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SEEN AND NOT SEEN] 아니면 [제발 좀 그래라....]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09년 10월2호 특집기사 

 

[SEEN AND NOT SEEN] 아니면 [제발 좀 그래라....]

김성균

(다큐멘터리 감독)


글을 쓰는 나는 한때 상업영화 스탭을 한 적이 있었다.... 소위 ‘막내’급의, 허드렛일을 하는 수준의 스탭이었다. 이후에도 비디오 촬영으로 먹고 살면서 비교적 ‘영상’이라는 매체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근근이 살아간(지금도 그러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한 번도 소니(Sony)나 파나소닉(Panasonic) 캠코더가, 아리플렉스(Arriflex) 카메라나 조명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음악을 좋아하고 항상 즐겨 듣지만 아이팟(iPod)이 어떤 제조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조 새트리아니(Joe Striani)가 어떤 기타를 사용하는지, 그가 연주하는 아이바네즈(Ibanez) 기타가 어떤 곳에서 어떤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지 알 턱이 없었다. 물론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세상에서 세상사에 무관심해지기 쉬운 게 사실이기는 하다.

 

‘콜트(Cort)’라는 단어를 검색엔진에서 한글로 치면 보통은 총기류에 관한 사이트가 먼저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타를 치는 사람들에게 콜트는 정말 각별한 브랜드였다. 쉬운 말로 해서, 돈 없는 인디 뮤지션에게 콜트는 ‘싸면서도 질 좋은’ 국산 브랜드였고 거의 대부분의 인디 뮤지션이 가장 처음 샀던, 그들의 첫 번째 기타였다.

 

뮤지션들에게 콜트는 아련한 첫 기타의 추억으로 남아 있겠지만.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정규직임에도) 비정규직보다 못한 기본급과 고된 노동,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 욕설과 성추행이 난무하는 현장 속에서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삶을 지속해 왔다.

 

깁슨(Gibson)과 함께 세계 기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펜더(Fender), 조 새트리아니와 스티브 바이(Steve Vai)등에 의해 유명해진 아이바네즈 등의 해외 유명 기타브랜드는 자체 생산 라인에서 고가의 기타들을 만들어내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돈 없는 젊은이들이 유명 브랜드의 기타를 가지고 싶은 욕망을 이용하여 저가의 보급형 기타를 다른 나라의 공장에서 OEM방식으로 생산한다. 그리고 그 낙찰은 최저가를 제시하는 업체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그래서 일본에서도 펜더가 생산되고, 이후에는 멕시코에, 점차 한국으로(90년대에 콜트는 다량의 펜더를 OEM방식으로 생산했다), 그러다 다시 중국으로, 인도네시아로, 자본은 끊임없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간다.

 

콜트/콜텍 자본의 움직임도 이들에게서 배운 것이라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을 착취한 댓가로 콜트 자체의 브랜드가치가 상승하고 사장이 1200억대 자산가가 되었음에도 다시 더 싼 노동력을 찾아,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중국으로.... 그 나라들에서도 언젠가 노조가 생기고, 파업이 일어난다면 자본은 이제 또 어디로 노동력을 착취하러 떠날 지 궁금해진다.

 

물론 나는 음악 좋아하는 오타쿠일 뿐일 수도 있고 일용직에 차라리 더 가까운 문화노동자(문화양아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연대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려는 것도 아니다-어차피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쇠고기 문제처럼 자신들의 삶에 위협이 왔다고 생각할 때만 움직이고 용산참사에는 무심하다. 그리고 그걸 무작정 타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삶의 굉장히 작은 영역에까지 우리가 이러한 착취로부터 무관하지 않음은 좀 알았으면 좋겠다-반드시 콜트/콜텍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 속에 소외와 착취는 숨어 있다.

 

지식인(나는 지식인일까?)들의 허접한 부채의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거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 황지우(얼마 전 한예종 총장직을 타의에 의해 그만둔)가 80년대에 썼던 것처럼.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발 좀 그래라)

 

그래, 제발 좀 그래라.

 

* [Seen And Not Seen]은 Talking Heads의 노래 제목
* 인용된 시는 황지우의 [같은 위도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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