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 문화운동의 방향 : 문화민주주의를 넘어 문화사회로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9월1호 특집기사 ②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 문화운동의 방향

문화민주주의를 넘어 문화사회로

 

 

강내희

(문화연대 공동대표, 중앙대 영문학과)

 

1. 신자유주의 위기의 도래

 

1970년대 이후 40년 가까이 자본주의 사회를 작동시킨 이념적, 정책적 기조로 작동해온 신자유주의가 이제 위기에 처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세계자본주의 헤게모니 국가 미국이다. 미국은 2007년 말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를 맞은 뒤 리먼 브라더스, 메릴 린치, AIG와 같은 굴지의 금융회사들이 붕괴하고 20세기 산업의 중추 역할을 해오던 제너럴 모터스마저 파산하는 등 전례 없는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며 세계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마치고 있다. 이런 사태는 그동안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해온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신자유주의는 그동안 ‘모든 것의 시장화와 상품화’를 추진하며 ‘자본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왔지만 이제는 이런 축적전략 자체가 세계경제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 글의 처음 다섯 문단은 문화연구학회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의 문화변동」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의 일부 내용을 개작한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맞았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여러 나라가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영국과 독일이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강화하고, 미국은 2009년에 새로 오바마 정권을 출범시켜 금융시장 개혁과 의료개혁을 시도하고 있고, 일본도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온 자민당에 대한 민주당의 압승을 보여주는 등 주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정책 노선, 일견 케인스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과연 진정성을 안고 추진되는가 하는 의문도 없지 않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 정권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해온 사람들이며,[로렌 골드너(2009: 468)는 오바마가 “당신 직후인 11월 7일에 가진 경제회의”에 “타임-워너, 제록스, 하이얏트, 구글 등의 CEO는 말할 것도 없고 워렌 버핏, 로버트 라이히, 래리 서머스, 로라 타이슨, 폴 볼커” 등을 참석시킨 점을 보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실제로 오바마 정권은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스너, 국가경제위원장 래리 서머스, 경제회복자문위원장에 폴 볼커로 경제팀을 구성했는데 이들은 모두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온 사람들이었다.] 일본도 새로 집권한 민주당이 신자유주의적 정책노선을 수정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그 핵심 지도자들은 그런 정책을 펼쳐온 자민당 출신이다. [예컨대 이번에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주도한 하토야마, 정치자금 문제로 민주당의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사실 민주당의 권력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오자와 등은 자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자유주의 극복의 한계를 미리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아마 더 큰 문제는 이들 나라가 진정으로 케인스주의로의 복귀를 원한다고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케인스주의가 성행했던 것은 당시는 세계자본주의의 미국 헤게모니가 작동하며 현실적으로 자본주의적 축적이 원만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케인스주의는 사민주의와 함께 노동과 자본간의 타협을 지향하는데 이런 노선은 자본축적이 계속될 때에만 지속 가능하다.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케인스주의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 자본축적의 위기가 도래하여 자본이 노동에 대해 더 이상 양보할 여력이나 의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자신의 축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자본이 채택한 신자유주의도 위기에 처했는데, 이 신자유주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케인스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케인스주의는 자본축적이 원활할 때 가능한 자본의 양보 조치인데 지금은 자본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정성진, 2008).


