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사소한 <이음책방> 프로젝트에 관한 짧은 보고서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10월2호 후일담 

 

사소한 <이음책방> 프로젝트에 관한 짧은 보고서  

 

전규찬

(미디어문화센터 소장)

 

한참 동안 버렸던 대학로에 요즘 나는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많게는 세 번이나 들락거린다. 우선 일요일에 한번. 북한산 산책을 대충 마치면 수유에서 버스를 타고 슬슬 대학로로 나들이 나간다. 혜화동 성당 근처 필리핀 노상시장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사먹고 빈둥댄다.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잠정적으로 ‘외국인’이 된다. 사람과 사물이 뒤섞인 세계에서 벤야민이 말한 ‘자신에게만 돌리고 있는 얼굴’을 재미나게 인식한다.


그러고 나면 길 건너 성대 앞 지하 책방 <풀무질>로 걸음을 옮긴다. 매주 책 한권을 꼭 사겠다는 로컬 소비의 자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운동권 출신이면서 현재도 맹렬하게 운동 중인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위해서다. 이 시대에 사회과학 책방을 운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또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혼자 편안하게 책을 읽기도 한다.


그 다음은 수요일 저녁 7시. 대학로 건너 <나다> 가는 골목에 숨어있는 또 다른 책방으로 갈 때다. <이음책방>이라는 곳이다. 약간의 문화주의적인 감수성을 가진 분이라면 이 곳을 기억하거나 들어 봤으리라. 예쁜 곳이다. 음악도 죽인다. 커피도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음악 CD나 헌책도 다루었지만, 지금은 (인)문학과 예술, 사회과학 쪽 책만 다룬다. 사진, 그림 전시회가 자주 열리는 곳이다.


매주 한번 그 곳에서 우리는 ‘사원’ 모임을 갖고 있다. 스스로를 ‘회사’ 일꾼들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회의다. 미디어문화센터에서는 나와 오유나 활동가가 함께 나가고, 이영주 부소장과 이광석 운영위원이 심정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그 외에 인권운동 활동가, 문화연구․사회운동에 관심 있는 학생들, 그리고 시민 몇몇이 ‘사장’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함께 활동을 시작한 지 대략 두 달이 지났다.


우리는 차이 나는 입장, 경험들을 갖고 있지만, <이음책방>을 하나의 의미 있는 지역매체로 보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그 곳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의미 있는 책 읽기/책 소비 활동, 지식 (재)생산의 활동을 대안적 지역문화 현상으로 여기는 데 공감한다. 그리하여 <이음책방>을 살리고, 살려낼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의 발굴․실천하는 데 자신이 갖고 있는 나름의 다양한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다.

  
책이 매체고 책방이 매체이며, 또한 공간이 매체이다. 매체는 메시지를 바꿀 뿐만 아니라 마사지 방식 및 효과까지도 결정한다. 맥루한의 이런 테제를 받아들인다면, 좋은 책들로 꾸며진 <이음책방>의 지역매체로서의 드러난/숨은 가치는 매우 크다. 상업화의 조건, 자본지배의 상황에 처한 대학로의 공간현실을 따질 때 더욱 그러하다. 대학로 주류매체의 균질적 메시지와 다른 <이음책방>만의 특이한 마사지 효과에 주목하는 것이다.


낭만적이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우리의 생각, 우리의 판단은 이렇다. 소수매체, 지역매체, 대안매체로서의 <이음책방>이 재정적으로 위험하다. 사장 개인이나 선의를 가진 독자․독지가들의 후원에 맡기기에 너무 불안한 상황이기에, 책방 살림의 기획과 실천을 보다 조직적인 방식으로 마련코자 하는 것이다. <이음책방> 살리기를 일종의 지역미디어문화운동 관점에서 접근해보는 실험적 노력이다.


지역문화운동, 지역매체운동을 서울 바깥이 아닌 상업적 소비 공간의 대(학)로 한 복판에서 시험해 보는 것이다. 개인이 시작했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용 대중들에 의해 일정한 사회(공통)적 의의를 갖게 된, 자본의 천국 내부에 형성되어 대안적 무늬/문화를 띄게 된, 요컨대 현실적․잠재적으로 대중교통적 가치를 획득한 <이음책방> 포인트의 보존적 실천이다.


그럼으로써 미디어문화센터의 우리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실천해 왔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주력할 미디어 공공성 보호라는 거시적인 운동의 목표, 운동의 방식을 미시적인 차원, 구체적인 사례에서도 똑같이 실행코자 한다. 매체가 지닌 공익성 즉 공통된 이익의 성질 보호 운동을 자본이 포획한 혜화동이라는 구체적 공간 안에서, 재정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음책방>이라는 미시적 사례에서 동시 진행시키는 선택이다.


대략적으로 이와 같은 인식을 갖고 개입코자한다. 사적 벤처로 시작한 책방을 상업적 환경 속에서 사회적 회사로 형질 변경시켜 내보는 간섭의 활동이다. 이 때의 ‘회사(會社)’라는 말은 연합의 잠재성 혹은 사회(社會)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물적․정신적․시간적․신체(노동)적 자본을 들인 사장․사원으로 연합해 <이음책방>을 책임감 있게 공동 경영코자 한다.


사실 <이음책방>의 ‘이음’은 다른 소리(異音), 다성성을 가리킨다. 소비자본주의 스펙터클 체제의 이구동성에서 비껴난 불일치의 잡음을 뜻한다. 그러면서 ‘이음’은 서로 잇고 연결․매개하는 접선․접속, 즉 커뮤니케이션의 의미를 내장하기도 한다. 바로 이 두 측면을 강화함으로써 사적/상업적 배치 사이 ‘사회적인 것’의 구멍/비트를 만들어 내는 게 활동의 핵심 의도다.


어떻게 <이음책방>을 살려내는 동시에 공적으로 활용 가능한 대안 미디어 섹터로 꾸며낼 것인가? 어떻게 <이음책방>을 대항적 지역매체 네트워크 구성의 계기, 대안적 지역문화 재구성의 출발점으로 전유해낼 것인가? 어떻게 <이음책방>을 공공적 예술과 비판적 지식, 진보적 운동의 복합 미디어 공간/시설물로 만들어낼 것인가? 현실 속 외부 공간, 대안 매체로서의 책방 구축. 쉽지 않은 질문, 많은 고민이 따른다.

 


우선 <이음책방>을 비판적 지식 교환의 매체로 활성화하기 위한 공부 모임을 기획했다. 새물결출판사와 함께 하는 시리즈 강독회로부터 이미 시작한 상태다. 김항의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을 포함해, 바우만과 아감벤, 지젝의 책을 저자․역자와 함께 읽고 토론한다. 앞으로 대학 바깥 공부의 시간, 교실 외부 세미나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미디어 공공성을 대학로에서 당장 보호해보고 싶은 활동가, 문화 다양성을 혜화동에서 우선 증진시키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원가의 참여를 당부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과 강독 모임이 있는 금요일 저녁에 <이음책방>을 방문해보시라. 교제할만한 누군가와 만날 것이다. 신선한 교제․교통의 기회를  한 작은 책방에서 새로이 찾게 된 미디어문화 활동가가 서둘러 쓴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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