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장수의비결,작가와의 소개팅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9월1호 후일담

 

장수의비결,작가와의 소개팅

 

 

윤지은

(문화연대 10주년 전시회 "장수의 비결" 큐레이터)

 

<장수의 비결-문화연대 10주년 기금마련전>은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은 문화연대가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기 위한 토대를 모색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단순히 문화연대의 발전기금을 모금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간 문화연대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어온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마련한 자리인 것이다. 총 57명에 달하는 건축가, 디자이너, 만화가, 사진가, 시인, 설치작가, 학자, 화가들은 작품을 출품해 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응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시에 대한 조언과 의견을 주며 의욕을 보이기도 하였다. 특히 전시기간 중 총 나흘간(9월 15일~18일) 진행되었던 부대행사 ‘작가와의 소개팅’ 은 문화연대와 이번 전시에 대한 작가들의 열의를 확인할 수 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작가와의 소개팅’첫째 날 (9월 15일 화요일) _만화가 김대중

 

 

만화가 김대중이‘작가와의 소개팅’의 첫‘소개팅남’이었다. 만화작가이자 대안만화 전문 출판사로 알려진‘새만화책’을 공동 설립하여 발행인으로 일하고 있는 김대중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그리고 전업으로 만화에 투신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경력임에도 주목 받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작품에 깊게 깔려있는 대담한 발상과 그것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는 정밀한 묘사는 김대중 만화의 큰 장점이다. 현재 출판기획자와 출판사의 대표로 여러 만화가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우리나라 만화계에 신선한 작품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중인 김대중의 열정은 참석자 모두에게 감명을 주었다.‘페르세폴리스’를 비롯하여 그가 아니었으면 국내 독자들은 모르고 지나쳤을 주옥같은 작품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국내외의 새로운 만화작가를 발굴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만화가 김대중의 신작도 조만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한 열성팬(?)의 말에 수줍게 웃던 그의 얼굴에서 각박한 만화계의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와의 소개팅’둘째 날 (9월 16일 수요일) _사진작가 박영숙

 

 

‘작가와의 소개팅’ 기간의 유일한‘소개팅녀’는 사진작가 박영숙이었다. 페미니스트 사진작가로 알려진 박영숙은 7년간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미친년 프로젝트>를 통해 페미니스트로서의 관심과 여성주의적 표현 체계로 재구성하는 이미지들을 생산해내며 동시에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생의 트라우마를 공감하고 치유하는 경험을 공유하고자 했다. 이번 소개팅에서는 <미친년 프로젝트>의 진행과정과 작업에 얽힌 여러가지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소 과격한 작업 제목처럼 그의 사진작업은 모든 관람자에게 친숙하지만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복잡다단함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박영숙의 작업에서 여성들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동질감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유독 여성들의 관심이 몰렸던 이 날의 유일한 남성 참여자 역시 소개팅 중간중간 본의아닌 소외감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박영숙의 작업은 이제 여성들만의 얘기에서 벗어나 좀더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 같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개인 작업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진계의 발전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작가와의 소개팅’ 셋째 날 (9월 17일 목요일) _화가 김정헌

 

 

세 번째 소개팅의 주인공은 문화연대의 전 상임대표이기도 했던 화가 김정헌이었다. 김정헌은 상품과 자본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일상생활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현실과 발언>의 동인 시기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노골적인 정치 풍자를 서슴지 않았던 시기에는 넓고 무거운 ‘큰 그림’을 그렸던 화가이다. 최근에 주로 그리는 ‘작은 그림’들은 이전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예술과 삶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려는 실천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네 명의 소개팅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미지 자료 없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입담은 마치 할아버지의 전래동화를 듣는 것처럼 참석자들을 몰입하게 했다. 문예회관에서의 <현실과 발언> 첫 전시회 때 개막 하루 전날 불온사상을 담은 그림이란 이유로 취소 통보를 받아 관람객들이 촛불을 들고 그림을 들여다 봐야 했다는 등 밝고 아름다운 내용의 동화는 아니었지만 급격하게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로 인해 더욱 공감이 갔던 이야기들이었다. 문화연대와 오랜 기간 동고동락했던 그이기에 더욱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의 말마따나 문화연대가 굳이 발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될 시대가 언젠가 도래하길 소망한다.

 

'작가와의 소개팅’ 넷째 날 (9월 18일 금요일) _디자이너 안상수

 

 

마지막 소개팅 주자는 한글이라는 재료와 타이포그래피라는 구조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그래픽 세계를 구축해 온 한글 타이포그래퍼 안상수였다. 그는 1985년 ‘안상수체’를 디자인하여 한글의 탈네모틀 흐름을 주도하였고 이후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를 디자인하였으며 그가 디자인한 책표지, 포스터 등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지혜에 접속하면서도 생명과 평화의 보편적 가치를 시각적으로 전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소개팅의 주제는 ‘생명평화디자인’ 이었으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한글에 대한 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세종대왕을, 최고의 디자인 이론서로 훈민정음을 꼽는 그는 한글이 다른 문자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글자라고 말한다. 영어를 써야 세련된 디자인이라고 여겨지는 요즘, 한글로도 얼마든지 멋스러운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상수 디자이너의 탈네모틀 한글디자인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생명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그는 ‘어울림’ 이란 우리말이 ‘평화’란 단어와 가장 잘 통한다며 생명들이 서로 어떤 간섭도 방해도 없이 어울러져 살아갈 때 진정한 평화가 온다고 설명했다. 이를 디자인적으로 풀어낸 생명평화결사의 로고를 보자 참석자들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앞으로도 그가 한글 타이포그래퍼로서, 또 생명평화에 대해 탐구하는 디자인 철학자로서 선구자적인 행보를 계속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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