세계적으로 보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그것에 대한 명확한 거부로 찾는 사회가 없지는 않다. 1990년대 초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추진되었을 때 가장 큰 사회적 피해를 입은 중남미 국가들에서 그런 경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오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위기에 처한 개발도상국가들을 대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미국재무부 등 워싱턴디씨에 소재하는 기관들이 추진하는 ‘표준’ 개혁 패키지에 들어가야 한다고 본 경제정책을 위한 10가지 처방을 가리키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처음 만든 용어”이다. http://en.wikipedia.org/wiki/Washington_Consensus.] 알다시피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좌파 정권을 탄생시키면서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며, 때로는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이라고도 불리는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사회주의를 표명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찾기에서 이들 국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 미국, 일본, 한국의 그것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사회주의를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케인스주의나 사민주의를 선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사회주의’의 관점은 신자유주의는 물론이고 자본주의 자체를 극복의 대상으로 삼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과연 이런 흐름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남는다. 차베스의 지도하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경우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함께 그동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해 가장 강력한 도전장을 냈다고 할 수 있지만 석유자원에 의존하는 그곳의 21세기 사회주의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는지, 과연 오늘날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방금 살펴본 세계적인 추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에서는 세계경제 위기의 징후들이 드러나고 있던 2008년 초에 자유주의 우파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이때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신자유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는 정책들을 펼쳐 남미 국가들을 말할 것도 없고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의 문제점들을 수정하려는 태도를 드러낸) 미국 등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과도 큰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운하 또는 4대강 사업 추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도입 결정, 종합부동산세 폐지, 미네르바 구속, 국가인권위 축소, 사이버테러법·미디어법 등 각종 악법 제정 시도, 용산 철거민 학살, 경찰의 만행 증가 등 출범 이후 이명박 정권이 도입한 주요 정책이나 사회적 대응 방식을 보면 정권의 기본적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상위 1%의 가진 자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쳐오고 있는 것이다. 뒤메닐과 레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이 벌이는 계급투쟁에 해당한다.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예외 없이 나타나는 것이 사회적 부의 상향 이동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는 “처음부터 계급 권력의 회복을 달성하기 위한 프로젝트”(Harvey, 2005: 16)로 작동하며 상층부 인구로 하여금 부를 회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아직 2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권이 그동안 추진해온 사회적 정책들은 2009년 현재 세계에서 자본에 의한 “계급 권력의 회복”을 가장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금은 어쩌면 이매뉴얼 월러스틴(1999)이 예측한 자본주의 이후의 ‘혼란, 무질서, 와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인지 모른다(92). 월러스틴은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의 상황이 심각할 것임을 경고한다. 엄청난 고통과 탄압, 그리고 폭력, 혼돈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헤게모니가 위기에 처할 때 등장할 수 있는 ‘위험사회 이상의 위험사회’ 상황에 해당한다. 이 상황은 울리히 벡이 탈근대적 사회의 전형으로 소개한 ‘위험사회’와도 구분되어야 한다. 벡의 위험사회는 그 자체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체계에 해당하는 반면, [울리히 벡(1997)에 따르면 ‘위험사회’는 ‘성찰적 근대화’를 그 바탕으로 삼아서 작동되는 사회이다. ‘위험사회’는 공해나 자연재앙, 질병 등 그 안에 안정적 삶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많은 요인들을 안고 있지만, 이 요인들은 시스템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것으로 상정된다. ‘위험사회’는 그런 점에서 개념적으로 성찰적 성격을 지닌다.]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그에 따른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로 예상되는 ‘위험사회 이상의 위험사회’는 그런 안정성이 근본적으로 동요되는 체계 자체의 붕괴 현상에 가깝다. ‘위험사회’가 제공하는 위험들은 성찰적으로 검토하여 극복해야 하는 문제들이지만 ‘위험사회 이상의 위험사회’가 야기하는 위험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까지도 뒤흔들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처한 위기는 헤게모니의 위기에 해당하는 듯하다. 그람시에 따르면 헤게모니는 지배와 동의라는 두 국면을 동시에 갖는다. 헤게모니는 지배적 위치에 있는 계급이나 집단이 피지배계급의 동의를 얻어 지배하는 양상을 갖는바, 이때 피지배 계급의 동의는 지배계급의 물리적, 억압적 지배에 대해서만 아니라 그 도덕적,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동의의 형태를 띤다. 이 리더십이 결여된 상태에서 지배가 강요되면 이때 상황은 동의 없는 폭력만의 지배, 공포의 지배로 전락한다는 것이 그람시의 지적이다. [“지배적 사회 집단이 그 기능을 다하고 나면 이데올로기적 블록은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자발성’은 더욱 덜 은폐되고 비간접적 형태로 ‘강제’에 의해 대체되고 노골적인 경찰 조치들과 쿠데타로 귀결될 것이다”(Gramsci: 60-61).] 오늘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제공하여 한시적으로 수용되기도 한 대중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약속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않으며, 신자유주의 세력도 그런 약속보다는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대중을 지배하려고 든다는 말과 같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에 들어와서 민주주의의 일반적 후퇴가 일어나고 있어서 일각에서는 파시즘의 도래까지도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문화과학편집위원회, 2009). 지난 1월 서울 용산에서 일어난 주민 학살 사건,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농성 노동자들에 대한 지난 8월의 폭력적 진압, 용산 학살에 대한 항의를 위해 조직되는 집회에 대한 폭력적 진압 등 2009년 한 해에 국한해서 보더라도 한국의 경찰은 과연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기본적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할 만큼 폭력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오늘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는 위기에 처한 신자유주의가 적어도 얼마간은 그 지배력을 지속해나간다는 말과 같은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위험사회’가 초래하는 것 이상의 위험들을 사회적 문제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헤게모니가 붕괴할 때 어떤 위험이 도래하는지는 1945년 이후부터 196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에는 헤게모니를 확고하게 누리던 미국 자본주의가 1970년대 이후 위기를 겪기 시작한 뒤로, 특히 2000년도에 들어와서 세계질서의 깡패로 둔갑하여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를 공격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오늘 이명박 정권은 이미 위기에 처한 신자유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정치적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신자유주의를 펼치려고 한 과거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도 달리 정치적 보수주의를 동원하면서 사회 전반에서 차별과 억압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한국에서는 바야흐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2. 실질적 민주주의 위기에 뒤 이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위기

 

이명박 정권을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보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을 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명박 정권은 이전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는 구분해야 하지만 크게 보면 자유주의로부터 벗어나 있지는 않다. 아마도 이때 자유주의는 김대중-노무현의 좌파적 자유주의와 비교하면 우파적 자유주의에 해당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권을 아무리 우파로 성격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주의 정권으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는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정권은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인구 전반에게 강요함으로써 사회적 부의 상향 이동을 계속하고자 하고, 이를 위해 오늘 한국 사회를 경찰국가로 전락시키면서 민주주의를 대거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에서 전국의 교수들이 대대적으로 진행한 시국선언 흐름에서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것도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이런 점은 이명박 정권은 ‘우파 자유주의’도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들기도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근대적 민주주의의 거의 유일한 모습인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명박 정권을 비록 우파라고 해도 여전히 자유주의로 규정하는 한은 민주주의 체제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도 성립할 수 있다. [최근 경향신문에서 추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위한 기획에서 뉴-라이트 노선의 대표 주자로 나온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즘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하는데,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핵심은 국민에 의해 정권을 견제하는 장치이고, 곧 직선제로 대표되는 1987년 개헌입니다. 자의적으로 임기를 연장할 수 없고, 5년 하면 내려와야 하는 거죠. 제도 변화 없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두번째, 미네르바 사건을 민주주의 후퇴의 증거로 많이 거론하는데, 검찰의 과잉수사일 수는 있지만, 이를 가지고 정권 전체의 행위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지나친 비약입니다. 쉽게 말해서 대통령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검찰의 기소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가 작동했고, 이를 사회적으로 존중하잖아요” (경향신문, 2009.09.02).] 이명박 정권은 과연 여전히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더 높은가?


