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용산참사 9개월, 어디까지 왔나?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1호 특집기사 ①

 

용산참사 9개월, 어디까지 왔나?

 

 

박래군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기어이 추석도 넘어 버렸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게 1월 20일, 엿새 뒤가 설날이었다. 눈물의 떡국을 상식상에 올렸던 유가족들은 다시 추석에도 눈물의 상식을 올려야 했다. 정운찬 신임 국무총리가 추석날 참사현장에 마련된 분향소에 와서 유가족들을 위로했지만, 중앙정부가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는 다시 분노가 인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용산참사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자유를 잃고 갇혀 살아야 했다. 수배자가 되어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6개월 넘도록 4층 실내 공간에서 살아야 했고, 지난 9월 초부터는 명동성당으로 옮겨와서 다시 이곳 영안실에서 생활한다. 

 

설날에 입었던 상복을 유가족들은 지난 추석에도 벗지를 못했다. 추석에도 집에를 가지 못하고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 농성장을 지켜야 했다. 신부님들도 용산범대위 상황실 사람들도 분향소를 지켰다. 이런 상황이니 수배자의 처지를 한탄할 수도 없다. 추석 전에 정부와 협상을 타결하고, 장례를 지낸 뒤에 감옥에 갈 수도 있겠다는 작은 꿈도 무산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설날 이전에 발생한 용산참사 문제는 9개월이 다 되도록 장례조차 지내지 못하게 되었는가? 혹시 유가족과 용산범대위 [정식 명칭은 ‘이명박 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을 비롯해 진보적인 사회단체들과 인권단체 등 100여 개 단체들로 용산참사 직후인 1월 21일 결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용산참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먼저, 국가폭력의 문제다. 이 정부는 용산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 1명이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중경상을 입은 참사에 대해서 아직도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그것이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참사라고 우긴다 해도 온 국민이 강제진압 상황을 생생하게 TV와 인터넷 을 통해 목격한 일을 덮을 수는 없다. 계속 정부는 ‘정당한 공무집행’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해도 경찰을 투입해 살인진압을 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국가폭력이 끝났을까? 아니다. 유가족들을 빼돌려놓고 강제부검을 해대더니, 대규모 검찰수사본부를 구성해서는 철거민들에게만 죄를 뒤집어씌우는 편파, 왜곡수사로 일관했다. 결론은?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서 화재가 났고, 그로 인해서 6명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검찰 수사대로라면 같이 망루농성 중이던 동료가 던져서 동료를 죽게 했고, 같이 망루에 올랐던 이충연 위원장은 그 아버지를 죽게 한 패륜아가 된다는 얘기가 된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론인가. 그리고 사건이 나자마자 대통령부터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철거민들을 ‘도심테러범’으로 몰아갔다.

 

사건 직후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을 키워서 언론에서 용산참사보다는 연쇄살인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유리하고 진실규명에 도움이 될 수사기록 3천여 쪽을 제출하지 않아 재판이 파행에 이르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용산범대위가 내는 집회신고는 모두 금지 통보되었고, 심지어는 삼보일배와 1인 시위마저 원천봉쇄하고, 연행했다. 그리고는 수배, 구속, 소환으로 대응했다. 용산참사 현장인 용산4구역에서는 심지어는 유가족과 신부들, 철거민들이 수없이 폭행을 당했다. 오죽했으면 문정현 신부는 한창 용역과 경찰의 폭력이 심할 때 하루라도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이런 폭력적인 진압을 통해서 용산참사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그래서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지도록 고립시켰다. 그러면 자연히 고사될 것이란 계산이었다. 이런 사건에 대한 책임의 부인 또한 국가폭력이다.

 

두 번째, 용산참사는 살인적인 재개발이 원인이 되었다. 재개발지역에서 갈등은 주로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음으로 생긴다. 가옥 세입자들은 투쟁을 통해서 임대주택을 확보했고, 이제는 임대주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상가 세입자들의 경우 권리금이나 투자비 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보증금과 영업손실보상금 3개월 치만 받고 떠나야 한다. [정부는 용산참사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 2월에 상가 세입자들의 영업손실보상금을 3개월 치에서 4개월 치로 늘려준다는 방침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권리금의 보장, 계속 영업을 할 수 있는 임대상가와 재개발 중에 임시시장의 보장이 철거민들이 내세우는 요구들이다.] 상가를 임대해서 영업을 하려면 권리금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들여야 한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상식에 속한다. 또 그 외에 투자비용도 마찬가지다. 점포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평생을 벌어서 자영업을 하던 사람들이 재개발을 만나면 쪽박을 차야 하는 것이 재개발지역의 현실이다. 철거를 당하면 단지 집이나 가게만 잃는 게 아니다. 그 지역을 터 잡고 이루어졌던 모든 생활기반이 파괴된다. 재개발이 되면 주변 지역의 지가는 상승하고, 임대료는 상승하기 때문에 주변으로 밀려나야 한다.

 

그렇게 진행된 재개발의 역사는 판자촌, 달동네 등 빈민들의 주거지역을 약탈해먹고, 이제는 중산층 하층민들이 영세 자영업자들마저 재개발의 희생양이 된다. 그렇게 약탈을 해서 건설자본과 땅 투기꾼들의 금고만 살찌워왔다. 재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부자만 이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생존권의 위협을 받게 되지 않았던가. 결국 땅 투기와 부동산 투기로 한 몫 잡겠다는 욕망이 사회․경제적 약자인 철거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혹시 우리의 이런 욕망이 다른 사람의 고통이 된다는 점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재개발 지역-철거지역은 무법천지다. 늘 철거용역깡패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의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부정의한 법의 집행이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게 우리의 민주주의였고, 인권의 현실이었다. 용산참사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아프게 드러내 보이고 있으며, 그러므로 아무리 ‘화해와 통합’을 말한다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거짓이란 주장이 힘을 얻는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서 아직 용산참사의 해결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유가족들이 당하는 고통, 철거민들이 당하는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살인진압을 진정으로 사과하고, 살인적인 재개발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세입자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그래서 원주민들이 재정착하여 살 수 있는 그런 재개발이 되어야 한다. 소수의 이익만을 위한 재개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어울려 살아가는 재개발, 그리고 친환경적인 재개발이 되도록, 용산참사 문제로부터 전기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너무도 상식적인 주장이 묵살당한 채 용산참사는 9개월을 바라보고 있다. 더 이상 용산참사를 외면하지 말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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