이 수많은 폴들에게 빚진 감수성을 날카롭게 담아낸 그들의 노래는 걸그룹의 팬을 자처했던 스튜디오24의 멤버들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들은 곧 있을 EP앨범 발매를 기념해 마포구, 영등포구를 비롯한 5개‘구’ 투어를 펼칠 계획이라니 관심있는 분들은 폴어쿠스틱의 홈페이지(http://paulacoustic.net/)를 주목하시라. 근데, 이상한 나라의 폴은 폴의 리스트에 들어가는 걸까?

 

  어느 새 옥상에서 직접 찐 고구마와 옥수수가 돌았고, 곳곳에서 맥주캔 따는 소리가 광고 속 한 장면 마냥 시원하게 들려왔다. 수런수런 이야기꽃이 옥상 가득 피어나고 도시의 불빛은 말이 없었다. 작품이 있고, 음악이 있고, 바람이 있고, 사람들이 있고, 수다가 있고, 도시의 밤풍경이 함께 한 옥상미술관 프로젝트의 두 번째 오프닝이었다.

 

  * 옥상미술관 프로젝트는 올해 12월까지 계속된다. 앞으로도 대체에너지팀의 자전거발전기, 에스토니아의 그룹 논그라타, 채은영의 생태농업프로젝트, 이치무라 미사코의 노숙인 관련 작업 등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평소 http://www.squartist.org/ 를 유심히 살펴보면 각 전시의 오프닝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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