앞서 이명박 정권 하에서 파시즘의 도래를 우려하는 관점이 나오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자유주의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이 자유주의가 우파적 관점에서 관리되고, 더 나아가서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를 추진할 경우에 민주주의까지 부정하는 정책을 펼칠 우려가 크다고 보는 관점일 것이다. 여기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전제하는가?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한가?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인가 혹은 필요조건에만 해당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면 최근 한국의 역사를 뒤돌아봐야 한다.


한국의 최근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그 형식적, 정치적 차원에서는 1987년 체제의 성립과 함께 구축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부터 군부의 권위주의 체제 하에 놓여 있던 한국사회는 1987년 이후 새로운 헌법의 제정과 함께 민주화를 진척시킨 것이다. 지방자치를 포함하여 박정희 정권에서 부정당했던 다양한 자치권들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유신헌법 이래 거의 압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들이 이때부터 회복되기 시작했고, 언론의 자유도 이때부터 활발해졌다.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거의 절대적 위상을 지녔던 국가권력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도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서이다. 보수 언론이 과거 같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모습으로 정치권력을 조롱하며 언론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기본적으로 군부가 권력의 주체로 있었던 시기에 부정당하거나 위축된 정치적 자유주의가 상당한 정도로 회복된 때문이다.


하지만 1987년 이후 한국에서 부상한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세력의 전유였고, 자유주의의 강화로 구축된 ‘민주주의’ 체제 역시 그 세력을 위한 것이었음을 잊어서도 곤란하다. 물론 이때 자유민주주의가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까지 폄하할 일은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의 지배블록에 의해 최고의 정치 이념으로 선전되어 왔지만 오히려 그런 선전이 가장 강력하게 제기되던 시점에 가장 큰 왜곡을 겪는다.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와 같은 것이었고, 국민의 자유를 압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민주주의가 1987년 이후부터 동의에 기반을 둔 헤게모니적 지배를 행사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까지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던 자유주의 세력이 군부 권위주의와 타협을 이루고 정권에 참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1987년 체제 초기의 자유민주주의는 여전히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남아 있던 노태우 정권에 의해 관리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취약했으며, ‘문민정부’를 자임한 김영삼 정권에 이르러서도 김정권이 민자당과의 야합을 통해 출밤한 한계로 인해 약간 호전되기는 했지만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좀 더 제대로 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노무현 등의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때이다. 이 과정을 거쳐 오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절차적, 정치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체육관에서의 대통령 선출, 전임자에 의한 대통령 후보 선정 등은 이미 김영삼 정권에 이르러 과거의 일이 되었고, 이후 이어진 ‘개혁정부’에서는 인권, 평화, 언론 및 집회 등의 분야에서 더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87년 체제에서 괄목할 만한 신장을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이때 발전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 그 자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한 유형일 뿐 그 자체로 민주주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런 한계는 ‘민주정부’라고 지칭되기도 하는 김대중 정권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권의 ‘참여정부’ 시절을 되돌아볼 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실질적 민주주의’였다.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87년 체제’ 초기에는 발전의 가능성을 드러내다가 후반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후퇴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하 이 단락의 내용은 2007년 2월 진보전략회의 모임에서 ‘1987년 체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그리고 진보진영의 과제--단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발췌하여 수정한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절차적 측면의 형식적 민주주의로 그치지 않고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 걸쳐서 실현되어야만 한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제를 통해 어느 정도 구현될 수 있지만 이때 작동되는 민주주의는 자본을 위해 작동하는 자유민주주의로만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실질적 민주주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원 전반에 걸쳐서 구현되는 민주주의로서 형식적 한계를 넘어서야만 가능하다. 이 실질적 민주주의의 견지에서 볼 때 87년 체제 후기 IMF 위기가 도래한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더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위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과 후퇴는 ‘87년 체제’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되어 나타났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전반에 해당하는 ‘전반기’는 사회운동, 특히 노동운동의 고양과 함께 박정희 정권 말기에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거세진 시기라면 후반기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사회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대중적 저항의 고양과 저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의 변화로 이어졌다. (낮은 단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고양은 한국사회에 1990-97년의 ‘짧은 90년대’와 ‘포드주의적 타협’을 가져온 반면(강내희, 2008: 282-84), 1997년의 외환위기를 전환점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 공세의 강화 또는 이에 대한 저항의 약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자본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갖다 바친 ‘개혁정부들’에게 정권을 빼앗겨 원한에 사로잡힌 한국의 우파 자유주의와 보수 세력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여성 민중에게 진정으로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하였다. 이 시기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공공성이 계속 해체되었기 때문에 ‘87년 체제’ 후반기에는 실질적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말았다.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고, 이것을 자유민주주의와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성립으로 한국사회가 이룩한 성과는 그대로 인정하되, 그 한계를 극복하여 새로운 차원의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2009년 현재 한국은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파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아 실질적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의 성과마저 후퇴시키고 있는 국면에 놓여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경찰 권력의 강화, 기무사에 의한 민간사찰, 사이버 망명도 쓸데없이 만드는 인터넷 패킷 감청 등이 자행되면서 지난 세월 어렵사리 구축한 자유민주주의적 틀이 크게 후퇴하였다. 오늘 한국사회는 이처럼 심상치 않은 민주주의의 전면적 위기를 겪고 있다.

 

3. 문화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

 

이처럼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우리는 문화운동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 것인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문화운동에 어떤 과제를 안겨주는가?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문화운동은 당연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당히 길게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의 관계를 살펴본 것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의 위기 극복을 위해 또 다른 자유주의로 회귀할 경우 맞게 되는 한계, 한국 민주주의를 단순히 자유민주주의의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문화운동이 회복하려고 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더 급진적인 민주주의여야 하고,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다. 이 민주주의를 나는 코뮌주의라고 부르고자 하며, 이 코뮌주의를 통해 구현되는 구체적인 사회형태를 문화사회로 부르고자 한다. 문화운동은 여기서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운동의 한 차원이다.


먼저 문화운동은 문화를 진보적으로 변혁시키는 운동이면서, 문화적 가치가 사회의 조직, 운영에서 존중되게 만드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화운동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 한편으로 문화운동은 문화정책에의 개입의 모습을 띠었는데, 이것은 주로 공적인 국가제도와 관행에의 개입이었다. 최근 한국의 역사에서 이 운동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국가의 문화정책(3S 정책 등)에 대한 저항으로, 개혁정권이 들어섰을 때에는 대안 제시 등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후자의 경우 노무현 정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편이다. 다른 한편으로 문화운동은 문화정치의 실천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정치는 대중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실천에 해당한다. 이 문화정치는 1980년대에는 대안문화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려는 운동 등의 모습을 띠었다. 문화운동을 이처럼 문화정책과 문화정치로 양분하는 것은 물론 개념상의 혼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문화정책도 위로부터이긴 하지만 문화정치에 해당하고, 그에 대한 개입도 가능한 만큼 문화운동의 의제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고, 문화정치의 경우에도 문화정책으로나 문화운동으로 나타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운동을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한정해서 생각하면 이 운동은 대중의 문화정치로 이해되며, 위로부터의 문화정치인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길항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크게 ‘문화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의 두 양상으로 문화정책 노선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문화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는 문화에 대한 상이한 이해를 전제한다. 먼저 ‘문화민주화’는 문화를 가치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것을 가능한 많은 대중에게 전파하고 대중으로 하여금 문화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한 확장하려는 입장이다. 고급 예술이나 문화는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므로 예술과 문화와의 접촉이 곧 대중에게 유익하므로 이 혜택을 최대한 누리도록 배려하겠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이 여기에 작동한다. 고전 읽기라든가 명화 감상과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며, 나아가서 극장 등을 많이 지어서 문화와의 접면을 넓히려는 정책도 여기에 포함된다. [문화민주화는 기본적으로 엘리트주의적 문화정책이기 때문에 주로 권위주의 정권에서 공식적 노선으로 채택될 수 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문화민주화 정책은 ‘고급예술’의 보존과 그에 대한 대중의 접근권 확산 정책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때 대중의 접근권 정책은 다른 정책적 고려들에 비해 늘 뒷전으로 밀리는 경향을 띤다. 문화민주화는 개혁정부에 이르러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실시되지만 문화민주주의에 의해 보완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민주화의 접근이 지닌 문제점은 문화가 절대선이라는 관점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때 문화는 사회적 지배나 억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회적 계산으로부터 벗어난 가치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18세기 말에 활동한 프리드리히 쉴러에 따르면 문화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었고, 19세기 후반 영국의 비평가 매튜 아놀드(1960)에 따르면 “세상에서 말하고 생각한 가장 좋은 것”(6)이었다. 이렇게 이해된 문화는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므로 널리 유포되기만 하면 되는 것, 모든 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런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소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소수의 누림은 다수에 대한 착취와 억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나아가서 그 “좋은 것”이 이런 사실을 은폐하는 도구로서도 활용된다는 점을 외면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햄릿』이나 『템페스트』의 위대함, 좋음만 강조하고, 그 작품들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 좋다고 보면 이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가 남성 중심적, 서구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려는 시도와 문제의식은 억압당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작품들을 접할 수 있으면 그런 문제점들까지 깨닫게 되지 않겠는가 할 수도 있으나 일단 특정한 문화권에 속한 작가들의 특정한 작품을 위대한 좋은 작품으로 설정해놓고, 그것의 민주화, 즉 대중화를 추구하면 다른 종류의 작품들은 허접스럽다는 생각을 부추기면서 특정한 문화와 예술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시각이 계속 작동하고, 이 결과 제3세계, 노동자, 여성, 동성애자 등의 문화는 하찮고 비루한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문화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문화정책은 문화민주화 접근법이 지닌 문제점을 교정하려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민주주의는 대중에 대해 문화민주화와는 다른 관점을 취한다. 후자의 경우 민주주의는 하향적인 시혜의 형태를 띤다. 방금 언급한 대로 문화민주화는 뛰어난 완성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하는 접근법이다. 문화민주화는 대중의 문화와의 접면을 넓히려고 하기는 하지만 이 접면을 넓히는 방식은 문화예술과 그 수용자의 근본적 구분 위에서 전자가 가능한 한 많은 후자들을 만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계에서는 문화나 그것의 생산자, 창작자는 주체가 되고 그 수용자는 대상이 된다. 반면에 문화민주주의는 대중을 문화적 활동과 실천의 주체로 인정한다는 것이 문화민주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민주화의 차이는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상이한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작가와 작품 중심의 문화민주화 입장에서는 문화적 가치가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된다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작가는 소수이며, 대중은 다수라는 점에서 소수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유통시키는 일은 일방향적 운동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반면에서 문화민주주의는 대중 자신을 문화적 주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기표현의 기회를 주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안게 된다. 문화민주주의가 주된 문화정책 노선을 채택되면 대중을 위한 문화적 생산수단의 확보가 중요해지고, 문화적 생산수단에 대한 대중의 접근권이 강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배려는 대중이 직접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목적인바, 이는 문화민주주의가 ‘문화적 다양성’을 중요한 가치로 평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화민주주의는 이런 점에서 문화다원주의(multi-culturalism)를 인정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다원주의는 하나의 사회구성체가 단일성이 아닌, 복수성의 원칙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사회적 주체들 간에 통약될 수 없는 이질성이 작동함을 전제한다. 문화민주화의 정책 노선이 소수 작가의 탁월성, 위대함이 대중에게 인식되도록 하는 데 관심을 쏟는 것은 사회의 단일 구성을 전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에 문화민주주의가 요청되는 것은 사회적 주체들이 서로 다른 문화적 감수성이나 취향,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들 차이에 대한 존중이 사회적으로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문화민주주의가 문화 영역에서의 ‘참여민주주의’로 간주되는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며, 한국의 최근 역사에서는 노무현 정권에서 그것이 가장 만개했던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은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시민사회의 정부 정책 과정에 대한 참여를 허용했는데, 문화영역에서는 이런 입장이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예술위원회 등 문화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정위원회를 만들게 했고, 나아가서 문화산업의 발전이나 표현의 자유 신장 등을 낳았다. 참여정부의 이런 문화민주주의 기조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 김대중 정권과 비교해서도 매우 강력하게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은 현 이명박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신보수주의 문화정책과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문화민주주의가 가장 바람직한 문화정책인가, 문화사회 건설을 위한 모범 답안인가?” 하고 묻는다면 완벽하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문화의 민주화 관점도 그렇지만 문화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노선의 문화정책에 해당한다. 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고전적 자유주의, 수정자유주의, 신자유주의로 전개해왔는데, 문화민주주의가 강조되고 부상한 시기는 서구의 경우를 보면 수정자유주의 시기이다. 수정자유주의는 한편으로는 포드주의의 가동과 함께 노동, 자본, 국가 간에 타협을 이룰 만큼 사회적 부가 원활하게 축적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의 하향 이동이 가능하던 시기의 자유주의 모습이다. 서구의 경우 이 시기는 194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에 해당했고, 이때 다양한 문화의 민주화, 문화민주주의 정책들이 실시되었다. 이 시기에 문화민주주의가 주요 국가들의 문화정책 노선으로 채택된 데에는 아마 한편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의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정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적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부의 하향 이동이 일어난 상황에서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필요가 더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강조할 점은 이 시기에 미국의 경우에 볼 수 있듯이 민권 운동의 부상, 이민의 증가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인구 구성에 큰 변동이 일어나면서 각 사회구성체 내부에 인구의 이질성들, 복수성들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의 지배적 자유주의인 수정자유주의는 문화적 헤게모니 전략으로서 문화다원주의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관점에 입각한 문화민주주의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문화민주주의가 부분적으로나마 실시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였다. 이것은 미국과 같은 기존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전연 다른 상황에서 문화민주주의가 정책노선으로 채택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 문화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면서, 특히 신자유주의가 신보수주의와 결합하면서 크게 위축되었다. 신자유주와 신보수주의의 결합은 미국의 경우 공화당 정권에서 이루어졌는바, 이 경향은 2000년대의 부시 정권에서 두드러졌다. 신보수주의는 가족, 종교(기독교), (서구의) 전통, 생명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문화적 자유주의를 배격한 문화적 보수주의인데, 결혼의 숭고함, 남녀 간의 “자연적” 서열, 서구문명 등을 배격한다는 이유로 일정하게나마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며 동성애나 페미니즘, 소수인종의 문화적 권리를 옹호하려는 문화민주주의를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런 입장이 정치적 권력에 의해 지배적 사회적 가치로 수용된 시점은 미국에서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때이다. [클린턴 정권 8년간은 신보수주의 세력이 야당이었기 때문에 이런 분석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나 클린턴이 루윈스키 사건 등으로 계속 신보수주의 세력의 공격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에도 신보수주의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클린턴의 문화정책은 전통적인 민주당의 문화정책에 따라서 기본적으로 문화민주주의 노선을 따르려고 했으나 한편으로는 신보수주의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강화한 신자유주의 노선에 의해 크게 규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문화민주주의를 부족하나마 문화정책의 노선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개혁정부, 특히 노무현 정권이었는데, 이때는 한국이 이미 신자유주의를 크게 강화하기 시작한 뒤이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박정희 정권 말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전두환 정권에서부터 강화되기 시작했지만 1987년 체제의 수립 후에는 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관리되었다. 1980년대에 사회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된 데에는 이때 강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가장 거셌던 것은 1980년대 후반 사회운동의 상승과 함께 노동운동이 조직되었던 시점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1990년대 초중반에 “짧은 포드주의”가 형성된 것은 이때 노동자계급에 대한 일정한 양보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데, 1990년대 초부터 문화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그에 대한 대응이었다. 국가와 자본은 문화산업을 통해 당시 진행된 사회적 부의 하향 이동에 제동을 걸고 하양 이동한 부를 회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문화민주주의는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의 문화정책의 한 조류로서 등장하는데, 특히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에, 한국경제가 IMF 위기를 맞아서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을 타고 있을 때 도입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권, 특히 노무현 정권이 문화민주주의를 문화정책으로 수용한 것을 아이러니하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 문화민주주의가 채택된 것은 물론 대중을 문화적 실천의 주체로 인정한 긍정적인 측면을 갖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의 삶을 파탄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보완책으로서 작용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문화민주주의는 문화연대를 비롯한 문화운동단체의 주요 운동노선이기도 했다. 특히 문화연대는 김대중 정부가 수립되고 1년 반 정도가 지난 뒤 출범했는데, 출범 취지로 문화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내세우고, 문화사회 건설을 목표로 제시했다. 문화연대는 출범 이후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지만 노무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정부 정책에 상당히 깊숙이 개입했고, 가능한 한 민주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싶은 것은 문화연대가 수행한 문화민주주의적 실천과 문화사회 건설의 목표 사이의 관계이다.


문화연대가 행한 그간의 문화민주주의적 실천에 대한 반성이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문화연대는 문화의 민주화보다는 문화민주주의가 더 올바른 문화적 실천의 원칙이라는 입장을 취해왔으며, 이런 입장에서 시민의 주체적 문화적 활동을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의 마련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편이다. 문화연대가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던 것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만 동성애자나 여성,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본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연대는 이 과정에서 문화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 작동되는 긴밀한 관계를 충분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표현의 자유를 중요한 문화적 권리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았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부의 상향 이동, 나아가가서 자본주의적 욕망의 재생산을 위해 작동시키는 문화산업을 성장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점은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은 것이다.


위에서 문화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했는데, 이 점과 관련하여 수정자유주의 국면에서 문화민주주의가 주요 문화정책 노선으로 채택될 때 과연 시민의 관점이 얼마나 많이 반영되는지 다시 생각할 점이 있을 것 같다. 한국사회가 잠깐 보여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의 참여민주주의에서 시민운동단체들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흔히 ‘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지칭되기도 한 참여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책 수립 과정에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실천으로 제시되곤 했지만 사실 이때 참여의 주체가 시민들이었는지는 다시 따져볼 문제로 보인다. 여기서 ‘시민’은 ‘민중’과도 구분된다는 점에서 이미 많은 다수를 배제하고 있는 주체이고, 시민들 가운데서도 소수로, 주로 시민단체의 활동가로 국한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거버넌스의 형태로 나타난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실천을 지향한다고 하면서도 다수 시민과 민중의 ‘참여로부터의 배제’를 전제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문화연대가 실천해온 문화민주주의도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문화연대는 시민의 이름으로 많은 문화적 실천을 해왔지만 이 ‘시민’은 많은 문화적 활동의 주체들을 배제하는 주체의 형태인 것이다.


하지만 문화연대는 문화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행동 강령과 함께 문화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기도 했다. 문화민주주의적 실천과 문화사회 건설의 목표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아래에서는 이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4. 문화사회를 위하여

 

문화연대가 ‘문화사회’를 건설하자고 한 것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본 때문이다. ‘문화사회’는 비자본주의를 지향하며,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일컫는다. 문화사회론의 입장은 오늘 자본주의가 강제하는 사회의 형태를 노동사회로 보고, 노동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이루어져야만 인간해방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문화사회론이 노동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후자가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하나의 지배적인 활동, 즉 노동으로 환원시키고 이를 통해 인간의 해방을 막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사회의 관점이 노동을 통째로 거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노동, 특히 사회적 필요노동은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구 생태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이며, 노동 없는 인류 사회는 당연히 존립이 가능하지 않다. 노동은 인간의 활동 가운데 생략할 수 없는 필수적인 활동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노동 중심으로, 노동의 유무와 그 방식에 따라서 편성하고 있는 임금노동 사회라는 것이다. 임금노동의 기회를 갖는가, 어떤 보상체계를 갖춘 임금노동을 할 기회를 갖는가에 따라서 소득의 크기와 더불어서 삶의 방식이 결정되는 것이 임금노동이 지배하는 노동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성립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체제, 다시 말해 사적 소유가 오늘 우리의 삶의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적 소유는 향유하고 꿈꾸고, 즐기고, 감상하며, 냄새 맡는 등 인간이 세계와 맺는 다양한 관계들을 오직 소유의 관계로 환원시켜서 세계가 제공하는 다양한 대상들을 우리가 가질 때에만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세계 경험의 방식이다(Marx, 1975: 299-300). 사적 소유가 지배하면 인간의 활동은 모두가 대상들을 소유의 대상들로 전환시키는 활동으로, 다시 말해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노동으로 축소된다. 노동사회가 노동을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인간의 활동으로 만드는 것은 상품 생산을 통해 사적 소유를 증가시키려는 노력,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사회는 반면에 문화적 활동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고, 그런 점에서 오늘의 노동사회와는 크게 구분된다. 문화사회는 노동과 문화를 구분하고, 전자 대신 후자를 그 구성의 원칙으로 삼는 사회이다. 노동과 문화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동과 문화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문화도 노동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대비되는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영위하는 고유한 활동이다. 문화도 노동처럼 인위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노동과 문화가 인위적이라 함은 자연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이며, 이때 자연은 활동으로서의 노동과 문화에 의해 변형될 수 있는 하나의 상태로서 등장한다. 문화와 노동은 기본적으로 자연에 속하지만 자연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 활동인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공통점을 갖는 노동과 문화가 각기 다른 용어로 불리는 것은 노동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라면 문화는 그와는 다른 차원의 필요성 때문에 요청되는 활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은 인간 고유의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성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피하고 싶은 노역으로도 이해된다면 문화는 노동 못지않게 고생스럽더라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즐거움으로, 멋으로, 또는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특징을 갖는다. 이로 인해 노동은 그 최소화가 목적인 경우가 많은 반면 문화는 그 최대화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강내희, 2008: 27-28).

 

노동이 인간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피하고 싶은 노역”으로도 여겨지는 반면에 문화는 “고생스럽더라도” “즐거움”, “멋”,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문화사회는 노동사회에 비해 더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노동을 최소화하려 하고 반면에 문화를 최대화하려 하는 것은 문화에는 노동에 없는 어떤 긍정적 측면이 내재한다고 보기 때문인데, 문화사회는 바로 문화의 이런 측면을 최대화하여 운영되는 사회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의 지배적 사회의 모습은 노동사회의 그것이고, 문화사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문화사회를 실현하려면 많은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서 그 가능성을 점검해보려고 한다.


문화사회 구성을 위해서는 문화민주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화민주주의는 위에서 살펴봤지만 자유주의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조건에서 도입되는 문화영역에서의 민주주의 모습이다. 외국의 경우 문화민주주의는 케인스주의 또는 사민주의가 지배할 때 작동되던 문화정책이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가 강화될 때 비로소 도입되어 국내 신자유주의 세력의 축적을 위한 문화산업 성장에 도움을 준 점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다. 문화민주주의가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국면에서 펼쳐진다는 것은 자유주의 이후의 사회, 자본주의가 극복되어야만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는 문화사회에서는 완전히 폐기되지는 않더라도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민주주의가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시혜로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주의가 지배하는 국면에서는 배척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기도 하지만 문화민주주의는 수정자유주의가 지배할 때 등장하여,[여기서 ‘수정자유주의’는 케인스주의와 사민주의를 가리킨다. 케인스주의는 자본주의 진영에서 자유주의가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과 같은 위기를 피하기 위해 축적 조건이 개선된 국면에서 자신의 급진적 측면을 완화한 모습이고, 사민주의는 원래 사회주의에 속했던 세력이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보다는 체제 내 개혁을 모색하면서 자본주의와 타협한 모습이다.]  자본주의적 인구 통치의 일환으로 작용한다. 문화민주주의는 위에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참여민주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화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적인 문화민주화 방식과는 달리 문화적 생산수단에 대한 대중의 접근권을 보장하여 대중을 문화적 주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실천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때 허용되는 주체의 권능이 모든 대중에게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문화민주주의가 허용하는 문화적 활동, 생산수단에 대한 대중의 참여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형태라는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런 비판을 한다고 하여 문화민주주의 자체를 무용한 것으로 여기자는 말은 아니다. 문화민주주의로 획득된 문화적 활동 기회들을 의미 없는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 진보적 시민운동 단체들이 정부 정책에 생산적으로 개입할 기회를 잃은 것이 아무런 정치적 손실이 아니고,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가능했던 상당한 수준의 거버넌스가 오늘 이명박 정권에서는 불가능해진 것도 아무런 문제라고 보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기서 문화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의 궁극적 한계를 점검하기 위함인 것이지 그것이 지닌 현실적 효용성까지 부정하기 위함은 아니다.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사회는 자유주의 이후 사회라는 점에서 자유주의를 바탕에 두고 있는 문화민주주의까지도 넘어선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문화민주주의는 대중들의 자율적 문화적 활동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문화민주화가 전제하는 기존의 문화적 실천, 또는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지배적 문화형태와는 다른 문화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민주주의로 가능한 문화적 실천은 그런 점에서 대중의 기본적 욕망을 구현하는 형태를 띨 여지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민주주의가 수정된 형태이라고는 해도 자유주의에 의해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은 문화민주주의로 가능한 문화적 실천이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에 대한 대안의 성격을 갖기 어려울 것임을 말해준다. 케인스주의, 특히 사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문화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문화, 나아가서 문화산업이 지배하는 문화와 비교하여 공공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서는 공적인 자원의 활용에 대한 결정이 가버넌스의 방식으로 이루어져 적어도 사적 소유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문화민주주의가 대안문화를 구축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인가 따지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케인스주의와 사민주의에서 관철되는 문화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에 의해 관리되며 이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공리계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화사회의 구축을 위해서는 대안문화의 건설이 필수적이다. 위에서 지나가면서 잠깐 언급했지만, 오늘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극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자유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급진적 민주주의로서의 코뮌주의가 요청된다고 본다. 맑스와 엥겔스는 코뮌주의를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나가는 현실적 운동”(맑스·엥겔스, 1991: 215)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상태나 이상이 아닌 현실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코뮌주의는 여기서 미래 사회의 상태로 상정하는 문화사회와는 다르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를 지양”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는 태도를 전제한다. 다시 말해 코뮌주의는 자본주의라는 현재의 상태를 재생산하는 데 그치는 그 어떤 자유주의와도 거리를 두는 것이다. 문화사회가 미래의 사회로서 건설되려면 코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보여주는 이런 단절의 입장이 요구된다. 그리고 문화사회가 노동사회를 극복한 상태를 지향한다면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코뮌주의의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문화사회 건설을 위해 대안문화의 건설이 필수적인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문화산업이 지배하고, 그에 의해 소비자본주의가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이다. 문화사회의 건설은 이런 자본주의 문화로부터의 근본적 탈주를 꾀하는 대안문화의 건설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점에서 문화사회의 건설은 문화민주주의가 허용하는 것 이상의 문화적 실천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겠다.

 

5. 결론을 대신하는 문화사회 건설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의 확인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것은 아닌 지금, 이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겪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후퇴는 물론이고 87년 체제를 통해 어렵사리 구축한 형식직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처한 지금, 문화운동은 새로운 자유주의로의 회귀냐 아니면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방향으로의 회전이냐를 결정해야할 것 같다. 한국의 문화운동은 1980년대까지는 대안문화를 추구한 바 있으나 1990년대 이후부터는 대안문화를 만들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확산되기만 하는 문화산업 앞에서 위축되어왔다. 이런 점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 문화운동을 주도해온 문화연대의 경우를 보더라도 분명해 보인다. 문화연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사회라는 대안적 사회에 대한 꿈을 꾸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문화연대는 문화운동에 전념하는 단일 조직으로서는 가장 많은 사회적 쟁점들을 다뤄왔고 한국의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의 선두에 서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본 문화사회 건설 운동과 문화민주주의 실천의 두 측면에서만 놓고 볼 때 문화연대가 문화민주주의적 실천에 더 많은 조직적 자원을 동원하고 대안문화의 추구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온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민중의 집’을 다른 운동단체들과 함께 세워 코뮌 건설을 통한 문화사회 건설의 실천도 해온 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연대는 적어도 한국의 문화운동 단체들 가운데서는 문화사회 건설에 가장 앞장서서 실천을 해온 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연대의 동력 가운데 문화사회 건설에 바친 동력은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년 전에 문화사회 건설을 자신의 출범 취지로 분명히 밝히고 나선 문화연대가 이럴진대 다른 문화운동 단체들이 얼마나 문화사회 건설에 대해 모호하거나 먼 산 보는듯한 태도를 취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문화사회 건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글에서 나는 그 과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속 시원히 말하지도 못했고, 과제 수행을 위한 전략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두에서 말한 대로 신자유주의 위기가 민주주의의 위기와 그에 따른 새로운 파시즘 도래의 위험 등 전례 없는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 오늘의 국면임을 생각하면 문화사회 건설을 위한 대안문화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는 일은 다음 작업으로 넘기고 여기서는 대안문화 구축을 위한 몇 가지 원칙들만 확인하고자 한다.


첫째, 문화사회를 위한 대안문화는 문화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소비문화의 포획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하고, 소비문화와는 다른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을,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를 위한 실천을 요구한다. 소비문화가 강제하는 상품관계에서 벗어나서 비상품관계가 가능한 문화적 활동의 구축, 그것이 문화사회를 지향하는 대안문화를 위한 문화적 실천의 모습이다. 이것은 향후 문화운동은 자본주의 재생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실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소비문화를 벗어난 대안문화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실험 정신을 가져야 하며, 이 정신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다양한 연대의 틀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문화가 성행하는 것은 대중들과 주체들을 노동사회에 포섭하려는 전략이다. 소비문화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실험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제공하는 사회적 물적 기반으로부터 스스로 배제되는 길이라는 점에서 삶의 지속에서 부담과 위험을 안게 된다. 이런 요소를 줄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문화적 빈곤화의 원인이 아니라 풍요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연대의 틀이 강고해야 한다.


셋째, 대안문화 건설은 새로운 문화적 주체의 형성을 요구하며, 이것은 문화민주주의가 취하는 제도적 개입과는 다른 형태의 전략, 다시 말해 주체 형성의 전략을 요구한다. 대안문화의 주체는 스스로 활동하고 욕망하며 생활하는 주체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녀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사람 되기”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실한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고,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서 상실한 자연스런 삶의 향유 능력, 절제된 삶의 예찬을 되찾고, 인간의 유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이 운동의 요체이다.


대안문화 구축을 위해 확인해야 할 원칙들은 이 밖에도 더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당장 분명해 보이는 원칙들만 확인하면서 앞으로 문화사회 건설을 위해 문화운동이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한다는 점만을 강조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하고, 한국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마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를 짓누르는 노동사회의 대안을 찾는 일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문화운동은 문화사회 건설에서 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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